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남궁인을 듣다
인터뷰 · 김상우 / 정리 · 신나리 기자 / 사진 정운 기자
그림 양유연 / 세상의 밝은 모습보다는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평생 그림쟁이로 살아가는 꿈을 꾸며 매일을 지낸다.
김상우 / 시인, 이리카페 사장, 밴드 ‘마음’ 드러머, 은총이의 삼촌.
남궁인 / 기록하는 의사. 충남 홍성의 소방 본부에서 공중 보건의로 복무하며 꾸준히 쓰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가 5000명을 넘는 ‘페북 스타’이자 지난 1월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6월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상우의 들어가며 —
삶에 중독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가야 할 때가 되면
응급실 옆 장례식장 냉동실에 삼 일 동안 보관되었다가
세상에다 나머지 작별을 하고 떠날 것이다
삼 일 동안 누워 있으면서 나는 어떤 몸짓으로 작별을 하나
그때 너무 슬프다 너무 슬프다는 말을 했다
모두가 그렇게 집에 갈 것이다
죽음의 곁에서 삶을 쓴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렸을 때부터 긴박한 사고의 순간까지.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이 오가는 응급실에서 사람과 삶을 바라본다. 과학자의 머리와 인문학자의 마음으로 하루에 두세 개씩 떠오르는 글감을 가만히 앉아 엮는다. 김상우 시인이 글 쓰는 의사, 남궁인을 만났다.
김상우(김) 어려 보인다.
남궁인(남궁) 1983년생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김 직업이 응급의학과 공중 보건의다. 좀 생소하다.
남궁 응급의학과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데, 우리나라에 1000명가량 있다. 응급 상황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20년 남짓 됐다. 그 전에는 각 과의 의사들이 응급실을 봤다. 응급실은 아주 다양한 이유로 찾아온다. 응급 상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다루는 것이 응급의학과다. 지금은 군 복무 대신 공중 보건을 다루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 의대에서 과를 지원할 때 응급의학과를 어떻게 선택했나.
남궁 처음부터 선택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과가 좋았다. 병원 이야기가 참혹한 경우가 많다.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생사가 달렸다든지 사망 선고를 하는 곳과 밀접한 곳에 가고 싶었다. 잘 맞는 것 같았다.
김 학창 시절 글을 썼다.
남궁 학생 때 우울증을 조금 앓았다. 예전 노트를 들춰 보니 어떻게 죽어야 할까 하는 글도 있더라. 시를 많이 썼고 나의 죽음에 대해 많이 썼다. 마음이 아팠다. 질곡도 깊었다. 죽음은 내게 항상 화두였다. 병원에서 죽음을 직면해 보니 더 쓰고 싶었다.
김 올해 1월에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아 등단했다.
남궁 등단식을 며칠 전에 다녀왔다.
김 등단한 작품 제목이 ‘죽음에 관하여’다.
남궁 그야말로 죽음에 관한 것이다.
김 어떤 줄거리인가.
남궁 실제로 겪은 것을 썼다. 말기 암 환자가 있었다. 너무 말기라 거의 한 달 남짓 살까 말까 한 환자인데 죽음밖에 남은 게 없으니까 의사는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다고 통보한다. 환자는 남은 한 달을 알아서 살겠다고 하고 간다. 그런데 다음 날 너무 아프니까 환자가 자동차를 몰고 다시 병원으로 가는데, 사고를 낸 거다. 그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내게 온다. 난 살리려 했지만 못 살렸다.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는 순간 사고를 냈다는 가해자가 도착했다. 그 사람을 봤더니 어제 내가 보낸 말기 암 환자다. 이런 것을 겪으며 죽음에 관해서, 죽음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를 낸 말기 암 환자의 일상을 비난해야 하는가. 죽음과 삶의 아이러니는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다. 이런 내용이다.
김 죽음은 무엇인가.
남궁 죽음을 많이 보는 직업으로서 봤을 때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거 같다. 이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사후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죽음은 너무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이다. 신체의 일정 이상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일정 이상의 장기가 파손되면 죽는다. 과학적이지만 또 과학적이지도 않다. 죽음이 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생물학적 끝인데 실제 인간 생활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걸 얘기하고 싶었다.
김 죽음은 공평한가.
남궁 의사와 인문학자,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의사로서의 죽음은 공평하다. 과학에서 접근하는 죽음은 공식이 있다. 주요 기관, 순환, 죽어가는 기저 몇 개를 충족하면 사람이 죽는다. 전해질 불균형, 머리나 심장이 다쳤을 경우 등이 그렇다. 그 외 다른 간이나 주요 장기가 아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다쳤을 경우도 있고, 경우의 수를 찾으면 많은데 하나라도 도달하면 죽는다. 반면 인문학적으로 보면 절대 공평하지 않다. 며칠 전 쓴 글이 있다. 열 살 여자아이랑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 남매의 이야기다. 둘이 놀다가 방충망에 숨었는데 떨어졌다. 둘이 동시에 같은 통로로 추락했는데, 여자아이는 화단으로 떨어지고 남자아이는 화단 옆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남자아이는 뇌가 터져서 즉사했다. 여자아이는 두 다리가 부러지고 살았다. 이야기를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동시에 죽음이 과연 공평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 죽음을 무의식이라고 하면 무의식도 과학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을 친다든지, 사람은 그러면서 위로받기도 한다. 그런 것을 믿나? 찬송가를 부르는 건 위로가 될까.
남궁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다.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으니까.
김 의사들은 종교를 많이 갖나.
남궁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종교를 많이 갖지는 않는 것 같다. 무덤덤해진다. 혈압 떨어지고 장기가 안 좋아지면 며칠 안에 죽는다.
김 의사라는 직업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
남궁 사람은 자기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게 궁금한데, 그걸 알려 주는 직업이 의사다. 당신의 몸 상태가 어떻다는 걸 알려 주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고 어떻게 느낄까 심상도 곱씹어 볼 수 있다. 의사에게 인문학적 소양은 꼭 필요하다.
김 사회에서 알파고가 쟁점이 됐다. 의학 쪽에서는 어떠한가.
남궁 의학 쪽에서 많은 사람이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 되어 가고 있는 건데, 몇 년간 학계 논문 찾아보며 느낀 것은 획기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손에서 정말 미약하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합쳐져서 조금의 한 걸음으로 발전하는 것. 알파고가 나왔다고 우리 생활이 한꺼번에 나아지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조금씩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많은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김 블로그 활동이 활발하다.
남궁 페이스북을 많이 한다. 쑥스럽지만 유명 블로거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을 발표하는 채널이 〈허핑턴포스트〉, 〈한국일보〉 등 몇 개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하는 채널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오늘 한 생각을 글로 써내면 내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거다. 상당히 흥미로운 위치라고 생각한다.
김 보건의 근무는 어떻게 하고 있나.
남궁 6일 홍성에 있고 8일 서울에 있다. 홍성에 있을 때도 거의 혼자 지내고 있다.
김 최근 관심사는 뭔가.
남궁 요즘 독거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주는 생각들이 좋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자기를 깊이 있게 만들고 돌아보는 독거의 힘을 좋아한다. 대부분 별 약속 모임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 혼자서 책 보고 혼자서 피아노 치고 음악하고, 생각하는 일 있으면 원고 쓰고.
김 조금 있으면 책이 나온다.
남궁 문학동네와 작업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 중에서 무겁고 죽음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완결성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50개 뽑았다. 50개를 한 개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게 썼다. 발표하지 않았거나 발표했지만 대폭 고쳐서 다른 글이 된 것들이다. 원고는 확정됐고, 지금은 교정 작업 중이다. 늦어도 6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김 전업 작가로 나갈 생각도 하나.
남궁 글을 여기저기 기고해 보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데 경제적으로 봤을 때는 가난한 직업이긴 하더라. 또 감수성이나 새로운 이야기를 얻는 공간도 병원이라서 전업 작가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의사 일 하는 행위도 되게 좋아한다.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돌봐 주는 느낌이 좋다. 작가도 비슷한 기저이지만 의사를 놓치지는 않을 것 같다.
(워커스9호 201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