“시대가 바뀌었다”는 서울구치소 교도관과 ‘잡범’의 인권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2009년 4월 3일 일산 킨텍스 ‘2009 서울 모터쇼’ 행사장 앞. 기륭전자, 현대차, 현대하이스코, 동희오토, 지엠대우 등 ‘금속노조 비정규직투쟁본부’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60여 명이 모여 “비정규직 다 자르고 웬 쇼냐?”며 비정규직 대량 해고 규탄 기자 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모닝 자동차에 선지피를 뿌리는 상징 의식을 이유로 40명을 연행해 47시간을 감금했다. ‘선수’들 40명이 한 유치장에 갇히자 볼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연행 과정에서 다친 사람들 치료를 위해 병원에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방이 춥다고 담요를 더 달라고 했다.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따뜻한 물을 틀어 달라고 싸웠다. 머리를 감아야 한다며 샴푸를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내부 규정이라며 어떤 요구도 바로 들어주지 않았다. 4월부터 동절기가 끝나기 때문에 온수가 끊겼다며 온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창살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수감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싸웠다. 면회 온 사람들에게 유치장 상황을 알리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기로 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요구가 하나씩 관철됐다. 소란에 불편해하던 다른 유치인들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자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병원에 보내 주지는 않았다. 국회의원이 면회를 다녀가고 노동자들이 조사를 거부하자 일산경찰서 한 관계자는 “점심을 못 먹었으니 자장면만 시켜 먹고 바로 병원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말을 바꿨다. “자장면을 4시간 동안 먹어서 병원에 보내 줄 수 없었다”며 수감자를 비웃었다. 노동자들은 사과를 요구하며 창살을 흔들고, 식판을 엎으며 싸웠다. 결국 경찰관이 각 방을 돌아다니며 고개 숙여 사과했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유치장 난리 블루스’ 때문에 열 받은 경찰이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했고, 4명에게 구속 영장까지 청구했지만 다행히 모두 풀려났다. 병원 치료를 받고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는 권리는 거저 얻어지지 않았다.
집회하다 잡히면 무릎 꿇리고 후려갈기는 폭력 사라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집회를 하다 경찰서에 잡혀가면 무릎을 꿇리고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폭력이 버젓이 벌어졌다. 피의자의 기세를 제압하기 위한 반인권적 폭력 행위는 지방으로 갈수록 심했다. 경찰의 인권 유린 행위는 당사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집회가 많았던 서울의 주요 경찰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노동 인권 변호사가 많아지면서 연행당한 노동자들의 대응도 달라졌다. 집회 과정에서 누군가 연행되면 변호사에게 연락한다. 당사자는 변호사가 올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한다. 면회를 하며 유치장에서 인권 침해를 당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언론에 알린다. 폭력이 사라진 후에도 유치인의 기세를 제압하기 위해 계속하던 알몸 검색과 수갑 착용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8년이었다. 경찰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여성 4명에게 자해, 자살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했다. 이들은 인권 단체와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3년 대법원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국가가 각각 1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확정 판결했다(2013다200438).
하지만 다음해인 2014년 5월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된 여성 6명을 유치장에 입감하는 과정에서 브래지어를 벗도록 요구했다. 언론에 알려지자 경찰은 “해당 여경이 지침이 바뀐 것을 제대로 모르고 실수를 저질렀다”며 “경찰 측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시민들 스스로 권리를 인식하고 인권 침해에 저항하지 않으면 경찰의 불법 행위는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대법원 판결 뒤에도 유치장 알몸 신체검사
5월 11일 밤 9시,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난장’이 벌어졌다. 제목은 ‘잡범도 인권은 있다! 흥희 넘치는 문화제’. ‘흥희’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유흥희 분회장 이다. 불법을 저지른 회장은 무죄, 도망간 회장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건 유죄라는 법원의 불의한 판결에 불복해 노역을 살러 간 유 분회장에게 강제로 속옷 탈의 검신을 한 것에 대해 서울구치소를 규탄하는 문화제였다.
최근 교도소에 수감된 민주노총 여성 노동자들은 누구도 속옷 탈의 검신을 받지 않았다. 교도관들도 민주노총을 건드렸다가는 피곤해지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이 ‘주거침입죄’로 ‘노역’을 살러 들어왔기 때문에 공안 사범이 아니라 ‘잡범’으로 알았다. 유흥희 분회장이 “본인은 마약 사범도 아니고, 문신과 수술 자국도 없다”며 속옷 탈의 검신을 거부하자 서울구치소는 옆에 가운이 걸려 있었는데도 어떤 안내도 없이 교도관 여러 명이 강제로 속옷 탈의 검신을 했다. 여성 교도관은 “어디서 들은 건 있나 본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신체검사는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방법으로 행해야만 한다”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는 공안 사범에게만 적용되고, 소위 ‘잡범’들은 마구잡이 알몸 검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재소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한 유흥희 분회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동과 인권 단체들도 기자 회견을 열고 이 문제를 언론에 알렸다. 인권위는 서울구치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구금 시설은 법을 위반했을 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고문에 가까운 벌을 내렸지만, 근대 사회가 되면서 신체를 훼손하는 일은 사라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위반했다고 맘대로 폭행을 해도 되고 인권 침해를 해도 되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한국이다. 흉악범도 있고 사소한 범죄자도 있다. 그들이 법을 위반했다고 인권을 빼앗기고 교도관이 제왕처럼 맘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한 말이다. 30년을 싸워 얻어 낸 한 조각의 인권조차 폐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유흥희 분회장이 노역을 살고 나왔다. 함께 ‘빵’에 있던 이들이 유흥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싸우지 않는 곳에 인권은 없다. 인권은 공안 사범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잡범’에게도 인권은 있다.
(워커스 10호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