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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정치 실험 칠레 선거 혁명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2017년 5월 16일Leave a comment30호, 서평By 배성인

배성인(한신대)


“아옌데는 시대를 통해 만들어졌다. 거대한 이념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던 시대였고, 혁명은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그는 칠레를 변혁했고, 이를 통해 칠레 인민과 역사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13쪽)

1970년 9월 칠레 선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제3세계에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부 수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란》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식화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스펙터클이었다.

혹자는 레닌의 러시아 혁명을 제1혁명, 선거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한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칠레식 사회주의’를 제2의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는 일대 사건이었다. 6개 좌파 정당의 연합세력인 인민연합이 수립한 칠레 사회주의 정부는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부터 생산수단의 개인소유 철폐를 포함한 체제의 구체적인 변혁과정까지 철저하게 비폭력 의회주의 노선에 충실했다. 인민연합 정부는 소련이 공식 인정한 ‘평화 노선’, 즉 평화적 장식을 통한 사회주의 체제 수립이 가능함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칠레 혁명은 그 과정에서부터 태생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6개 좌파세력의 이데올로기와 인간관계의 융합은 불가능할 정도로 이질적이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70년 선거에서의 득표율은 36.2%에 불과했다. 이는 보수 강경 세력에 의한 반격을 예고한 것이었고, 정확히 3년 후 그 결과는 확인됐다.

혁명의 성공적 조건

칠레혁명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고도로 발전된 정치체제와 정당정치에 기인한 바가 크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국제 정세는 칠레 노동 조직과 좌파 정당의 성장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와 멕시코 혁명은 칠레에서도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함을 나타냈다.

칠레에선 19세기 중반 유럽의 1848년 혁명에 영향을 받아 노동자 조직이 급진적 성향을 띠면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고, ‘평등협회’라는 현대적 의미의 사상 첫 좌파 조직이 만들어진다. 그 후 민주당(1887)과 사회주의노동자당(1912), 칠레노동자연맹(1907)이 탄생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흥 산업자본을 중심으로 한 지배세력들의 극심한 탄압과 빈곤, 보건 등의 사회 문제가 놓여 있었다.

부패한 의회를 장악한 소수 엘리트 계급이 국정을 운영했고 일부 가문이 대부분의 부를 통제했다. 반면 칠레 민중 대다수는 참혹한 빈곤 속에 수탈을 당하며 살아가야 했다. 외국 자본의 착취도 지속됐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옌데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집안 내력 때문이기도 하다. 증조부에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했거나 정치인 출신이었다. 또 유년시절 칠레와 페루의 국경지역인 타크나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받아 정치적 이상주의를 경험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발파라이소에 살면서 노동계급과 대중운동을 경험했다.

아옌데는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방법을 배웠고 사회주의를 통해 압제자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길도 제시했다.

그가 물리적 방법이 아닌 평화적 방법을 선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1891년 칠레 내전에서 외삼촌이 정부군에게 처형당하는 등 내전의 분열상과 폭력성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마치 레닌이 친형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한 것과 같다.

혁명가 아옌데는 양대 마르크스주의 정당과 통합 노동조합 운동 조직 등 3개축으로 이뤄진 대중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칠레에서는 사회·정치적 네트워크가 풍부하게 발전했고 심도 깊은 정치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아옌데는 칠레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칠레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대중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났고 카리스마와 호소력이 있는 좌파 대중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칠레 혁명의 교훈

아옌데는 의회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개량적 방식을 통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낸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칠레 혁명은 1973년 9월 11일 아옌데가 임명한 육군참모총장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가 반동적 쿠데타를 감행하면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옌데 정권의 몰락은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특히 범세계적 혁명의 참고자료가 됐다. 아옌데 정권의 붕괴 후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과 기독민주당이 역사적 타협을 이뤘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남미에서는 좌파 정부가 모두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고 점진적으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아옌데의 국유화 정책은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뒤따를 만한 사례를 만들어냈다.(18쪽)

아옌데 정부가 군부쿠데타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혁명 정부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적 기구들을 파괴하지 않고 정말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나아가 계급투쟁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지금도 아옌데의 정치사상과 혁명적 연대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좌파 정치조직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워커스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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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배성인
workers5@jinbo.net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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