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객원기자)
이사를 마쳤다. 땀과 먼지와 피로와 앞일에 대한 걱정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고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짧았던 지방생활을 마치고 이사한 집은 석관동의 작은 옥탑방이다. 원래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방이었는데, 주인아저씨를 잘 구슬려 보증금 700에 월세 30만원에 계약했다. 며칠 동안 혜리와 설현이 광고하는 앱을 주구장창 들여다봤다. 전국 모든 복덕방의 공적이라는 네이버의 <피터팬 카페>도 엄청 들락거렸다. 감히 500에 30으로 서울에서 방을 구하겠다고 나섰을 때 겪어야 했던 수모와 좌절, 체념과 납득과 극복의 대 서사시.
# 500에 30으로 한남동에 가보니
졸업한 학교가 있었던 한남동엔 아직도 친구들이 남아있다. 단골가게들도 여전하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던 곳도 한남동이라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처음 찾은 곳도 이곳이다. 방구하는 어플을 실행했다. 방이란 방은 “다 있다”는 혜리의 말을 굳게 믿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 2칸을 검색했더니 결과는 ‘0’이었다. 이럴수가.
현대차 정 회장님과 삼성 이 회장님이 거주하시는 한남동은 대표적인 부촌으로 알려졌지만 남산자락에 위치한 고지대에다 워낙 오래된 동네라 싸고 허름한 집이 많다. 대학생 때는 그 틈새를 이용해 자취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한남동에 낡았지만 넓고 깨끗한 집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이슬람 사원과 보광동 도깨비 시장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 산비탈 사이의 집들엔 이주노동자와 젊은 사회 초년생들과 소규모 공장들이 가득했다.
내가 찾던 허름한 집들은 한남동-보광동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 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동네엔 빈집들이 늘어났다. 이미 노인인 집주인들은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쪽과 재개발로 경제적 도움을 받길 기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대학생, 혹은 인근의 LGBT바나 유흥주점 종사자들로 구성된 세입자들은 집세를 올려주거나 떠난다. 십수년 전의 기억을 근거로 그럴듯한 집을 구해보려 했던 내 생각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는 철부지의 철없는 망상이었을까.
# 500에 30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강서구, 금천구, 양천구 같은 서울 서남부 지역은 서울에서 대표적으로 집세가 저렴한 지역이 . 그런 줄 알았다. ‘여기라면 그럴듯한 방에 살 수 있겠지’.
500에 30, 방 2칸의 조건에 기대보다 훨씬 많은 방이 나온다. ‘27개의 방이 있습니다’. 이제 신월동민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27개의 방 중 26개가 반지하 혹은 1층 같은 반지하, 또는 채광 좋은 반지하 내지는 습기 없는 반지하였다. 반지하에 살 순 없지.
‘반지하가 뭐 어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가정경제가 급격히 내리막길을 달려 집을 줄이고 줄이다 마침내 반지하까지 진출했던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등장한 바퀴벌레 무리가 식탁 밑을 유유자적 지나 내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을 때도 ‘지구엔 원래 인류보다 바퀴벌레가 먼저 살기 시작했다’고 여기며 괜찮았다. 지나가던 초딩이 창문너머로 빤스만 입고 누워 코를 골던 나를 구경할 때나, 술 취한 아저씨가 거실 창문에 오줌을 갈길 때도 참을 수 있었다. 창문 앞에 주차한 트럭의 배기가스가 집안으로 들어올 때쯤이었나, 침대에 곰팡이가 슬어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던 때였나, 습기가 가득한 방에서 처음 가위를 눌렸을 때였던 것도 같고. 아무튼 그 언저리 언제쯤 ‘반지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번듯하게 찍어놓은 사진, 기대보다 넓은 방, 생각지도 못한 옵션, 저렴한 월세. 반지하 방에 붙은 이 좋은 조건들은 다 ‘반지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다. 반지하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 반지하 방들에도 입주자들은 나타났다. 온갖 말로 세입자를 유혹하던 매물은 하나씩 계약종료의 딱지를 붙여 나갔다.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할 여유가 없는 사람, 그 방이라도 감지덕지 살 수밖에 없을 사람, 반지하의 그 ‘악덕’들을 감내하면서도 그 동네에 살아야 하는 사람, 혹은 반지하가 얼마나 살기 힘든지 아직 모르는 사람. 여러 이유가 있겠다만 반지하에도 사람은 산다. 가난이나 주거환경, 기본권 뭐 이런 말들을 떠올려봤지만 다 의미없는 말들이다. 그냥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하면서 분노할 일도 아니고 동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이 드넓은 서울 땅에 바퀴벌레와 곰팡이와 집안을 들여다보는 낯선 이들을 견뎌내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 사람이 산다
6년 전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보증금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500이 없어서 친구네 집에 얹혀 살거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번에 가까스로 얼마간의 보증금을 모아 (사실 빚을 내서)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는 ‘보증금이 2천만원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증금의 사전적 의미는 “어떻게 해도 모자란 돈”인 것인가.
초등학교 2학년, ‘슬기로운 생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배웠다. 가끔 살아가는 게 벅차거나 두렵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대단한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가 아니다.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올 때,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운 월급 전야에 배가 고플 때, 한겨울에 가스가 끊겼을 때. 그런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대면하면 ‘세상 무엇도 내 삶을 응원해주지 않는다’는 냉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어차피 다음날 월급이 들어와 치느님을 영접하면 또 잊힐 것들이지만.)
여하튼 이번에 구한 집은 매우 마음에 든다. 채광이 좋고 습기도 없다. 너른 옥상을 마당처럼 쓸 수 있고 빨랫줄도 무려 3줄이나 있다. 여긴 한남동처럼 힙한 동네가 아니지만 인근의 대학가엔 예쁜 카페와 맛집이 꽤 있다. 여긴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가 아니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탑이다. 3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월세지만 그 저렴한 월세를 위해 200만원이나 더 빚을 내야했다. 집은 늘 그렇듯 만족스럽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다음 월세날이 오면 난 또 ‘세상은 나를 응원하지 않는 것 같아’ 같은 생각이나 주억거리고 있겠고, 또 ‘2천만원만 더 있으면’ 같은 소리를 지껄이겠지. 그렇지만 분노할 일도 아니고 동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그곳에, 한남동이나 석관동이나 신월동이나. 반지하든 옥탑이든 루프탑이든. 그냥 사람이 산다.[워커스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