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혁명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자 고려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곳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물리적으로 중첩되는 곳.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한 혁명광장은 거대한 쇼핑몰들에 둘러싸여 그 용도가 변화했지만, 나의 못된 사고의 관성은 지금의 풍경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혁명광장의 쓸쓸함과 번잡함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기어이 고려인 집성촌인 우수리스크의 풍경을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 오는 오후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이 나와 이곳과의 좁힐 수 없는 거리인 것 같아 이내 씁쓸해졌지만 동시에 비릿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 대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것이 가능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허무한 답을 거쳐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이해를 다시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 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지난한 과정을 또 한 번 겪고 나서야 블라디보스토크의 매캐한 매연이 조금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