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농성 1023일의 시간엔 몇 가지 소확행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확힘. 일상적인 물건이었지만 매일 매일을 지나는 동안 소소한 힘이 됐고 없으면 안 되는 농성장 물품들.
- 고 황유미씨 인형 – 반도체소녀상
고 황유미씨를 모델삼아 종이죽으로 만든 인형이다. 반도체소녀상이라고 부른다. 풍찬노숙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많이 상했는데 모 활동가가 문구점에서 종이죽을 사다 일일이 보수해서 거의 새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얼굴과 조금 바뀌었단다. 시립대 학생이 전시용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삼성의 압력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농성장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반올림 회의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 고무신 화분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가 만들었다. 농성장에 생동감을 심어줬다.
- 커피 주전자
“농성장에 차 한 잔 하러 오세요” 소수가 교대하면서 농성을 유지하다보니 늘 사람들에게 차 한 잔 하러 오라고 했다. 농성장에서 유일하게 조리를 한 게 커피 주전자로 물 끓이기.
- DIY 전등
시내 큰 서점의 문구점에서 떨이로 3천원에 팔던 USB 연결 전등에 다산인권센터 자원 활동가가 갓을 씌웠다. 1회용 건전지를 이용한 전등은 건전지가 너무 빨리 닳아 충전해서 쓸 수 있는 등으로 구했다. 보는 사람마다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다는 후문.
- 모금함
어느 날 새벽에 도둑을 맞은 적도 있는 황당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가 접착력 있는 시트지로 둘러싸고, 반올림 부채를 붙여 만들었다. 후원해 주신 분들이 모금함 들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 농성 일자 판
농성장에서 일어나 침낭을 개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농성 일자 날짜를 고치고 인증샷을 찍어 단체 텔방에 올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농성 날짜는 휴지 위에 써져있다. 원래 날짜는 보드마커로 썼는데, 1022일에 모 활동가가 모르고 유성매직으로 쓴 것. 다음 날 농성장 철거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제서야 날짜가 1022일인 걸 확인했다. 다급하게 지우개를 찾았지만 이미 짐을 싸버려 찾을 수가 없어 결국 혜경씨 어머니(김시녀씨) 휴지를 잘라 붙이고 그 위에 숫자를 썼다. 그래서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됐다.
- 방진복 인형 피켓
농성물품 디자인 등에 수준급의 솜씨를 보이는 공유정옥 활동가가 만들었다. 무거울 수 있는 농성장 분위기에 귀여움을 더해줬다. 다리도 부러지고 허리도 부러져 테이프로 수술도 했다. 농성장 철거 하는 날 거의 다 버렸는데 너무 애착이 가서 두 개를 챙겨 왔다.[워커스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