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한신대)
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당초 이를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출판 사업이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2017년 하반기 한국사회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그나마 맑스코뮤날레를 비롯한 학술대회와 <진보평론> 등 일부 계간지가 러시아 혁명을 재조명하면서 위로를 해주고 있다.
이 와중에 ‘아고라’라는 자그마한 출판사에서 레닌 전집 1차분 세 권을 출판해 반가움과 동시에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마르크스도 아닌 레닌 전집 발간을, 그것도 120여 권의 발간 계획은 웬만한 의지와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레닌이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에 대한 사상적 학습은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투쟁의 보고인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은 부족하면 부족했지 넘치지는 않는다. 낡은 교조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된 레닌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문제 자체임을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다양한 사회주의인데, 레닌을 복원(또는 재장전)하는 것은 혁명의 정치를 향한 여정의 시작인 것이다.
191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고라’출판사의 레닌 전집은 1893년부터 1923년까지, 30년간 쓴 글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 기간 가장 주목되는 해가 1903년과 1914년인데, 이 책 <마르크스>는 1914년 8월부터 그 해 말까지 작성된 9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인생과 마르크스주의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8편은 모두 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다.
1914년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의 참화와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 및 붕괴를 경험한 해다. 부르주아 계급은 물론 사회민주주의 진영도 민족주의, 애국주의, 사회배외주의에 경도되어 자국의 승리와 자기 가족의 안전을 위해 노동계급의 국제연대라는 대의를 배신했을 당시, 레닌은 볼셰비키와 함께 이들에 맞서 투쟁하며 굳건하게 당파성을 지켜나갔다(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사회주의를 배반한 것은 인터내셔널이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파산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붕괴의 주된 원인은 소부르주아 기회주의적 인터내셔널에서 실제 우세를 차지한 데 있다. … 기회주의자들이 애국주의와 조국 방위를 내세워 부르주아 배외주의를 설파한 것이다.”(11쪽)
레닌에 의하면,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주창하지만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을 지지하고 민족적 증오를 부채질하는 입장에 선 우익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행동을 배외주의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 지도부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연대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포기하고 조국 옹호라는 이름 아래 제국주의 전쟁에 협력했다.
레닌은 이것을 사회배외주의라 부르고 기회주의의 중요한 주장인 계급협조 사상이 강화되어 자국의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와의 동맹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라 간주했다. 사회배외주의는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에 의해 육성된 노동귀족층 및 노동 관료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노동자 계급에 적대하는 일부의 특권적 노동자와 자국 부르주아와의 동맹 사상이다.
이러한 배외주의는 전 유럽적 현상이었으며, 이에 대해 레닌은 “기회주의와 배외주의에 적대적인 노동대중의 혁명적 의식에 호소, 공화제를 위한 선전, 배외주의에 맞선 투쟁과 러시아에서의 혁명선전, 민주공화제, 지주의 토지 몰수, 8시간 노동제”(15∼16쪽) 등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20세기의 전환기로서, 전쟁을 분기점으로 자본주의의 쇠퇴와 위기가 가시화됐다. 당연히 이 위기는 러시아 같은 특정한 나라만의 위기가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 또는 적어도 유럽 전체의 위기였다. 자본주의와 얽혀 있던 모든 나라의 노동자가 이 위기로부터 고통을 겪었고, 해결책을 찾기를 원했다. 그런데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배외주의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레닌에게 충격적인 것은 독일사회민주당이 정부의 전쟁공채 발행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독일사회민주당은, 기존의 국제주의 원칙은 평화적인 시기에 어울리는 것이며 전쟁 시기에는 불가피하게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이 자기 ‘조국을 방어’하는 방침을 채택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레닌에게 그 사건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즉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의 붕괴를 뜻했다. 동시에 그것은 독일사회민주당과 카우츠키를 향했던 러시아 혁명가들의 존경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는 사실도 뜻했다(오연홍, “러시아 혁명을 마주하는 두 개의 길: 제2인터내셔널 독일사회민주당과 볼셰비키”, <진보평론>, 73호, 2017).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권위 있는’ 카우츠키처럼 가장 비열한 배외주의를 ‘과학적’으로 옹호하고 있거나, 플레하노프처럼 부르주아지에 대한 내란 선전은 유해한 ‘공상’이라고 선언하고 있다!”(147쪽)
따라서 이 ‘전쟁’은 노동자계급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도 절박하고 중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레닌에게는 사회민주주의 진영과의 투쟁을 통해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재정립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인터내셔널의 재건을 위해 “전쟁공채에 대한 찬성 투표, ‘조국 방위’, ‘전시법에 대한 복종’, 합법적 수단만으로 만족할 용의, 내란 거부 등을 정당화하는 자들 모두와 철저히 결별해야 한다”(163쪽)고 주장했다.
현재의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가까워진 시기이며, 최소한 이행기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그렇고 국제적으로도 그렇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전일적 생산양식은 로컬과 지구 차원을 막론하고 단일 층위의 착취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그 어느 누구도 이 체제를 벗어나 삶의 공간을 재전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비에트적 연대, 자발성에 기초한 내밀한 연대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경로가 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지구적 연대와 협력을 강화할 때이다.[워커스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