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북핵위기
이달 초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예정된 호주가 아닌 한반도로 항로를 변경하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계속됐다. 결국 칼빈슨호 항로 변경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때마침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3대 공중파 중 하나인 NBC 메인뉴스 간판앵커가 오산미군기지와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철조망 앞에서 뉴스를 진행하며 북핵 위협을 막기 위해 군사공격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4월 27일이라는 날짜까지 명시하면서 북한에 대한 폭격이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대만에서는 미국의 북한 폭격으로 중국도 예기치 못한 상황 발발에 대비하기 위해 2개 집단군 병력 약 15만을 북한 접경에 배치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심지어는 일본대사가 85일 만에 돌아온 것이 유사시 남한에 거주하는 일본국민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이처럼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된 것은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부터 북한군 창건 85년이 되는 4월 25일 사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항해 방향을 틀어 한반도로 향했다는 미 국방부 입장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일본과 대만의 보도도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또 NBC의 한국 현지보도 역시 미국 내에서조차 왜 그랬는지 되묻는 형국이라는 것을 보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 한편 이러한 가짜뉴스는 이른바 지라시뿐 아니라 한국의 보수언론에 의해 검증 없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사실처럼 굳어졌고, 사드배치를 매개로 정치권에 의해 증폭됐다. 이는 촛불투쟁으로, 그리고 박근혜 탄핵과 구속 으로 입지가 좁아진 보수진영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 한 노력도 한몫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경에 이르자 ‘4월 27일 전쟁설’이나 ‘북폭설’과 같은 한반도 위기설에 대해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등이 진화에 나섰다. 국방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최근 SNS 등에 유포되는 한반도 안보 상황의 과장된 평가에 대해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며 “누차 강조했듯 (미국 측의 군사 작전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토대로 굳건한 한미 연합 방위태세 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도 “미국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와의 협의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정책이나 조치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통일부도 “우리 정부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울러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나서 “칼빈슨함의 태평양 내 이동은 군사계획에 따라 예정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항로에서 특별한 목적은 없다”는 포석을 깔아뒀다.
벼랑 끝에 서다
지금 칼빈슨호는 다시 동해 진입이 예정돼 있다. 게다가 미국 서해안 해역경비를 담당하는 같은 3함대 소속의 니미츠호가 한반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본 요코스카에 주둔하는 로널드 레이건호까지를 포함하면 한반도 주변에만 항공모함 3척이 떠있다. 항공모함 한척의 무장력이 웬만한 국가의 국방력 전체를 능가할 정도니 대단히 이례적인 군사적 긴장이 형성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항공모함 숫자로만 보면 1차 북핵 위기의 2척에 비해 그 긴장감이 당시 못지않다. 때마침 트럼프는 시리아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미사일로 응징하고, 아프카니스탄의 이슬람국가(IS) 주둔지에 재래식 무기 중 가장 위력이 크다는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북한에 무력시위를 했다. 때마침 남한을 방문했던 우다웨이 중국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에 이어 펜스 부대통령이 한국에 올 예정인 것만 봐도 지금 한반도 긴장을 가늠할 수 있다. 또 중국 해군의 북해함대와 동해함대가 각각 10척의 잠수함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했다는 홍콩발 보도에 이어 중국 관영 CCTV는 중국 국제항공이 오는 4월 17일부터 베이징-평양 노선을 잠정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위기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기도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다. 국가 대변인 격인 스가 관방장관이 나서 “어떤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갖고 일본의 평화와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브리핑했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 주둔지를 방문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한반도에 긴급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5만 7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체류 일본인의 대피 방안까지 점검하며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좁은 한반도에서, 그리고 북한의 무기체계상 아무리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을 하더라도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동북아 정치지형으로 볼 때 제2의 태평양전쟁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미군 5만 명, 한국군 40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민간인 사망자 100만 명이 넘어설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달라지지 않은 조건에서 당시와 지금의 인구를 비교한다면 2배에 가깝고, 남한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당시 10만에서 현재 많게는 30만 명까지 추산되며, 전체 외국인은 70만 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한반도 위기가 전쟁으로 전화됐을 때 입을 피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북한의 한성렬 외무성 부상이 미국 AP통신과 단독인터뷰 한 내용을 보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도발하고 있다”, “미국이 무모한 도발 징후를 보인다면, 북한은 언제든지 선제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은 양질의 핵무기를계속해서 개발할 것” “트럼프가 원한다면 북한은 언제든지 전쟁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 요지다. 몇 개인지 숫자만 다를 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어디서 나오는 보고서든 대체로 비슷하다. 이 핵무기를 미국으로 실어 나를 운반체 ICBM도 적어도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데까지는 성공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도 성공하면서 공포를 극대화하고 있다. 한성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 더 이상 허언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고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 선택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부시의 2차 북핵위기 이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내세워 ‘과도한 개입(over-reach)’을 자제하며 북핵문제를 외면해 온 오바마 행정부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트럼프가 북핵 문제는 오바마 정권이 잘못 다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내용이기도 하다.
4월 15일 북한의 태양절을 세계가 주목했지만 핵실험은 없었다. 한성렬 외무성 부상은 6차 핵실험 대해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고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때에, 적절한 장소에서 실험을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외교위원회를 부활하기로 결정하고 과거 대미·북핵 외교의 핵심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포함한 외교위원 5명을 기용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난 이후 처음 맞는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미중정상회담 결과는 어떠한 발표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문제 해결과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맞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연간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선거유세 과정에서 중국 상품에 대한 50% 관세부과와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내세운 바 있지만 이를 북핵문제 해결과 맞바꾼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고 엄청난 무역적자를 감수할 태세다. 이에 중국이 북한에 취할 조치로 원유공급망 차단, 세컨더리 보이콧, 북한노동자 고용금지 등이 거론되지만 결론은 북핵 해결에 중국이 나서라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민주주의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미국이 휴전을 선언한 이후 지난 64년간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상태에 있다. 휴전 이후 미군의 주둔과 남북 간 경제력 차이에 따라 군사력 역시 격차가 벌어지면서 북한은 비대칭적 군사전략으로 핵개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자연재해와 미국의 고립정책 등으로 극심한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겪게 되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로 핵개발에 나서게 된다. 결국 지금의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휴전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밖에 없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 목표는 결국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유세에서 밝혔듯이 ‘양복을 입든, 햄버거를 먹든’ 김정은과 한자리에 앉게 된다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성공하는 것이다.
1차 북핵 위기는 제네바협정을 맺으면서 해결됐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제네바협정은 전기는 생산하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는 경수로를 짓는 것으로 체결되는 미봉책이었을 뿐 평화협정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왔다. 그리하여 북한은 이번에는 평화협정 체결로 완전한 타결을 원할 것이다. 한편 지난 60여 년간 분단체제에 기반해 체제를 유지해 온 정권에 의해 억압당해온 남한 노동자민중의 삶과 민주주의를 세워내는 방도라는 점에서도 평화체제는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 노동자민중의 길이기도 하다.
북한은 2012년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바 있다. 그동안 핵실험과 수소탄실험, 그리고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 탄도미사일 실험을 계속 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핵보유국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작년, 36년 만에 열린 7차 노동당 당대회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선언한 바 있으며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기조아래 북한이 평화협상에서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순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일본은 물론 남한도 핵을 보유할 명분이 생길 것이고 이는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 북핵으로 인한 전쟁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협상이 시작돼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올곧게 세워내기 위해서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절실하다. 평화체제로 전환될 때 주한미군은 더 이상 이 땅에 있을 명분이 없다. 또 하나의 전제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다. 지금은 전쟁을 의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야겠지만 북한의 비핵화, 동북아 비핵화가 동시에 이뤄지도록 나서야 할 때이다. 이 땅에서의 반전·평화 그리고 비핵화의 과제는 생존의 문제이자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이므로 결코 남의 손에 맡기고 바라만 볼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워커스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