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 만약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하면, 역대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 된다. 박 시장은 자신만만하다. 지난 1월 25일, 기자들을 모아놓고 “서울시장도 (대통령만큼) 운명적인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누구보다 먼저 이미지 메이킹에 나섰다. 17일에는 MBC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했다. 진행자가 “당내 경선을 앞두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면 시선이 안 좋을 수 있다”고 우려하자 “신문 안 봤나. 언론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게임 끝났다”며 파워당당함을 과시했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대형 정책들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2022년까지 4년간 총 6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2월 20일에는 2022년까지 신혼부부용 주택 약 8만 5000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은 박 시장의 3선 연임 임기가 끝나는 해다.
그는 현재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이자, ‘대권 잠룡’으로 꼽힌다. 박 시장에게 3선 연임 성공은 대권으로 가는 하이패스다. 이변이든 정치적 스캔들이든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때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한 시기, 뇌관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 있다. 7년의 재임 동안 발생한 서울시 공무원 자살 사건들이다. 친노동 정책으로 노동계에서도 환영을 받았던 박원순 시장. 하지만 정작 그를 ‘사용자’로 둔 서울시 공무원들의 평가는 다르다. 장시간 노동과 성과평가, 여전한 관료사회의 악습들이 서울시 공무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을 외치며 등장했지만, 정작 내부 개혁은 실패한 수장. 지난 7년간 서울시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연간 650시간의 초과노동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내부에서 ‘일 많이 시키는’ 시장으로 유명하다. 이는 서울시도 인정하는 바다. 지난해 12월 1일 서울시의회 운영위에서 김주명 서울시 비서실장은 “2012년과 비교해 볼 때 예산이 31% 증가했는데 신규 사업은 95% 증가했다”며 “신규 사업이 굉장히 많이 증가하다보니 본청 공무원의 업무량이 훨씬 많다”고 밝혔다. 당시 김 비서실장은 그해 9월 자살한 28세 김 모 주무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김00 주무관 같은 경우에 굉장히 격무에 시달렸다고 하는 게 초과근무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도 미처 챙겨보지 못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과거 이명박, 오세훈 시장에 비해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 업무가 급증한 것은 시정 철학의 차이 때문이다. 과거 시장들이 청계천 복원, 세빛둥둥섬 조성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했다면, 박 시장은 ‘행정이 시민 삶에 들어가야 한다’는 모토 아래 각종 민원 및 현장 행정을 확대했다.
업무량의 급증은 장시간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2015년 두 명의 서울시 공무원이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고, 지난해까지 서울시 자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 논란이 일자, 서울시도 나름의 대책을 내놨다. 2013년 4월부터 매주 수요일을 ‘가족의 날’로 지정해, 오후 7시부터 서울청사의 모든 전등을 소등했다. 2015년 말 두 명의 자살 사고 이후에는, ‘조직문화 혁신 추진계획’을 내놨다. ‘가족의 날’을 금요일까지 확대해 정시퇴근 정책을 추진하고,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은 이미 과도하게 늘어난 초과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시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본청 32개 부서에 소속된 직원 1인의 연간 평균 초과근무시간은 422시간이 넘는다. 직원 1인당 적게는 평균 201시간(평생교육국)에서 많게는 평균 555.9시간(민생사법경찰단)을 초과 근무했다. 45개 사업소 직원 1인의 연간 평균 초과근무시간은 무려 496시간이 넘는다. 강북아리수정수센터의 경우 지난해 직원 1인의 연간 초과근무시간은 650.6시간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2014년 서울시 본청 및 사업소 직원의 1인 연간 초과근무시간은 524시간이었고, 15년에는 456시간, 16년에는 475시간, 17년에는 465시간을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전체 상용노동자의 평균 초과근로시간은 155시간이다. 15년에는 154시간, 16년에는 152시간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상용노동자들에 비해 약 3배의 초과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갑질 상사 근절하는 ‘관리자 다면평가’ 한다더니
지난 2014년 상수도연구원 성희롱 자살 사건과 이듬해 12월 24일 발생한 6급 공무원 자살, 그리고 지난해 9월 18일 28세 7급 공무원 자살 사건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들이 관리자로부터 성희롱과 모욕적 발언, 과도한 업무 독촉 등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뒤인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다시 한 번 ‘조직문화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5급 이상 관리자 다면평가 활용 확대’ 방안도 포함돼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전체 관리자에 대한 직원 다면평가를 전면 실시해, 그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5급 이상 관리자 다면평가가 존재했지만 승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제도 도입 초기, 행전안전부가 다면평가를 인사승진 시 ‘고려’사항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대책은 다면평가를 관리자들의 승진 심사에 일정부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엉뚱한 곳에 불을 지폈다. 6급 공무원들까지도 덩달아 다면평가를 받게 된 까닭이다. 김민호 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 정책단장은 “관리자 갑질에 대한 통제수단을 상실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번 대책에서 5급 이상 다면평가를 승진 심사에 적용해, 하위 10%는 승진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이 나온 것”이라며 “대신 6급까지도 다 똑같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사실상 6급 이하 공무원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거다. 평가 역시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복수노조인 서울특별시공무원노동조합도 11월 30일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시가 조직문화혁신 실행과제 1호로 내세운 ‘5급 이상 관리자 직원 다면평가활용 확대’가 엉뚱하게도 ‘6급 다면평가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이는 관리자들의 갑질방지를 통해 상하 간 상호존중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초심을 버리고 6급에 초점을 맞춰버린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등본 많이 떼면 성과급 많이 받나요?
성과평가에 따른 성과급 지급도 노동자들을 경쟁과 스트레스로 내몰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과감하게 도입했던 ‘성과퇴출제’는 현재 사라진 상태다. 당시 성과퇴출제 도입으로 공무원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 하에서도 여전히 성과주의는 존재한다. S부터 A, B, C등급까지 네 단계로 나눠 성과급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C등급에 해당하는 인원은 성과급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C등급을 사실상 사문화하고, S~A 등급에 차등 지급하고 있다. 김민호 정책단장은 “등급별 성과급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갈등구조를 만드는 것인데, 정부나 시청이나 같은 시스템 하에서 제도를 관리하는 역할에만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서울시와 성과급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대화를 했지만, 박원순 시장은 ‘행자부 지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책임 회피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중간 등급인 A등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성과급 지급기준이 개정됐다. 기존 5%였던 S등급을 늘리고, 20%였던 A등급을 15%로 줄이는 식이다.
공무원 업무에 성과급제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김경용 서울시청지부 지부장은 “등본을 떼거나 민원 처리 업무에서 어떻게 성과를 평가할 수 있나. 사실상 성과가 월등하게 드러나지 않는 일상 업무들이 대부분”이라며 “결국 ‘을’끼리의 반목과 갈등을 조장해 상층부만 바라보게 하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성과급제 문제의 책임을 박원순 시장에게 묻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김 지부장은 “행자부 지침이기 때문에 박원순 시장도 거부할 수 없다”며 “노조 입장에서는 성과급제에 반대하고 있지만, 등급의 편차와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차악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야심찼던 ‘휴식권’ 도입, 2년간 달랑 15건 발급
서울시가 내놓은 조직혁신 대책은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5월, 반년 새 3명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서울시는 ‘직원 휴식권’을 들고 나왔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나 병가를 활용해 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직원이 서울시 부속 의원 및 한의원에서 ‘휴가처방전’을 받으면, 이 사실이 해당 부서장에 통보돼 의무적으로 병가를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1월 6일 열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는 지난 2년간 5명의 직원이 총 6회의 휴식권 제도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인철 서울시 행정국장은 “아무래도 개인 신분이 노출되는 부담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동료직원에게 업무 부담이 있다”며 “이 제도 가지고는 직원들의 피로감을 해소시키기는 턱없이 모자라고, 제도 설계 자체도 좀 잘못된 것 같다”고 시인했다. 서울시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지난 2월 5일 기준 ‘직원 휴식권’은 총 15건 발급된 상태다.
2012년 서울시가 야심차게 도입한 ‘희망전보’도 빛 좋은 개살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당시 서울시는 그동안 실국장이 직원을 선택했던 드래프트제를 전면 폐지하고, 개인에게 부서 희망 순위 우선권을 부여하는 ‘희망전보제’를 실시했다. 전보 기준은 5급 이하 직렬 대표 직원들로 구성된 ‘전보기준선정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했다. 고충을 겪는 6급 이하 직원들이 전보일로부터 1년 이내에 타부서로 전출을 희망하면 이를 인용해 희망기관으로 전보하는 제도도 만들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상사로부터의 성희롱이나 인격모독을 알려도 전보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서울시에서도 희망전보 제도의 실패를 인정하는 바다. 8번째 자살 사건이 일어난 뒤인 지난해 12월 1일.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에서 김주명 서울시 비서실장은 “전보를 원하는 분들은 고된 격무부서다. 선호하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서에서는 전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한 부서에 오래있으면 전보를 시키는 방안으로 희망전보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폐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직군별 차별과 직군 전환에서의 교육 미비의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2009년 정부는 ‘사무기능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진행했다. 당시 일반직 공무원들이 집단 반발을 하는 등 직군을 둘러싼 내부의 뿌리 깊은 차별이 드러났다. 현재 미 전환된 ‘사무기능직’은 ‘관리운영직’이라는 용어의 직군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일반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특별시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급 이하 기술직, 소수직렬에 대한 승진 차별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하반기 7급 이하 전체 승진인원은 승진대상인원 대비 42.1%이지만, 행정직군은 이보다 높은 45.5%였다. 반면 기술직군은 41.8%, 관리운영직군은 24.4%에 불과했다. 지난 2016년 2월에는 서울시의회에서 김경자 의원이 “일반직 전환자에 대한 직무 관련 예산이 편성돼 있는데 60~80%가 계속 불용되고 있다”며 “직무 적응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직무연수를 못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동존중특별시’를 내건 박 시장의 노동철학
1월 17일 예능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서 한 진행자가 박원순 시장에게 물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지지하는 박원순 시장이 부하직원한테는 시도 때도 없이 새벽 2시에도 전화를 한다면서요?” 이에 박원순 시장은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때가 있다. 잊을 수도 있으니 (전화를 하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많이 그랬는데 지금은 반성 많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원순 시장의 큰 시정방향 중 하나는 바로 ‘노동존중특별시’다. 서울시 산하 기관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데 많은 힘을 썼고, 노동계와 손을 잡고 노동권익센터와 노동복지센터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과도한 업무 부담과 장시간 노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2016년 3월, 서울시는 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노동자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문화 혁신 추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직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족한 실무 인력을 확충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탄력적인 임용 제도를 활용해 인력을 보강하는 방식이었다. 정원 외로 활용 가능한 시간선택에 임기제 공무원을 충원하고, 퇴직공무원을 비정규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조직문화 혁신에 대한 서울시 공무원들의 기대감은 낮다. 지난해 11월, 공무원노조 서울특별시청지부가 서울시 공무원 1,265명을 상대로 서울시의 조직문화 혁신 대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7.5%가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대한다는 응답자는 20.8%에 불과했다. 김민호 정책단장은 “조국 민정수석은 2011년도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며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서울시 공무원들을 24시간 괴롭혀 서울시민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며 “박원순 시장 6년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도 공무원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직원 만족도는 최악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시와 정부의 성과주의, 경쟁 중심의 노동철학”이라고 지적했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