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문화연구자, 서울대 강사)
어디서 이런 것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종종 발견한다.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분명 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 다시 보면 저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이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런 의미가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기술이든 상품이든 애초의 용도나 목적과 달리 실생활에서 응용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인간의 재주는 신기하게도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독극물을 치료용 약품으로 바꾸어 내기도 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나 목적에서 새로운 용도나 가치가 발생하는 것을 ‘파생’이라고 한다. 이처럼 새로운 의미, 용도, 가치를 가지게 된 물건이나 상품을 ‘파생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파생상품은 흔히 금융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금융파생상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금융파생상품이라는 것도 결국은 매우 복잡한 수식이나 논리를 적용해 원래 상품의 가치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원리에 기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튼 마치 금융파생상품처럼 어떻게 서로가 서로의 파생상품이 되어 엮이고 무엇이 무엇의 지수가 되어 이익을 얻는지 파악할 수 없는 현상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늘어나는 파생상품들
우버가 기를 쓰고 국내에 들어오려고 한다. 카카오는 각종 하위 플랫폼을 확장하면서 제국이 되려고 한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우리가 우버이츠(우버음식배달)를 사용해서 음식을 배달시킨다고 하자. 우버이츠의 관심은 우리가 배달해서 먹는 음식 자체가 아니다. 음식의 질이나 상태가 좋지 않다든가 하는 고객의 불만이 쏟아지지 않는 한, 우버이츠는 음식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버의 배달노동자가 배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버의 배달노동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버라는 플랫폼 회사에 우리의 데이터를 배달해준다. 우버 배달노동자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 앱의 형태를 한 플랫폼은 고객의 주문 위치와 시간, 주문음식과 음식점의 종류, 배달의 횟수나 빈도, 음식점 위치와 배달 경로 및 걸린 시간, 가격 등 모든 데이터를 자동화해 기록하고 우버에 전달한다. 그리고 이 우버와 같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온갖 데이터 파생상품이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예 파생상품도 있다. 흔히 연예기획사라고 하는 대형 엔터테인먼트회사에서 제작하는 것은 어쩌면 음악이 아니다. 회사들이 아이돌 만들기에 열중하고 K-pop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목표는 음악을 담고 있는 음반을 판매하거나 스트리밍하는 음원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음원차트에서 수개월간 인기를 끌고 수억 번의 스트리밍 재생으로 사랑받은 곡이라 하더라도 가수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교육훈련비나 각종 유지비용 등을 선지불한 기획사를 비롯해 수많은 관련자들에게 수익이 분배되고 나면 디지털 음원 수익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굿즈와 같은 파생상품이나 콘서트, 외부행사, 광고 수익이 훨씬 큰 수입이 되는 셈이다. 아이돌 가수들에겐 시디와 같은 물리적 음반은 음악을 담고 있는 굿즈로서 파생상품의 기능을 할 뿐이다.
미디어나 언론에서도 파생상품이 주류를 이룬다. 전통적으로 신문사가 유지되기 위해 판매한 것은 광고지면이었다. 신문 기사는 말하자면 광고에 덤으로 주어졌던 정보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의 신문은 늘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언론은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신문 기사나 뉴스는 이제 객관적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물론 그것이 여전히 가장 주요한 기능이다)을 넘어서 포털사이트와 SNS를 통해 자사의 온라인 트래픽을 늘리는 기능을 한다. 얼마나 포털과 SNS에 광범위하게 노출될 수 있는가가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다 보니, 뉴스는 확인과 노력이 빠진 채 흥미와 충격만 파생시키게 된다. 팩트조차 혐오와 폭력의 파생상품으로 기능한다.
파생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재벌기업들의 복잡한 지분율이 거미줄처럼 얽힌 지배구조를 들여다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재벌기업이 추구하는 것은 질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공도, 노동자를 가족같이(발음주의) 여기는 노사공생도, 국가의 부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도 아닌 것 같다. 재벌이 추구하는 것은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한 사업 확장이나 부동산 투자, 그를 통한 끊임없는 부의 재생산과 축적이다. 대학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점점 사물이 가진 원래의 기능들을 새롭게 업데이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업데이트의 이름이 신자유주의일 수도 있고 플랫폼 자본주의일 수도 있다. 파생상품은 비록 파생되어서 부차적인 것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서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원래의 기능을 삼켜버린다. 자본주의 자체가 끊임없이 파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워커스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