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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등록퀴어다!

2018년 11월 16일Leave a comment48호, 레인보우, 미분류By 나영

“나는 나의 정체성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자율권을 위해 나의 정체성을 사용할 것을 선택했다.”

_훌리오 Julio

 

“나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비난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해 왔으므로, 나를 드러내고, 일어서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나의 의무이다.”

_조르지 Jorge. M.

 

“나는 미등록퀴어다. 이것은 해방의 공간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삶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를 허용하는 모든 경계와 정상성에 대한 기대를 가로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_빈센트 Vincent

 

이 문장들은 멕시코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게이 아티비스트(Artivist) 훌리오 살가도( Julio Salgado)의 작품에 새겨진 미등록 이주민 퀴어 활동가들의 발언 내용이다. 그의 <I Am Undocuqueer!> 시리즈는 2010년 소위 드림법(DREAM Act, 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의 통과를 요구하며 하트 상원 빌딩에서 연좌시위를 벌인

이주민 학생들의 투쟁을 계기로 시작됐다. 드림법은 미등록 이주민 청소년들이 추방당하지 않도록 조건부 거주를 허용하고 이후 자격 요건을 충족하면 영구 거주를 할 수 있도록 2001년 상원에 제안된 법안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계속해서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2010년 미등록 이주민 학생 활동가들은 하트 상원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다가 연행됐다. 이후 살가도는 미등록퀴어청소년집단(the Undocumented Queer Youth Collective), 퀴어미등록이주민프로젝트(the Queer Undocumented Immigrant Project) 등의 그룹들과 함께 “나는 미등록퀴어다!”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 운동과 그의 작업에서 ‘미등록’ ‘퀴어’는 자기 주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역량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미등록퀴어다!”라는 외침은 ‘불법적’ 존재로 정의된 이들, 정해진 규범과 정상성의 경계 밖에서 살아가며, 그 경계 너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맞춰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 자격을 승인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더 이상 승인받는 존재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강력한 해방의 선언이다. 동시에 이 선언은 퀴어인 자신들에게 규범을 따르는 삶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침묵을 강요해온 출신 국가, 민족 커뮤니티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들은 등록과 승인을 통한 존재 증명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미등록 이주민이자 퀴어로서 ‘불법적’ 존재이며 ‘경계 밖의’ 존재기 때문에 이주민 커뮤니티에서도,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학생 커뮤니티에서도 비가시화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자기 정의를 통해 ‘미등록 이주민 퀴어’로서의 자기 존재를 드러낼 때 이를 둘러싼 관계도 변화했다. 이제 이들의 요구는 “나를 승인하라”가 아니라 “나를 인정하라”가 됐다.

 

나를 인정하라

 

“나를 인정하라”는 요구는 “나를 허락해 달라”는 요구와 다르다. 나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고,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지 않으며, 이미 여기 이 사회에서 당신들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은 이 사회의 주어진 구조 안에 나를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가 자기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라는 요구이다.

 

여기 한국에도 수많은 이주민, 난민 퀴어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노동력 수요, 생산 효율성에 맞춰진 비자 제도는 그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우리의 경계와 자격을 세분화한다. 특히 한국의 비자, 귀화 제도는 철저히 혈통주의에 따라 한국인 혈통을 재생산할 수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남성 이주노동자는 한국의 노동력 수요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머물다 가도록, 결혼이주 여성은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관계를 유지하며 자녀를 낳아야 귀화에 유리하도록, 여성 이주노동자는 필요한 노동력으로서 일하되 보다 저임금의 고립된 환경에서 일하도록 세세하게 짜인 제도 속에서 퀴어 이주민은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고, 백인 1세계 중심의 한국 내 외국인 퀴어 커뮤니티를 찾아가기도 어렵다. 제도는 전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 한국에서도, 승인받는 존재가 아닌 인정을 요구하는 주체로서 그 존재들을 함께 드러내고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법적, 제도적으로 삭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생물학적’ 성별만을 인정하겠다는 그의 선포에 맞서 트랜스 커뮤니티와 퀴어들은 대대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소식을 보며 최근 한국에서의 또 다른 논쟁과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 서로를 확인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 살가도의 작업에 담긴 또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부끄러움 없이 오드리 로드를 인용하자면, 퀴어 미등록 이주민으로서 나는 우리가 싸워야 할 단일 이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이슈로만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_쁘레나 Prerna

 

“나는 미등록-퀴어이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이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_클라우디아 Clau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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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
nayong@work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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