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 집행위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관리자가 바로 앞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노려보더라고요. 속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계속 징계를 당하고 고소를 당하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요. 화가 쌓이는 것 같아요.”
가학적 노무 관리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지키는 동료 노동자의 경험이다. 이런 풍경을 우리는 이미 많은 곳에서 보고 있다.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은 KT 노동자는 연고가 없는 곳에 발령을 받고도 사택을 배정받지 못해 찜질방을 전전해야 했고,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해지 고객의 모뎀․셋톱 박스 수거를 담당하며 인사 고과에서도 계속 낮은 점수를 받았다. 3월에 열린 ‘반월 시화 공단 노동자 인권 침해 실태 토론회’ 에서는 사용자가 여성 노동자들의 탈의실에 들어와서 옷장을 열어 보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도 발표되었다.
유성기업은 민주 노조를 없애기 위해서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KT는 구조조정 대상자인 노동자를 괴롭혀서 자발적으로 나가게 하려고 했다. 두산인프라코어 등에서도 구조조정 방식으로 이런 괴롭힘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반월 시화 공단의 인권 침해는 노동자를 우습게 여기는 관리자들의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부 고발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인권 침해가 활용되기도 한다.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현장에서 이런 인권 침해가 관리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위상과 권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사회의 모습이 노동 현장에도 투영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이 가치의 중심이다. 노동자들도 이윤을 위해 투입되는 산물로 간주되고 ‘비용’으로 인식된다. 기업들은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한다.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기에 인권 침해는 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법과 제도가 이런 기업의 탐욕을 억누르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힘을 보임으로써 기업의 인권 침해를 막는 것이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존중받는 길은 사회적으로 기업의 탐욕을 제어하거나 노동자들이 투쟁함으로써 기업에 ‘두려움’을 심어 줄 때 가능하다. 기업의 인권 침해를 막는 것은 기업이나 관리자들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과 인권을 중요한 권리로 여기는 사회적인 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두 가지 모두가 무너져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인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진실 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싸움을 혐오하고, 이 사회가 정당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떳떳이 활보한다. 고용노동부의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이 ‘일 안 하고 돈만 많이 받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징계’라고 믿는 이데올로기가 퍼지고, 가학적 노무 관리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이들에 대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대다수 노동자가 노동조합이 없고 현장에서 힘을 갖지 못하니, 노동자를 책임감이 없고 때로는 폭력적인 존재로 이미지화한 정부와 기업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 이미지의 동전의 양면이 ‘노동자들을 지나치게 약자로 만들고 피해자화’하는 것이다. 요즘 작업장 인권 침해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많이 다룬다. 그런데 언론은 이 문제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노동자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로서만 다룬다. 이것이 기업에 대한 일시적 분노를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서 인권 침해에 대항해 왔다. 청소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가장 기뻤던 것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당당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그 당당함을 무너뜨리려고 또다시 가학적 탄압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버텨 내는 힘도 바로 그 ‘당당함’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도 한광호 열사의 영정 사진을 부여안고 서울시청 농성장을 지키고, KT 노동자들이 인권 침해에 대한 산재 인정을 요구하며 싸우고, 반월 시화 공단 노동자들이 숨죽이면서도 다양한 방식의 일상적 저항을 하고 있는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작업장에서 인권 침해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기는 어렵겠지만 그 고통 자체보다는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고 집단적인 힘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는가를, 그래서 인간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실현하고자 하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 고통을 드러낸 이 노동자들의 분투가 더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