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의료원 투쟁이 시작된 지 14년이 흘렀다. 2006년, 노동조합은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충원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기존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했다. 영남대의료원 사측은 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와 단체교섭 수임 계약을 하고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통해 조합원 950명이던 노조를 70여 명의 소수 노조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해고된 곽순복·박문진·송영숙 세 명의 노동자는 아직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3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해고자 복직과 노조탈퇴 원천무효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왼쪽부터 박문진 지도위원, 김진경 지부장, 송영숙 부지부장 [출처: 연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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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직복직, 노조 원상회복, 적폐청산, 영리병원 반대
5월 20일 오전, 대구 남구 영남대의료원 본관 입구 로비. ‘영대의료원 해고자 원직복직’ ‘영남대의료원 노조탈퇴 원천무효’가 적힌 조끼를 입은 세 사람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다. 잠시 후 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노동해방 원직복직 원상회복 적폐청산 영리병원 반대”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멘트가 끝나자 다시 일어나며 양손을 모아 108배를 이어간다. 접수창구 대기석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는 사람들도 있다. 세 사람의 간절한 몸짓에서 당당한 기품이 느껴진다.
‘절투쟁’ 중인 박문진(영남대의료원지부 조합원·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씨와 송영숙(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씨는 영남대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2007년 2월에 해고됐다. 해고된 지 올해로 13년이 됐지만, 이들은 영남대의료원을 떠나지 못한 채 원직복직과 노동조합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영남대의료원 노사 문제의 발단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주5일제 시행으로 영남대의료원 노사는 인력충원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합의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지키지 않고 단체협약 40여 건을 위반했다.
2006년 6월 8일 영남대의료원 노사 단체교섭이 시작됐고, 노동조합은 인력 충원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기존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했다. 당시 노조 측 요구안에는 ‘주말 환자·보호자 무료주차 시행’과 ‘보호자 없는 병동 만들기’ 등 의료민주화와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통해 보호자 침대와 환자 휴게실 설치, 설명받을 권리를 포함한 환자 권리확보, 병실 TV 무료시청 등 의료민주화를 꾸준하게 이루어왔다.
노동조합은 그해 단체교섭이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기존에 노동조합과 합의했던 단체협약 이행 불가를 주장하며 교섭을 혼란에 빠트렸다. 사전에 전혀 논의가 없었던 팀제를 도입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은 영남대의료원이 창조컨설팅 노무사 심종두 씨에게 단체교섭 전반을 수임하고,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심종두 씨는 2004~2005년 무렵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산별교섭에서 사용자 측 대표로 나와 교섭 파행과 장기화를 유도했던 인물이다.
교섭해태부터 노조 무력화까지, 노조파괴 시나리오
2006년 노조 사무국장을 맡았던 송영숙 씨는 당시 일련의 상황은 창조컨설팅 심종두 씨와 사측이 노조파괴를 공모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고의적으로 교섭을 파행시켜 파업과 이후 상황들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조합은 팀제 실시에 따른 노동 강도 강화와 경쟁심화·구조조정 등을 우려해 사측에 합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팀제 시행을 고수해 단체교섭은 파행의 길을 걷게 된다.
▲ 오른쪽부터 송영숙 부지부장, 박문진 지도위원,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 강동민 조직부장 [출처: 연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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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교섭 중간에 팀제를 갑자기 들고 왔기 때문에, 노조는 교섭을 마무리해놓고 직원 전체 공청회에서 같이 얘기하자고 했어요. 박동춘 의료원장도 면담에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병원장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어요. 고개를 끄덕인 게 합의한 것이냐면서.” (송영숙 부지부장)
그해 7월 19일, 박동춘 의료원장은 노조와의 면담에서 팀제 시행을 유보하고, 단체교섭 후에 논의할 것을 합의했다. 이로써 사태는 일단 수습되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김오룡 병원장은 또다시 전날의 합의를 뒤집었다. 결국 사측은 8월 1일 팀제를 일방적으로 시행했고, 대규모 인사발령을 냈다.
“보통은 파업 날짜가 다가오면 파업 전날이나 새벽까지 밤샘 교섭을 하잖아요. 그런데 파업 전날에도 사측에서 아무도 안 나왔어요. 조합원들은 파업 전야제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측이 교섭할 마음이 없으니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송영숙 부지부장)
7월 말부터 8월 24일 파업 전까지 사측은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하루 200명 내외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부분파업을 4일간 진행했다.
사측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노조의 조정신청에 대해 행정지도 결정 내린 것을 빌미로 노조의 파업을 불법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집회와 농성·대자보 작성·단체티셔츠 입기 등 노조의 모든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사측은 노동조합의 농성장을 철거하며 폭력 사태를 유발하고 노조 간부들을 고소·고발·징계했다. 이후 병원 측은 사내 통신문을 통해 노조가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으며, 노조의 사과를 요구하며 노사 관계를 지속적으로 혼란에 빠트렸다.
“연대동지들이 와서 천막을 치는데 병원 의사들과 구사대들이 와서 폭력을 유발하는 거죠. 밖이 어두우니까 연대동지들의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고, 안경도 빼앗았어요. 그리고는 우리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통신문을 병원에 올렸습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건 없는데도, 노조 간부들은 형사 고소·고발돼 금고형을 받았어요.” (송영숙 부지부장)
사측은 2006년 4일간의 부분파업과 노조 간부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이유로 10명을 해고(법원 판결로 7명 복직)하고, 28명을 징계했다. 5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조합비와 노조 간부 개인 통장이 가압류되기도 했다. 십여 대의 CCTV를 추가로 설치해 노조 활동을 감시했고, 두 차례에 걸쳐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같은 건으로 노조 간부에 대해 세 차례의 징계와 노조 탈퇴 강요 등 수년 간 노조탄압이 이어졌다.
그렇게 영남대의료원에서 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교섭 불참·해태 → 파업 유도 → 개악안 제시 → 단체협약 일방해지 → 징계·손해배상·고소·고발 → 조합원 탈퇴·노조 무력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곽순복 지부장과 송영숙 당시 사무국장, 박문진 지도위원은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박문진 씨와 송영숙 씨는 중노위에서 양정과다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영남대의료원 사용자 측 대표로 참석한 심종두 씨를 만났다.
“이거 보셨나요?”
송영숙 부지부장은 사측이 지노위에 제출했다는 130쪽이 넘는 두툼한 자료를 꺼냈다. 회사 CCTV로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대 촬영해 컬러로 출력한 사진 자료집이었다. 병원은 이 자료를 이용해 한 사람에게 동일한 건으로 기간을 나누어 수차례 징계했다.
조합원 강제탈퇴, 950명이 70명으로
2007년, 병원은 창조컨설팅 시나리오의 마지막 단계인 조합원 탈퇴와 노조 무력화 플랜을 시행했다.
“부서이동 같은 인사권을 갖고 흔드는 거죠. 똑같은 탈퇴사유가 적힌 양식을 주고 출근 전에 집단으로 원내 우체국에 가서 부치게 해요. 탈퇴서가 하루에 30~40장씩 들어왔어요. 나이트 끝나고 나면 탈의실에서 수간호사나 팀장이 와서 탈퇴서에 사인할 때까지 안 보내줘요. 그것도 버티면 교수들까지 와서 후배들 취업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압박하니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박문진 지도위원)
병원은 노동조합 무력화를 위해 중간 관리자라고 할 수 있는 주임간호사 탈퇴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비정규직들에게는 고용을 담보로 탈퇴를 강요했다. 조합원이 많은 부서의 부서장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측이 2007년부터 1년 동안 탈퇴시킨 조합원은 850명에 달했다. 950명이던 조합원은 3년 만에 70여 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2012년,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통해 영남대의료원,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등 14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168개 기업에 노조파괴 컨설팅을 해왔던 창조컨설팅의 만행이 드러났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은 창조컨설팅의 두 번째 표적이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 사측에 보낸 컨설팅 제안서에는 영남대의료원 노조 강제탈퇴 등의 노조파괴 사례를 자신들의 실적으로 홍보하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불법 파업을 만들기 위해 지노위의 행정지도를 유도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 역시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심종두 씨의 노무사 등록과 창조컨설팅 설립인가는 취소됐고, 심 씨 등은 최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으로 실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강제탈퇴 했던 조합원들도 노동조합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 이제는 현장으로
영남대의료원지부는 2006년 이후 로비농성과 천막농성, 쇠사슬농성, 삭발투쟁, 곽순복 당시 지부장의 37일 단식농성과 간부 동조단식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투쟁을 해왔다. 2011년에는 당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임금·비정규직 처우 악화, 생리휴가 유급을 무급으로 변경하는 등의 단체협약에 직권조인해 이 문제를 두고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11~2012년, 박문진·송영숙 씨는 서울로 상경해 지하방 생활을 하며 영남학원의 실질적 운영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해고자복직 등을 요구하는 ‘그림자 투쟁’을 전개했다. 박근혜 씨의 삼성동 자택을 비롯해, 국회와 서울역, 광주·강릉 등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다 쫓아 다녔다. 2012년 대선 전에는 박문진 지도위원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3천배를 57일 동안 했다. 자그마치 17만 번의 절을 했지만, 형사를 통해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노’가 박근혜 씨에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답변이었다.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문제와 노조탈퇴 원천무효 요구는 지부 단체협상 안건에도 올라가지 못하다가 2013년에야 특별요구안 형식으로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교섭 대상이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병원이 대구지방법원에 제기한 해고자 10명에 대한 ‘출입금지 및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소송’과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5억 원의 손해배상이 기각됐음에도, 심지어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전말이 드러났음에도, 병원은 여전히 자신들의 법적 무결함을 주장하고 있다.
김진경 지부장은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영남대의료원의 대표는 의료원장이 맞지만, 직원들의 임명장은 영남학원재단 이사장 명의로 내려오다 보니 의료원과 재단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고자 복직이 가장 우선임에도 해고자들의 희생으로 현재까지 오게 됐습니다. 사측은 13년 끌고 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올해는 강도 높은 투쟁을 통해 지역 투쟁으로 확산시키고, 사회적인 문제로 알려내 원직복직을 꼭 쟁취할 겁니다. 노조탈퇴 원천무효 투쟁도 계속할 거고요.”
108배가 끝난 후 박문진 지도위원·송영숙 부지부장과 점심식사를 하고, 영남대의료원을 산책을 했다. 벤치에 앉아 활짝 핀 붉은 장미를 본다. 5월의 그 결의와 다짐, 그리고 간절함이 이루어져 간호사 가운을 입은 이들을 영남대의료원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몸까지 불살랐던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이 해고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제 인생에서 영남대의료원은 절망적인 것도 있었지만, 인생을 올곧게 사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정의가 뭔지 더불어 함께 사는 게 뭔지 깨닫게 됐고, 그 과정에서 동지들과 조합원들과 함께 했던 세월이 저한테는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돌아가야죠. 정년이 2년 남았어요. 올해 반드시 복직해서 간호사 가운 입고 병원을 다니고 싶어요.” (박문진 지도위원)
“약속 지키라고 한 건데 나는 너무나 정당한데…. 약속은 저거들이 안 지켜놓고 불법은 저거들이 저질러 놓은 건데, 우리만 왜 힘들게 이래야 되지? 제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어요. 원래대로 다 정상복구 한다. 복직하고 조합원들 원래대로 다 돌려놓겠다. 그 생각으로 계속 왔거든요. 나가도 내 발로 나가지 이렇게는 안 나간다. 저는 원래 되게 긍정적인 마인드에요. 잘 될 거다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영대병원…. 20년이네요. 내 젊은 날의 희로애락 모든 게 다 들어있는 곳이에요. 여기서 노동조합을 하면서 많은 인생을 배웠어요. 이제는 진짜 끝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꼭 복직을 해야겠다. 복직하면 신입의 마음으로 1부터 다시 배워야죠. 열심히 배워가지고 후배들한테 ‘저 선배 닮고 싶다’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장에 노동조합의 성과도 보여주고 싶고요.” (송영숙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