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문화연구자)
아마존은 여러모로 기묘한 회사다. 1994년 설립된 이래 매출액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덩치에 걸맞은 수익을 내 본적이 없다. 그런데도 회사의 주식 가치는 매출액만큼이나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아 왔다. 언젠가는 아마존의 기업 가치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배송의 속도와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드론을 배송에 활용하기도 하고, 물류 창고의 물류 순환속도와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하는 등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한편 아마존은 전자 상거래나 물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회사들을 인수하기도 한다. 2013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사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여 언론사의 얼굴도 가지게 됐고, 2017년에는 미국의 유기농 신선식품 판매 체인인 홀푸즈마켓(Whole Foods Market)을 인수하는 등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은 이제 남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대의 강과 밀림이 아니라 글로벌 전자 상거래 기업의 이름으로, 물류 산업의 선두주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세계인의 뇌리에 더 깊이 각인돼 있다.
아마존은 구글이나 애플 혹은 페이스북과 같은 여타 거대 글로벌 IT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기업 전략과 경영 마인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현 단계 혹은 가까운 미래 정보통신기업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들을 개발하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마존이 세계 각지에 분산해 운영하는 클라우드 웹 서비스나 인공지능 스피커 혹은 전자책 서비스 때문만은 아니다. 예컨대 ‘알파 고’와 ‘포켓몬 고’ 이후 등장하면서 속칭 쓰리고(3-Go)의 사이클을 완성하는 ‘아마존 고(Amazon Go)’와 같은 오프라인 무인 상점 모델은 거창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고도 기술적 혁신이 어떻게 일상에서 실현되는지 보여준다.
말하자면 ‘아마존 고’는 근대 이후 소비자라고 일컬어지는 군중이 쇼핑이라는 행위를 수행해온 오래된 관습을 해체해놓는다. 계산대가 없고 원하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서 상점을 나서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니 소비 혹은 쇼핑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셈이다. 구매 행위를 지극히 단순화시키면서 소비자의 편리를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아마존 고’에서의 구매와 소비의 행위는 기계적인 계량화와 규격화의 틀 속에서 마치 선반에 로봇이 상품을 쌓아 올려두는 일을 단순히 거꾸로 반복하는 행위에 불과해 보인다. 마치 쇼핑하지 않는 것처럼 상품을 대한다고 해도, 예컨대 비록 상품을 훔치려 한다고 해도, ‘아마존 고’ 내에서 상품을 집어드는 행위는 모두 A 위치에 있던 가격 B인 C라는 상품이 D라는 시간에 E라는 사람에 의해 구매되었다는 데이터로 환원된다. 그러한 데이터의 축적은 소비자의 편리함과 맞춤형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소비자를 향해 되돌아올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술이 진정 자유롭게 하는 것은
소비의 장소에서만 이런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은 생산 현장이나 일터에서도 여러 가지 기술 혁신을 실험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물류 창고의 로봇 시스템(키바)과 같은 것은 노동 현장을 점점 인간의 물리적 노동이 필요치 않은 곳으로 만든다. 월마트의 선반 스캐닝 로봇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대신해서 매장의 선반을 살펴보고 재고를 점검하며 가격을 확인하는 용도인데, 월마트측은 그것이 인간 직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잡다한 일로부터 “직원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이 머지않아 그 직장으로부터 정말 “자유롭게”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기술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이 만들어낸 구조(플랫폼) 내에서 마치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것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마존이 2016년 출원해 최근 특허를 획득한 한 기술이 있는데, 바로 ‘웨어러블 밴드’다. 특이한 점이라면 노동자의 손목에 착용돼 모든 활동을 추적하고 심지어 손의 잘못된 위치까지 알리는 진동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밀리미터 단위까지 수치화해 측정하는 도구. 게다가 올바른 방향으로 교정할 수 있는 매우 저렴하고 효율적인 도구를 아마존이 개발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포드주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을 위해 도입된 인간공학적 측량과 표준화는 이제 극도로 유연화된 후기자본주의적 생산 현장에서 기술을 통해 크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번에는 노동자를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생산하는 주체로 제시하면서도 그의 모든 동작을 정밀하게 정량화하고 은근슬쩍 잘못을 바로잡는—이것을 흔히 넛지(nudge)라고 한다—세련된 통제의 기술로 말이다.
생산과 소비의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할 로봇을 개발하는 것을 기술적 진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활동을 마치 자동 로봇이나 기계처럼 통제하거나 데이터의 덩어리로 환원하여 효율성을 높이려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혹은 누구를 위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데이터의 수집이라는 목적을 넘어서 우리를 계속해서 움직이고 생각하고 노동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라면 그것이 왜 그러한 기능을 가지게 된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주조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살아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