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무려 40년간 이어져 온 전투적 노동운동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기간제와 파견 등 불안정 비정규 노동이 자리를 잡았다. 1985년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일본 노동시장은 불안정과 차별, 열악한 노동이 뿌리내렸다.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았다. 외환위기가 도래한 1998년, 한국에서도 파견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노동시장을 모델 삼아 거듭 파견법 개악을 꾀해왔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우리도 일본처럼 파견을 확대하면 일자리가 급증할 것이라 선전했다. 법을 악용만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파견 노동자도 정규직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왜곡되고 은폐된 선전이었다. 류코쿠대학 법학부 와키다 시게루 교수는 “나쁜 거짓말”이라고 했다. 10여 년의 거리를 두고 일본의 파견 제도를 쫓고 있는 한국. 그리고 한국의 10여 년 후의 모습인 일본. 과연 진짜 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워커스》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와키다 시게루 교수’에게 물었다.
Q. 한국 보수진영에서는 한국도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negative list system)으로 파견법을 개정하면 수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어요. 이들이 사례로 든 것은 1999년, 2003년 일본의 파견법 개정 이후 일자리가 급증했다는 통계예요. 진짜 일본 파견법 개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나요?
A. 일본은 1985년에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됐어요. 그 법은 사업주나 기업의 이익과 편리 확대에 치우쳐 있었을 뿐, 노동자 보호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죠. 1999년 개정파견법도 노동자 보호 규정을 거의 추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파견 금지 대상을 열거하고 그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을 도입해 파견 대상 업무를 자유화했죠. 1999년 취업 시장에 빙하기가 찾아왔어요. 청년 남성들을 상대로 파견노동이 크게 확대됐고, 불안정노동이 증가했죠. 1999년 개악 안에는 새롭게 파견이 합법화된 업무의 경우, 사용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해 놨어요. 하지만 사용주들은 위장도급 형식을 이용해 불법파견을 계속 확대해 나갔죠. 2003년 개정파견법에서는 제조업무가 파견 대상으로 포함됐어요. 하지만 위장도급을 합법파견으로 바꾸는 사례는 아주 적었습니다.
‘1999년, 2003년 노동자 파견법 개정 이후 고용이 급증했다’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진실은 정 반대죠. 현재 파트타임, 파견노동 등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40%를 넘어섰어요. 정규직을 대신해 질 나쁜 파견노동, 기간제 노동이 크게 늘어난 거죠. 일본 고도 성장시대에는 취업하면 일반적으로 약 40년간 고용 안정이 보장됐어요. 하지만 노동자 파견법으로 계약 기간은 짧아졌죠. 계약 기간을 짧게 할수록 고용은 늘어나는 법이잖아요. 1년, 반년, 3개월 등 날품팔이 계약, 단시간 노동을 확대하면 질이 나빠도 고용률은 마술처럼 늘릴 수 있는 법이지요.
Q.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말, 파견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처우 개선 계획’을 발표했잖아요. 5년 이내에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요. 이번 대책이 일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까요?
A. 정부는 계획 실현 의지가 없어요. ‘헌법 개악’을 노린 아베 총리는 당면 선거에서 승리해, 헌법 개정에 필요한 국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획득하는 것만이 목표였지요. 선거에 이기기 위해 ‘아베노믹스’에 의한 경제성장 등 헛공약만 남발했습니다. 지난 대선 때 내걸었던 박근혜 후보의 많은 공약이 공수표로 끝난 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이지요. 올해 1월 말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정사원 전환, 처우 개선 실현 플랜(5개년 계획)’도 헛말로 끝나려 하고 있어요. 실제로 제가 아사히신문 기사 데이터베이스로 ‘정사원 전환, 처우 개선 실현 플랜’을 검색했는데, 불과 6개의 기사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자민당이 대승을 거둔 후, 언론이나 국회에서 해당 정책이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어요. 지금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정사원 전환’이 ‘한정 정사원(限定 正社員’)’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타입의 고용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한국의 ‘무기계약직’이나 ‘중규직’과 아주 유사해요. 만약 일본에서 정사원 전환이 이뤄진다면, 쉬운 해고와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한정 정사원’으로의 전환이겠지요.
Q. 한국 언론은 일본을 ‘청년 취업의 파라다이스’라고 칭하더라고요. 기업에서 대학 학자금 상환과 집세 보조까지 해주며 구인을 선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른바 ‘프리터족’, ‘사토리 세대’ 문제가 구인난의 원인이라고 하던데요. 일본의 청년 취업 현실은 정말 ‘파라다이스’인가요?
A.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청년 취업의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지옥’입니다. 일본 언론이나 한국 보수 언론은 일본의 ‘신규 졸업자’ 90% 이상이 졸업 직후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을 근거로 ‘파라다이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에 가까운 너무 과도한 평가지요. 지난 10월 25일, 후생노동성은 2014년 3월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3년 이내 이직상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어요.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자의 40% 이상이, 대학교 졸업자의 30% 이상이 3년 이내에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에서 중도 퇴직자가 될 경우, 재취업은 지극히 어려워집니다. 대기업 경력자 채용 모집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불안정 노동자인 프리터가 되는 수밖에 없지요. 재취업이 된다 해도 처우가 상당히 열악해집니다.
그럼에도 왜 청년들이 이직하느냐고요? 취직한 직장의 노동 환경이 너무나 열악해서, 그리고 목숨조차 위태로운 가혹한 업무에 시달려서입니다. ‘프리터족(1995년)’, ‘니트(2005년)’, ‘사토리 세대(2013년)’ 등의 용어를 들어보셨죠? 이는 주로 보수 언론, 경영자, 일부 어용학자들이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신조어예요. 신자유주의적인 자기 책임론과 편견, 악의에 찬 시선으로 젊은이들을 비웃었던 거지요. 실제로는 일본 청년 노동자 다수가 블랙 기업, 블랙 알바, 장시간 노동, 우울증, 과로 자살, 단기 이직, 비정규직 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데도요. 최근에는 2015년 도쿄대를 졸업한 한 청년 여성노동자가 일본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인 Dentsu(電通)에 취직해 월 100시간 넘는 잔업 등에 시달리다가 정신 장애에 걸려서 자살했어요. 일본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청년들의 과로사나 우울증 자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Q. 한국 언론은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아 특별히 ‘정규직’으로 취업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보도하고 있어요. 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파견노동자 임금이 다른 비정규직에 높은 편이라며, 일본의 파견 확대가 단지 ‘비용’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고요. 이런 주장들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A.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오해네요.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지극히 큽니다. 일본의 비정규직은 ‘가계보조형 비정규직’(A형/파트타임, 알바 등)과 ‘풀타임형 비정규직’(B형/파견, 위장도급, 개인도급 등)의 두 가지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중 A형은 일본 고도성장 시대에 나타난 여성 차별적 고용형태예요. 남성(남편)이 부양자로서 가계 유지 수입을 벌고, 여성(아내)은 ‘피부양자’, ‘가계보조자’로서 일하는 형태지요. 피부양자는 건강보험, 연금, 특별세금공제 등의 제도적 우대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일정한 수준의 연 수입을 넘으면 제도적 우대를 받지 못해요. 그래서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아도 참으면서 일하게 되는 거죠. 약 100만 엔 가량의 연 수입 한도는 전체 노동자의 최저임금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최저임금이 A형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노동자 전체가 저임금에 시달리는 거죠.
B형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규직 대체 형 비정규직이에요. 한국 언론이 이야기하는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비정규직’은 B형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건 너무 기만적인 선전이에요. B형은 정규직 대체 노동으로서 비교 대상은 A형이 아닌 정규직이 돼야지요. A형은 너무 이상한 여성 차별적 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고, 전 세계 비정규직 중에서도 지극히 낮은, 자립이 불가능한 수준의 저임금 노동입니다. 이런 A형 저임금과 비교해 B형의 임금이 높다고 하는 것은 너무 나쁜 거짓말이네요. 실제로 B형이 도입된 이유는 쉬운 해고와 정규직의 연공급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예요. 젊은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과 B형의 임금 격차가 작지만, 30대에서 40대로 나이가 많아지면 임금 격차는 점점 커져요. 40대의 경우 B형은 정규직 임금의 1/2~1/4 정도가 됩니다. 특히 B형은 정규직이 받는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해 연 수입 격차는 크게 벌어집니다. 일본 파견회사들은 ‘정사원 1명의 인건비로 파견사원 4~5명을 이용할 수 있다’고 경비절약 효과를 선전하고 있어요. 저임금, 임금 격차를 파견노동의 폐해가 아닌 장점으로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일 겁니다.
Q. 현재 한국 정부와 여당은 파견법 개악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도급과 파견의 판단 기준을 축소하고, 뿌리 산업을 비롯해 교사, 기자, 간호사 등의 직업도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거예요. 일본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파견법 개악은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A.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기업의 사용자 힘이 너무 강해서, 기업 단위의 노동조건이 제각각 크게 다르다는 점이에요. 파견노동은 기업 간 노동조건 격차를 악용한 고용형태입니다. 대기업 안에서 중소 영세 기업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 파견노동인 거죠. 결국 대기업은 정규직을 파견노동자로 바꿀 수 있어 정규직은 점점 감소할 거에요. 정규직 노조도 더욱 힘을 잃어가겠지요. 그리고 사용자 책임을 부담할 수 없는 ‘이름뿐인 고용주’, 파견 사업주들이 늘어날 거예요. 반면 실제로 노동자에게 지휘, 명령하고 이익을 얻는 사용 사업주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부정의(不正義)’가 퍼지게 될 겁니다. 노동법은 허구적인 법체계가 되고, 노동자 보호라는 법의 존재 의의가 붕괴하겠지요.
한국 정부와 보수언론은 일본 파견노동의 심각한 폐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어요. 일본 파견법 시행 30년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워킹 푸어’가 확대되고, 고용이 악화하고, 사회보험제도는 축소됐어요. 파견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청년의 연 수입은 200만 엔 정도예요. 이들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연 수입 300만 엔 이상이 필요합니다. 결국 결혼이 줄고 출산율 감소도 가속하고 있어요. 지난해 일본 인구조사속보에 따르면, 일본 총인구가 5년 만에 94만 명 감소했어요. 이대로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 사회 자체가 지속 불가능해져요. 한국의 파견법 개악은 일본이 걸어온 잘못된 길을 뒤따르는 어리석은 행보, ‘우행(愚行)’입니다. 이런 우행을 모방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양극화가 보다 확대되고, 여성, 청년, 고령자가 빈곤으로 내몰리고, 노동조합이 무력화될 겁니다.
[기획연재 순서]
- 문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 ‘파견’입니다.
- 그래도 ‘파견’은 ‘필요악’ 아닌가요?
- 파견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파견’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