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 기자
아르헨티나의 새 질서… 긴축, 대량 해고, 집회 시위 탄압
애덤 패브리(Adam Fabry)
[편집자 주] 아르헨티나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새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가혹한 긴축 조치를 밀어붙이며 야권을 탄압하고 있다. 애덤 패브리(영국 브루넬 대학)는 우파의 복귀가 불러온 것은 긴축, 대량 해고, 집회 시위 탄압의 새 질서였다고 미국 사회주의 언론 <자코뱅>에 밝혔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남미 곳곳에 들어섰던 좌파 정권이 우파의 공격 속에 위협받는 가운데 이미 우파가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살펴본다.
“우리는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왔어요. 물도, 전기도 없는데 임대료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자리 문제도 너무 심각합니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죠. 일자리를 요구하기 위해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 <데모크라시 나우> 에두아르두 벨리보니의 발언 중1)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넉 달이 지났다. 이 백만장자 기업가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페론주의2) 집권당 ‘승리를 위한 전선(Frente Para la Victoria)’ 후보 다니엘 시올리를 물리치고 당선했다.
이 승리는 신자유주의 연합 ‘바꾸자(Cambiemos)’의 대성공이었다. 이로써 12년 동안 지속했던 페론주의 시대는 끝났다. 마크리는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지난해 12월 취임한 뒤 키르치네르 시대의 대중적 조치를 되돌리는 데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있다.
마크리는 취임 연설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대립 정치를 끝내고 사법부에 독립성을 부여하며 부패, 마약 거래와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또 복지 정책을 지속하는 한편 빈곤을 퇴치하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마크리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자국 내 자본가와 초국적 기업의 편에서 명확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신속하게 구조조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례 없는 (미국 행정 명령과 비슷한) ‘긴급 조치’로 FPV가 다수인 상하원 표결을 우회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고 있다.
마크리는 집권 일주일 만에 통제 위주의 키르치네르 정부 정책을 폐지하고 병든 국가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수많은 개혁 조치를 입안했다. 지난 12월 새 정부는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 우익의 토대인 대농장 소유주를 위해 콩 수출 관세를 35%에서 30%로 낮추고 곡물과 소고기, 어류 수출 관세를 폐지했다.
뒤이어 JP모건 이사회 출신 알폰소 프라트 가이 재무장관은 달러 통화 규제를 폐지해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를 30% 포인트나 떨어트렸다. 놀랄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 나팔수)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리의 초기 개혁이 “이윤을 내고 새 바람을 만들 것”이라고 논평하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정책으로 누가 이익을 얻을지는 분명하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지적한 대로, 마크리의 정책 선호 대상은 농장주와 달러를 쓰는 도시 중상위 계층이다. 그의 정책은 노동자 계급에게는 심각한 임금 삭감을 의미한다.
친미, 친금융 동맹 재건축
마크리 정부의 초기 개혁은 미국과 유럽연합, 멕시코와 콜롬비아, 페루와 칠레 등 친미 태평양 동맹 쪽으로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관계를 재정렬하는 폭넓은 시도를 의미한다. 반대로 (우파 동맹과 경쟁해 온) 남미 정부 간 경제 협력체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나 중국과의 관계는 느슨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과 같이 서구가 지배하는 국제 금융 기관과의 관계를 다시 수립했고, 유럽연합에는 포괄적 자유 무역에 관한 협상을 제안했다. 마크리는 또 (키르치네르 정부가 협상을 거절한) 페소 평가 절하와 특정 상품에 관한 수출 관세 폐지 비용을 벌충하기 위한 외채를 구하려고 국외 벌처 펀드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였다.
지난달 말 서명한 사전 합의문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보수적인 억만장자 폴 싱어의 엘리엇 매니지먼트사를 포함해 벌처 펀드 4개사에 46억 5천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합의문은 FPV를 포함해 여당으로 넘어간 몇몇 야당 의원 덕분에 하원에서는 통과됐지만 여전히 상원 승인 등 상당한 법적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액수의 75%, 즉 아르헨티나가 처음 헤지펀드에 빌린 총액의 10배에서 15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하려고 한다.
국제 금융 시장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친기업 조치를 환영하고 있지만, 이 나라 경제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IMF는 2016년 아르헨티나 경제 성장이 1%까지 수축할 수 있다면서 ‘가벼운’ 경제 후퇴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현재 25~40% 수준에서 후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긴축과 야권 탄압
마크리 정부는 또 친기업 노선을 따라 교육과 보건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지난달부터는 전기 요금(키르치네르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했지만)을 300% 인상하는 등 수많은 긴축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고 반대 진영을 광범위하게 탄압하기 위해 공공 부문 노동자를 집단으로 해고하고 있다. 이미 전국 공공 부문 노동자 약 2만 5천 명이 해고 통지서를 받았고, 향후 2만 5천 명을 추가 해고할 계획이다.
정부의 긴축 드라이브는 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2016년 1~2월에 민간 부문 노동자 7만 5천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건설과 자동차, 광산 부문에 집중됐다. 대부분 평범한 아르헨티나인들은 이런 사건을 모르고 있다. 친여권 인사가 기관장으로 들어온 국영 라디오는 전국적 해고 물결에 관해 어떤 언급도 하지 못하게 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두 가지 논리로 해고 조치를 옹호한다. 하나는 “이 나라가 현대화돼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공공 부문 노동자가 지난 키르치네르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지명됐거나 ‘게으른 철밥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크리 정부는 대통령의 친구와 충성스러운 기술 관료로 채워졌다. 대통령은 내각 재무장관에 알폰소 프라트 가이, 에너지장관에 전 로열 더치 셀 임원 호세 아란구렌, 외무장관에는 전 유엔 외교관이자 텔레콤 아르헨티나 임원 수산나 말콜라를 지명했다. 이렇게 마크리의 핵심층은 JP모건, HSBC, 몬산토, 셀, 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기반의 거대 미디어 그룹 클라린 등 세계에서 가장 큰 (대부분 스캔들을 냈던) 기업 출신으로 구성됐다.
마크리 정부는 또 자신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다룰지 분명히 했다. 올해 초 밀라그로 살라 투팍아마루지역사회연합(TANA) 대표는 북부 후후이 주 여당 헤라르도 모랄레스 주지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금됐고, 동부 플라타에서 일어난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투입해 해산했다.
‘카사 로사다’(아르헨티나 대통령궁) 내부의 변화를 나타내는 신호로서, 마크리 정부는 또 어떻게 사회적 저항을 취급할 것인지에 관한 새로운 계획을 도입해 탄압하고 있다. 인권 단체와의 협의 없이 안전부와 법무부가 도입한 계획에 따르면 사회적 시위의 권리는 “사람들(그리고 자본)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한에서만” 보장된다.
실제 아르헨티나 경찰은 그들이 ‘질서’를 위협한다고 간주하면 누구라도 단속할 수 있는 백지 수표를 보장받았다. 최근 안전부 장관은 새 법에 대해 “우리는 그들(시위대)에게 5~10분을 주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라고 상냥하게 부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동시킬 것”이라고 요약했다.
야권의 현실
이러한 우파의 맹공에 맞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노동조합과 인권 단체, 의회 페론주의 야권은 정부의 조치를 비판한다. 하지만 주요 야당이 집권한 지방 정부에선 아무 가책도 없이 긴축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페론주의 정당은 내부의 위기에 빠져 있다. 전 대통령 후보 세르히오 마사와 북부 살타 주지사 후안 마누엘 우르투베이가 주도하는 당내 우파는 공공연하게 마크리와 제휴하려 한다. 한편, 당내 중도 좌파는 지난해 선거 패배와 불확실한 지도력에 마비된 듯하다.
주요 노조 연맹 지도부도 비슷하다. 마크리 정부의 새 긴축 조치에 맞서려고 하지만, 회유적인 톤이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
아르헨티나 진보 정치의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마크리 취임 직후 확산하고 있는 수많은 긴축 반대 시위에서처럼) 급진 좌파와 사회 운동, 일반 노조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긴축 반대 연합은 전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파에 맞선 투쟁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워커스 8호 5월 2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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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정리 해고와 긴축에 맞선 2만 명 규모의 행진이 벌어졌다.
2. 아르헨티나에서 1946년 노동자층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후안 페론 대통령의 친노동, 복지, 자립 정책을 지지하는 중도 좌파 노선.
3. 아르헨티나 44, 45대 대통령(2007.12.10.~2015.12.10.)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와, 그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집권한 시기(아르헨티나 43대 대통령. 임기 2003.3.25.~2007.12.10.)를 일컬음.
* 원문 www.jacobinmag.com/2016/03/argentina-macri-kirchner-cambiemos
* 번역 정은희 기자
* 애덤 패브리는 영국 브루넬 대학에서 정치와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