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사진 찍는 빈민운동가)
청계천은 나의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곳이다. 아버지께서는 청계천의 출판사에 다니셨고, 어머니께서는 신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 삼일아파트 복도와 옥상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고가도로 위의 차량 행렬, 아파트 담벼락 사이로 저녁노을이 드리워지고 어둠이 내리면 골목길 한 모퉁이 포장마차에서는 어른들의 술잔이 기울여졌다. 무엇 보다 잊지 못할 사건은 청계천에서 큰 형님이 사고로 어처구니없이 돌아가신 일이었다. 이곳은 내 유년기 기억의 일면들이 아릿하게 쌓여 있는 곳이다.
청계천은 지난 몇 년 동안 일대 변환이 생겼다. 그 하나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대규모 공사였으며, 동대문 운동장 철거 후 등장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추진된 주변부 개발 사업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다. . 도시는 필연적으로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지만, 그동안 청계천은 한국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값을 하느라 공간적인 특성과 오래된 역사성은 계속해서 무시되어왔다. 가난한 삶들이 유린당했으며, 공동체가 파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덩달아 나의 유년기 기억과 추억도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너무도 적막한 곳, 경제적 가치만 따지는 서글프고 우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진이 도시를 기록한다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나의 사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 편하지 않음을 통해 이 도시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어느 때부터 나에게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저항’을 알리려는 도구가 되었다. 이를 통해 나의 삶에 여정을 끝없이 질문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본령도 이 과제에 충실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