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문화연구자, 서울대학교 강사)
“지금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될까?” 요즘 어떤 모임을 가건 이런 질문이 나온다. 흔히 가상화폐라고 알려진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올해 들어 암호화폐의 원조격인 비트코인의 거래 가격이 급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한 번 쯤은 투자를 고민해봤을 것이다. 올해 초반에 1 비트코인 당 1,000 달러(한화 약 110만 원)에 머물던 시세는 3월경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더니 11월에는 1,000만 원을 돌파하고 12월 8일에는 2,500만 원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었다. 거래 시장에서 이렇게 급등하던 암호화폐는 12월 10일에는 한때 1,500만 원 이하로 급락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아이오타 등을 포함해 현재 전 세계 암호화폐는 1,300여 종류가 있다. 시가 총액으로 따지면 350조 원이 넘는다. 국내서는 크게 3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100여 종이 거래되고 있다. 국내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일본과 미국 다음으로 세계 3위를 기록한다. 이들 암호 화폐는 아직 공식적인 지위를 갖추지 못했지만, 국내에선 하루 동안 비트코인 거래량이 코스피 거래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시카고옵션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 선물을 거래할 수도 있게 됐다. 요컨대 이들 암호화폐는 공식적인 화폐도 아니면서 전 세계의 화폐 기능을 수행하고 심지어 공식 화폐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과열된 투기로 비트코인을 둘러싼 환경도 판이해지고 있다. 초기 비트코인이 지녔던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의의는 무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흔들고 투기 심리를 조장하면서 오히려 그것의 이상적 가치를 역전시켜 놓고 있다.
애초 인터넷은 한곳에 집중되거나 조직화되지 않은 네트워크의 분산과 수평화를 목표로 개발되면서 모두의 자유로운 소통과 거래, 열린 정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비트코인 역시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 기술에 힘입어 소위 분산원장 (distributed ledger)의 방식을 통해 중앙집중적 국가나 금융기관에 의한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암호화폐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돈이나 페이팔과 같은 각종 대안 지불수단과는 다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분산형 신뢰 네트워크를 통해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 누구나 개별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 수단이다. 전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가 연결된 방대한 P2P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 기록 데이터(블록)가 사슬(체인)의 형태로 실시간 으로 확인 및 승인되고 심지어 강력하게 암호화되니 이중거래와 같은 보안 문제나 국가의 개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에 한정되지 않고 거래나 계약의 기록을 남기려는 어떠한 종류의 일에도 활용될 수 있는 근본적 플랫폼이다.
우리가 잃어야 할 것은 ‘사슬’뿐
물론 이 훌륭한 기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에 내재한 많은 불안 요소들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극소수의 사람이 자본과 컴퓨팅 파워를 등에 업고 대다수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비트코인 가격이나 수량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은 비트코인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문제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암호화폐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와 점점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는 점, 거래소가 해킹에 안전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공식 화폐로 인정되기 전까지 교환을 위한 매개가 아니라 파생상품처럼 투기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투기적 특성 때문에 비트코인은 소수의 자본, 정부, 기업, 은행을 끌어들이고 나아가 오히려 효율적인 중앙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주의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나 기관의 통제 없이 자유롭고 분산적이며 민주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인데도 말이다. 암호화폐가 머지않은 미래에 대안화폐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들 거품 전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암호화폐 투기가 만들어 내는 거품 때문에 실상 현실에서는 이에 대한 규제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될 지경이다. 따라서 지금의 암호화폐 투기 광풍은 미래 기술에 대한 순진한 기대감에 따른 것이 아니며, 그 기술이 애초에 가진 대안적 의미와 필요성조차 철폐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블록체인이 자유가 아니라 우리를 어딘가에 묶어두는 쇠사슬이 된다면 그것은 최악의 권위주의적 기술이 될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이 시대에 걸맞게 되뇌자면, 아마 우리가 잃어야 할 것은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사슬뿐일 것이다. 얻어야 할 것은 블록체인의 수평적 열린 체계일텐데, 단결해야 할 만국의 비정규직 프롤레타리아트는 비트코인 채굴 컴퓨터의 수익만큼이나 급여를 받고는 있을까? 아직도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하는지 궁금한가?[워커스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