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의 안전 교육법
윤지연 기자/ 사진 정운 기자
“아이고 깜짝이야!” 난데없이 휴대폰에서 울려 대는 경보음. 국민안전처가 발송한 ‘긴급 재난 문자’의 요란한 알림 소리다. 액정 화면에는 ‘비상 사태’, ‘경고’, ‘긴급’ 같은 문자가 떠 있다. 놀란 맘에 확인한 문자 내용은 ‘서울 폭염 특보 발령 중! 야외 활동 자제와 충분한 물 마시기, 물놀이 안전 주의 등 건강에 유의하세요’. 겨울에는 내용이 조금 바뀐다. ‘서울 지역 한파 경보, 동파 방지, 화재 예방 등 피해 없게 주의 바랍니다.’ 설날에도 긴급 문자가 온다. ‘운전 시 안전띠 착용, 음복 후 음주 운전 금지 등 안전 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더운데 밖에 나다니지 마라’, ‘물 좀 마셔라’, ‘차 조심해라’ 같은 경고는 매일 엄마에게 듣는 말이다. 긴급 재난 문자가 온 뒤 SNS에 들어가 보면, 한심스럽고 짜증난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인터넷에는 ‘성가신 긴급 문자 끄는 법’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출범한 재난 안전 총괄 기구다. 체계적인 재난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을 통해 안전사고 예방과 재난 시 종합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수습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설치됐다고 한다. 명색이 재난 안전을 총괄하는 권위 있는 국가 기구다.
하지만 내용 없는 문자나 보내는 국가를 향해 안전 대책 외쳐 봐야 소귀에 경 읽기일 터. 국가가 나에게 뭔가 해 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 한 몸 간수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안전한 삶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련 수업 이후 처음으로 안전 교육을 받아 보기로 했다. 아무리 뻘 문자를 보내는 정부라도, 스스로 안전 교육을 받고자 하는 국민을 위한 가이드 정도는 갖추고 있겠지.
30일 치 라면은 안전 대책의 필수품
국가안전처에서 정책 및 홍보 동영상으로 소개하는 안전 체험관은 바로 ‘비상 대비 체험관’. 용산 전쟁기념관 입구에 부속 건물로 딸려 있다. 건물 앞에 도착하니 족히 100명은 될 것 같은 군인들이 장총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견학 온 학생들이 환호하며 사진을 찍어 댔다. 그들을 피해 조심조심 지하 체험관으로 내려갔다. 20대 여성 가이드가 반갑게 맞으며 이것저것 안내를 해 줬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나 의아해 주위를 둘러봤다. 관람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 물으니 “주말에는 그래도 사람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안내에 따라 비상 대비 체험을 시작했다. 첫 번째 체험은 비상 대비 물품 준비 요령. 헤드폰을 끼고 만화로 된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내용인즉, 가정에서 평상시에 비상 대비 물자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국가 비상 사태에 대비해 찬장 같은 곳에 매번 비상 물품들을 준비해 놔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물품은 쌀과 라면, 통조림 30일분. 부탄가스도 15개 준비할 것. 취사도구와 침구, 의약품도 필수 준비물. 라디오와 라디오 배터리도 중요한 비상 대비 물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기적으로 유통 기한을 확인해 줘야 한다는 거다. 비상한 시국에 배탈이 나면 안 되니까.
교육을 받고 있자니, 갑자기 잊고 살았던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종종 사재기해 오던 신라면과 쌀 포대들. 수십 봉지의 신라면이 집안에서 썩어 가던 기억들. 교육 프로그램은 20여 년 전 기억을 소환해 내기에 충분했다.
게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었다. 화면 모니터에 있는 물품이 ‘비상 대비 물자’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게임이었다. 신나게 게임을 한 뒤, 바로 옆에 설치된 전시품을 구경했다. 그 진열장 속에는 신라면 한 봉지와 동원참치 통조림, 꽁치 통조림, 점보 비누와 청테이프, 로케트 건전지 등이 노란 조명을 받으며 진열돼 있었다.
이어지는 순서는 지난 60여 년간 북한이 일으켰던 군사 도발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모니터에서는 한국 전쟁부터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 사건, 연평 해전 등의 자료 사진 및 영상이 반복 재생됐다. 모니터 밑에 ‘북한의 안보 위협’이라고 새겨진 분노의 표지판이 시뻘겋게 번득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북한 핵무기 공격 시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시뮬레이션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 우선 자기가 핵무기를 터뜨리고 싶은 지역을 모니터로 선택해야 한다. 《워커스》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자, 지금도 편집장과 부편집장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서대문 지역을 손가락으로 클릭했다. 모니터에 ‘서울 서대문 500미터 상공에서 20킬로톤급 핵폭탄이 폭발한다면’이라는 문구가 떴다. 갑자기 모니터가 쿠르릉거리더니 ‘펑’ 하는 폭파 장면이 흘러나왔다. 화면이 불바다로 번쩍였다. 폭발 순간 반경 0.5킬로미터 이내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순식간에 증발하고, 1킬로미터 이내 모든 건물이 파괴되며, 2.5킬로미터 이내의 물질들이 타오를 것이라는 경고 문구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텅 빈 체험장에 그러고 있자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북한의 화생방 공격을 대비한 방독면 체험 교육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3D 영상으로 관람하는 코너도 있었다. 영상 관람 코너에서는 안내자가 설명도 해 준다던데, 그날은 운영하지 않는 듯했다. 방독면 체험과 교육 설명 프로그램을 듣고 싶다고 하자 “10명 미만일 때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체험관 말미에는 ‘인증서’를 발급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비상시 국민 행동 요령을 퀴즈로 풀면 인증서가 나온다고 했다. 열심히 퀴즈를 풀고 나니, ‘90점 훌륭합니다!’라고 찍힌 인증서가 출력됐다. 가이드는 마지막 코너라며 기념 사진 찍기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어색하게 웃는 얼굴 뒤로 판문점 배경이 펼쳐져 있었다. 안전 교육을 받고 싶었을 따름인데 반공 교육을 더 많이 받다 왔다.
민방공 대피소를 찾아서
좀 더 효율적인 생활 밀착형 안전 정보를 얻고 싶었다. 국민안전처 사이트에 들어가니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안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휴대폰에 앱을 다운받았다. 재난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안전 디딤돌’이라는 앱이다.
앱 초기 화면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국민 행동 요령’이라는 버튼을 클릭했다. 용산에서 교육을 받고 온, 비상 대비 물자 마련 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맞춤형 재난 안전 콘텐츠를 들여다보다 ‘민방공 대피소’라는 생소한 이름을 발견했다. 적의 포격이나 공습 등에 대비한 비상 대피소라고 했다. 지하철역, 지하 주차장, 대형 건물 지하실 등 전국 2만 4천여 개의 대피소가 현재 운영 중이다.
앱을 통해 내 주변 500미터 이내의 민방공 대피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 정말 우리 집 주변에만 4개의 민방공 대피소가 있었다. 지하철역 1개, 건물 3개. 국민안전처의 안내를 보니, 민방공 대피소에는 표지판이 부착돼 있다고 했다. 지하철역을 오가며 봤던 낯익은 표식이다. “사전에 ‘발’로 직접 찾아보고 확인하면 더욱 좋습니다.” 국민안전처는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과 함께 최대한 대피 시간이 짧은 대피소를 사전에 찾아보라고 권했다. 어린이에게는 대피소 약도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교육시키라는 안내도 나와 있었다.
발로 뛰는 안전한 시민이 되자는 마음가짐으로 집을 나섰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부터 들러 봤다. 정말 출입구에 민방공 대피소 표지판이 붙어 있다. 두 번째로 가까운 대피소 건물로 가 봤다. 평소 자주 드나들던 약국 옆에 있는 대형 건물이다. 반가운 마음이 치솟았다. 그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동네 건물이 그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저녁 7시 30분밖에 안 된 시각이었지만 건물 안은 캄캄했다. 건물 주위를 빙빙 돌며 표지판을 찾아봤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비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 그런가. 일요일이라 대피소도 쉬는 건가.
다음 날, 평일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건물을 찾았다. 건물 정문은 열려 있었고 경비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저 근처 사는 주민인데요, 여기가 민방공 대피소라면서요? 비상 사태 발생하면 어디로 대피하면 되나요?”
경비원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민방위요?”
“아니요. 민.방.공.대.피.소.요.”
경비원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여기 그런 거 없어요.”
“제가 정부에서 만든 앱을 하나 다운받았는데, 앱으로 찾아보니까 이 건물이 민방공 대피소라고 나와 있거든요. 혹시 지하 주차장 같은 곳 없어요?”
“지하 주차장은 없고, 뒤편에 주차장이 있는데 유료 주차장이에요. 함부로 주차하면 안 돼요.”
경비원의 거듭되는 손사래에 결국 알겠노라 하며 건물을 나섰다. 그때 경비원이 기자를 부르며 허둥지둥 쫓아 나왔다. 혹시 민방공 대피소 장소를 기억해 낸 걸까?
“아까 뭐 찾아본다고 했어요?”
“민방공 대피소요.”
“아니, 그것 말고. 뭐 찾아봤다고 했잖아요.”
“앱이요?”
“아, 이 건물에 앱은 없어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잠시 후 그 경비원은 기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기자 역시 어색하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국민안전처가 원망스러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기자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사람들은 후진국형 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이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1996년, 한국은 OECD 가입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3년 뒤, 경기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로 23명이 사망했고, 2003년 2월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192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무역수지가 흑자냐 적자냐 따위는 안전과 별 상관이 없었다. 여전히 ‘반공’이 곧 ‘국시’인 대한민국에서 ‘안전’은 곧 ‘반공’이었다. 주요 안전 대책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점철됐고, 그마저도 허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안전 교육 받고 안전해지고 싶었는데 불안감만 커졌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둑한 배포가 필요할 듯했다.
(워커스 6호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