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소는 누가 키우나요
인터넷 소작인 된 이용자들
정은희 기자
SNS를 연구하는 미국 사회학자 체이네프 투페키(Zeynep Tufekci)는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를 통해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페이스북에 매달 20센트를 낼 테니 자신의 개인 정보를 추적하지 말아 달라고. 당시 페이스북 이용자 1명당 매달 20센트의 이익을 낸다는 저커버그의 설명에서 따온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은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기업들에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팔아 이윤을 내는 페이스북으로선 당연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소(개인 정보)를 주고 팔아 장사하는데 소에 접근하지 말라니 사실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페이스북에서 소는 누가 키울까? 우선 페이스북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2015년을 기준으로 세계 50여개 사무소에서 1만 2691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 약 2조 원에 가까운 수익을 이 사람들이 다 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 미디어 노동계가 주목하듯, 페이스북은 다양한 간접 고용을 기반으로 한다. 페이스북이 전 세계에 인터넷을 보급한다며 만든 Internet.org의 노동자들부터 2014년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실리콘 밸리 페이스북 셔틀버스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간접 고용 노동자들도 페이스북이 낸 수익에 기여한 이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 정보를 생산하는 이용자 또한 페이스북 수익의 근거다. 그러면 이들은 페이스북과 어떤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을까?
페이스북은 이용자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학계에선 페이스북 개인 정보를 지대(토지 사용료) 또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 중간 재화인 자본재로 보는 등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 정보 통신 연구·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이 이용자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정보 미디어 연구자 재론 레이니어 (Jaron Lanier)는 2013년 《누가 미래를 소유하는가(Who Owns the Future?)》라는 책을 통해 “페이스북은 이용자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정보화 시대 개인 정보는 ‘1차 산업 생산물(first-class product)’처럼 다뤄져야 한다며 이에 걸맞는 생산관계가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차용한 운동도 있다. 2014년에는 뉴욕시 뉴스쿨의 교수인 로렐 프택(Laurel Ptak)이 주도해 페이스북에 임금을 요구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용자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수많은 포스트를 올리지만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탐욕적인 기업에 의해 착취될 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일이다. 당시에는 미국 오큐파이월스트리트운동도 이 운동에 지지를 보냈었다.
망 중립성이란 개념을 고안해낸 팀 우(Tim Wu) 미국 컬럼비아법대 교수도 비슷한 관점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언론 《뉴요커》에서 결국 저커버그가 부자가 된 한 가지 이유는 이용자의 모든 데이터에서 이윤을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낸 것이라면서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데이터로부터 이윤을 낸다면 이용자 또한 이윤의 수혜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개인 정보가 노출될수록 점점 더 위험해지고 상업화되니 이용자도 그 이윤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렇게 페이스북이 이용자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여러 외신이 관심 있게 다루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 소작인, 볼런테리아트가 된 청년들
결국 페이스북에서 수익은 그것이 노동이든 지대이든 아니면 자본재이든,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에 기초한 활동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문제 의식이 제출되고 있지만 아직 이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팀 우는 여기에 속임수가 있다고 본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무료로 생각한다는 것. 사실 페이스북 가입은 무료지만 그 대가는 개인 정보이며 우리는 여전히 얼마나 큰지 모르는 그 가치를 페이스북에 무상으로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의 자유로운 표현과 공유 문화는 애초 1990년대 후반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소리바다나 냅스터(Napster)와 같은 공유, 교환 소프트웨어들이 보급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당시 이 프로그램들은 이용자가 콘텐츠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이용자에게서 개인 정보를 무료로 취합해 판매하는 전도된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형성된 공유와 연대의 메시지들은 이용자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상업적인 개인 정보로 뒤바뀌어 시장에 팔린다. 더 많이 노동하는 사람이 더 많이 착취되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원리가 페이스북에서는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착취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구조에서 나오는 이윤에서 배제된 이는 주로 청년이다. 통계 수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페이스북의 주 이용자 층은 청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청년층에서 또 높은 것이 있다면 바로 실업률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 활동의 변화에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고 특히 니트족1)이라며 이들을 ‘비경제 활동’ 인구로 분류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에 기초한 인터넷 문화와 함께 자라 온 청년들은 경제적인 수익이나 일자리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처럼 말이다. 노동으로서의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의 가사 노동과 유사하다.
사회적 미디어, 공동의 자산으로 복원해야
그러면 이용자는 어떤 근거로 페이스북에 이윤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을까? 사실 저커버그는 지난해 말 자신의 딸 맥스를 위해 자신의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디언>이 지적했듯,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립자 빌 게이츠의 게이츠재단처럼 막대한 기부 또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부자의 영향력만 키울 뿐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또는 개인 정보에서 나오는 이윤을 이용자에게 전달하면 독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볼런테리아트(Voluntariat, 볼런티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 자발적 노동자)에 주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보 통신 연구자 제프 슐렌버거(Geoff Shullenberger)는 “목표는 시장으로의 임금 체제로 향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보다는 사회화하는 것, 공동의 자산으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미국 사회주의 언론 《자코뱅》에서 인터넷에서의 활동은 “‘디지털 소작인’처럼,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 100%를 자본이 가져가며 점점 더 많은 노동의 영역이 자발적인 활동이 되고 이 자발적인 활동은 점점 더 기업 이익의 원천이 돼 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개인 정보를 자본화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상업적으로만 운영한다면 결국 현재와 같은 공유와 연대를 기초로 하는 이용자들의 미덕은 상처 나기 쉽다는 것. 그는 또 “볼런테리아트가 저항하길 원한다면, 내적 보상이 전제된 노동 형태를 벗어나 이윤 축적을 해제(expanding extraction)하라고 지속적으로 폭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경제적인 이유로라도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표현의 자유, 감시와 독점 문제까지 ‘페이스북 제국’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사실 그의 표현처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세계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만 해도 MS 제국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제국 속에서 살고 있다.
한편,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페이스북뿐 아니라 플랫폼 이코노미라는 형태로 우버(Uber), 에어비앤비(Airbnb) 등 생산과 소비 관계망이 변화하면서 가치 창출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씨앤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처럼 미디어 이용자와 그늘진 플랫폼 노동자들의 연대가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라며 정보 미디어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 간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페이스북의 독점에 대해선 그 이윤과 운영 과정 모두에 대한 이용자들의 통제와 연대, 공동의 자산으로 만드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면 이제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저커버그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 단체 협상을 내걸고 파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먼저 이용자들의 총회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이는 단지 페이스북만이 아닌 구글, 네이버, 다음, 카카오스토리 등 모든 인터넷, SNS 기업에 관한 문제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