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28일, 결성과 동시에 1,500여 교사가 교단을 떠날 만큼 탄압을 받았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는 2016년에도 조직을 지키기 위해 35명의 교사가 교단을 떠날 처지다. 돌이켜 보면 항상 보수 언론의 전교조 죽이기에 시달렸고 대대적인 탄압이 뒤따랐다. 전교조는 뭘 그리 잘못했길래 맨 탄압만 받을까.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얘기를 들어 봤다. 전교조가 탄압받을 만했다. 2003~2004년 10만 명을 바라보던 조합원이 6만으로 줄어들 만도 했다. 1989년엔 정권에 눈엣가시였고, 2016년엔 자본과 재벌에게도 눈엣가시 활동을 깨알같이 하고 있다.
그러니 보수 언론은 틈만 나면 동네북처럼 전교조를 종북이니 좌빨로 몰아대고, 정부는 어떻게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노조가 아니므니다’ 통보로 발목 잡을 생각만 한다. 보수 언론과 정권의 탄압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수년째 싸우는 데도 아직 조합원이 6만여 명이나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신규 정규직 교원 충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젊은 조합원의 가입과 톡톡 튀는 활동은 전교조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워커스》는 지난 5월 31일 오전 9시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변성호 위원장을 만났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 같았던 교사 대회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 노조 세워…”
지난 5월 28일 여의도 문화 마당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27주년 전국 교사 대회에 울려 퍼진 노래 〈참교육의 함성으로〉다. 이 노래엔 27년 전 전교조 결성 목표가 분명히 담겨 있다.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교육을 중단하겠다는 ‘굴종의 삶을 떨쳐’,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을 이루겠다는 ‘반교육의 벽 부수고’, 교사도 노동자라는 ‘교직원 노조 세워’.
200여 명의 교사와 예비 교사가 무대에서 합창하고 7,000여 참가자가 제창한 전교조 조합가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울림이 있었다. 교사 대회는 굴종의 삶을 떨치겠다는 비장함으로 시작했지만 젊은 조합원의 기발하고 유쾌한 결의가 전체 분위기를 휘감았다. 정부의 법외 노조 후속 조치인 전임자 복귀를 거부한 35명의 노조 지도부와 간부가 해고를 앞두고 있어 비장함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위에 풍자와 투쟁의 상상력을 버무려 의지가 모였다. 무대 위에서 젊은 조합원은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면서도 정권에 끝까지 개겨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줬다. 16개 지부 소개는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 새로 배움터(신입생 OT) 장기 자랑 같은 느낌이었다. 그이들의 에너지는 전교조가 위기인지, 정권이 위기인지 아직 알 수 없게 했다.
전교조 역사 잘 모르는 젊은 세대, 전교조에 가입하다
전교조는 고용노동부가 6만 조합원에 해직자 9명이 가입돼 있다고 규약 시정 명령을 내리고, ‘노조 아님’ 통보를 한 2~3년여 사이 부침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지난 1월 21일 법외 노조를 결정한 2심 판결 후 오히려 조직은 안정화되는 추세로 보였다. 지도부는 상반기 내내 학교 현장을 대대적으로 방문했다. 현장 조합원 가입 확대에 주력하고, 조직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변성호 위원장은 요즘 젊은 조합원은 전교조 역사를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도 젊은 교사의 가입이 늘고 있단다. 전교조는 젊은 신규 조합원과 공감하기 위해 고민이 많다.
“교원 수급이 제한된 데다 기간제 교사도 급증하고 있어서 정규 교원이 많이 늘지 않아요. 전교조도 평균 연령이 높아진다는 진단이 있었어요. 예전엔 신규 조합원이라도 학생 때 전교조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들어왔는데,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전교조 역사를 잘 모르는데도 가입을 해요. 그래서 4~5년 전부터 ‘2030 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신규 교사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2030 세대가 전교조와 노동조합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도록 노력했어요. 요즘은 젊은 동지가 지역에서 꽤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교사 대회 전체 기조는 전교조가 살아 있고, 더 힘 있게 나가자는 것이었다. 살아 있다는 분위기는 교사 대회에 온 젊은 조합원이 날것으로 보여 줬다. 각 지부 소개마다 젊은 조합원이 주도해 대통령과 권력을 조롱하고, 누가 이기나 붙어 보자고 싸움을 거는 느낌이었다.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조합원이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스스로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정부가 너무 지나치다는 거죠. 박근혜 정부 들어 노동 탄압이나 세월호, 국정 교과서 문제 등에 오만과 독선이 깔린 게 하나 있고, 전교조에 너무 부당하고 비상식적이라 우리가 옳다는 자신감이 있고요. 그런 속에서 젊은 세대가 전교조 활동에 활발한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대교체란 표현도 하는데, 지회장님들이나 중간 활동가인 대의원도 젊은 세대가 몇 년 전부터 계속 맡고 있어요. 이런 활동이 교사 대회에도 반영됐고요. ‘이 정권이 오래가지 못하고, 힘만 모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투영된 것 같아요.”
전교조는 참여 정부 초기 9만 3,000여 명까지 조합원이 늘었다. 1999년 합법화가 되면서 전교조에 대한 지지가 조합원 확대로 이어졌다. 참여 정부 초기 정부와 단체 교섭을 하면서 10만을 바라봤다. 지금은 6만여 명. 왜 이렇게 줄었을까? 변 위원장은 보수 세력의 집중포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2003~2004년 이후 전교조에 대한 엄청난 공세가 보수 언론 중심으로 진행됐어요. 빨갱이, 좌빨 같은 얘기가 돌기 시작한 시기가 그때였고요. 보수 언론의 집중포화가 내부에서 흔들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됐습니다. 또 어찌 보면 전교조가 합법화되면서 교사의 목소리가 학교 현장에 퍼질 수 있게 됐고, 과거 같은 권위적인 학교 모습이 조금은 약화하자 전교조를 통한 권리 보장 필요성이 적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전교조도 성찰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교조의 초심 – 참교육, 노동 기본권, 정치의 자유
보수 언론은 수시로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고 공격한다. 학생 문제에만 접근하지 않고 대사회적 문제나 노동 문제에 관여하면 집중 포격을 했다. 보수 언론이 잃었다고 하는 전교조의 초심은 뭘까? 참교육이다. 그런데 전교조의 참교육은 교육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참교육에는 사실 노동도 포함돼 있거든요. 수업 혁신만 가지고 참교육이라 하지 않거든요. 획일적이거나 주입식이 아닌 수업 방식의 다양화도 필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칠 건가 하는 고민에는 노동 인권도 들어가 있죠. 참교육은 학교를 넘어 연대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조합원에게 많이 있어요.”
조합원이 6만으로 줄었지만 9만 때보다 학교를 넘는 노동자 연대 의식은 더 커졌다. 변 위원장에 따르면 과거에는 전교조가 민주노총과 함께하는 데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조합원이 꽤 많았다. 왜 전교조가 민주노총에 들어가느냐는 것이었다. 교사도 노동자라고 선언하면서 노조를 만들었지만 현장 교사와 정서적 괴리가 없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9만 조합원 때보다 지금 조합원이 민주노총과 함께할 필요성과 의무감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으로서, 교사로서, 전교조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부당한 명령에 무릎 꿇지 말자는 표현이 나오는 것 같아요.”
참교육은 노동 기본권 외에도 정치의 자유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변 위원장은 전교조가 단순히 교사의 사회 경제적 지위 안정만 목적이었다면 굳이 노동조합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했다. 노동조합으로서 기본권과 정치적 자유를 얻을 때 더 평등하고 진실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지향과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기본권 투쟁과 세월호 투쟁, 역사 교과서 투쟁이 분리될 수 없어요. 우리가 힘이 더 생긴다면 세월호 진실을 밝히거나 역사 왜곡을 더 힘 있게 막아 낼 수 있고, 학생에게 비판적이고 스스로 창의적이고 주체로 설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잖아요.”
전교조가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려는 건 단순히 제자와 동료 교사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거짓으로 은폐하려는 것을 막고 진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를 막는 이유도 거짓임을 알면서 학생에게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조의 기본 방향이다.
전교조는 역사 교과서 문제뿐 아니라 경제(사회) 교과서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전경련의 지원을 받는 자유경제원 출신이 여당 비례 대표가 돼 언제 교과서 전쟁 2라운드를 시작할지 알 수 없다. 전교조는 노동 교육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우선 알바나 특성화고 학생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교육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서 권리와 노사 관계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대다수 노동자가 될 학생에게) 유익한가를 외국처럼 초중등 교육 과정에 넣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과 권력이 27년 내내 탄압할 만하다.
“사회의 옳고 그름에 대한 투쟁을 많이 했는데, 정권 차원에서 보면 굉장히 성가신 존재뿐 아니라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권력을 유지하는 기재가 교육이었는데 그런 기재를 단호히 끊고 정권의 시녀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 전교조잖아요. 정부나 재벌 쪽은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전교조 주장이 굉장히 확산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엄청난 탄압이 올 수밖에 없죠.”
집요한 탄압과 종북 몰이는 전교조를 사회와 분리해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려는 데 있다. 조합원 숫자로만 보면 내부가 흔들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변성호 위원장은 더는 그런 프레임으로 조직이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봤다. 남은 6만 조합원은 노동자로서 건강성을 잃지 않아 빨갱이 프레임이나 교사=성직자(교사는 노동자가 아닌 학생에게 희생해야 하는 존재) 프레임이 더 안 먹힌다는 것이다.
집요한 이데올로기 공세로도 잘 안 먹히자, 정부가 더 집요하게 추진하는 것 중 하나가 성과급이다. 학교에서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데 성과급을 주겠다는 것이다. 성과급 비율과 차등액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학교가 무엇으로 성과를 매길 수 있겠어요? 교원 평가와 겹칠 것 같은데 결국 교원을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교원 통제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겠다는 겁니다. 그걸 받을 수 없죠. 단순히 교사의 임금 체계 변화가 아니라 임금 체계 변화를 통해 교사를 통제하려는 겁니다.”
전교조는 2000년도부터 성과급을 막아 보자며 스스로 균등 분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균등 분배를 하면 징계하겠다고 하지만 균등 분배는 호응이 크다. 학교 내에서 전교조 조합원끼리만 분배하지 않고, 비조합원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학교는 지역 단위에서 확장해 균등 분배를 하고 어떤 학교는 기간제 교사까지 해서 분배하기도 한다.
법외 노조 돼도 죽지 않는 전교조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조합원 6만 명 중 단 9명의 해고자가 포함됐다고 〈교원노조법〉상 노조의 자격을 빼앗았다. 법외 노조가 됐다. 사용자인 교육청에 단체 협약 체결을 강제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노조 사무실도 빼 줘야 하고, 전임자도 다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약간 무식한 질문을 던져 봤다. 법외 노조 후속 조치로 미복귀 전임자 35명에 대한 직권 면직이 코앞에 와 있는데 기존 9명의 해직자를 지키려다 희생자가 늘어나는 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9명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취소하는 대신 다른 차원의 보상을 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전교조는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 또 해직될 텐데, 앞장선 사람은 전부 조합에서 배제해야 하는 거라 받을 수 없는 겁니다. 9명의 생계를 유지한다 해도, 또 해직자가 나올 거고 또 나올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노조로서의 근간이 훼손되고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조합원이 총투표로 확인해 줬죠. 부당한 명령이고 전교조 활동의 완전한 제약이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조합원 동지의 의견이고요.”
‘그래요, 맞아요. 전교조가 9명을 내칠 수는 없어요. 그런데 35명의 해직자가 또 생기면 그분들 생계는요?’ 이런 물음이 더 나올 테지만 전교조는 이미 노조 전임자 임금을 사용자에게 받지 않고 있었다. 순수 조합비로만 충당하고 있다. 일반 노조법은 사용자가 전임자 임금을 일정 주도록 했지만 애초 〈교원노조법〉은 정부가 전임자 급여를 주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만든 조항이 오히려 노조를 버티게 만든 기초가 된 셈이다.
“저희는 지금까지도 전임자 급여를 조합비에서 냅니다. 사실 조합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라 굉장히 경직성이 커요. 이런 것은 어렵지만 이미 다 조합원과 확인하면서 해 왔던 거고 현재 규모 수준에서 재정 안정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재정 안정을 위해 2~3년간 내부 토론으로 조합비 내는 방식을 CMS 자동 이체로 전환했습니다. 내부적으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변성호 위원장은 전교조가 다시 법내 노조가 된다면 결국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가르치는 건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 사회, 인권, 생태, 환경 등 다양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 기본권과 정치의 자유다.
자본과 권력에 통제받지 않기를 꿈꾸는 전교조가 탄압받을 이유는 너무 많다. 그런데 그렇게 죽이고 싶은 전교조는, 부활하는 피닉스처럼 살아나 박근혜 정권을 이기고 있었다. 보수 세력과 재벌, 정부에 얼마나 싫은 존재일까. 이 정부가 전교조의 힘을 약화할 방법은 별로 안 보인다.
김용욱 기자
사진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