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는 다종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에게 ‘사회주의’는 곧 ‘북한’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회주의 정권’은 곧 ‘문재인 정권’이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빨갱이와 가난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상되기도 하며, 이미 한물 간 공상가들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진보진영에서조차 ‘사회주의’를 맹목적인 급진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다. 과연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념은 어떤 위치에 와 있으며,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은 또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이 진보진영 인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현재 진보진영이 바라보고 있는 이념 지향을 살펴봤다.
사회주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변혁당은 <참세상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27일까지 ‘한국사회 발전방향과 이념지향’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총 1,013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 약 70%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보 성향의 학생, 사회단체 회원들이다. 또한 응답자 중 80%는 노동자, 15%는 학생, 나머지는 농림수산 및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지지정당 분포를 살펴보면, 정의당이 33%(330명)로 제일 많았다. 뒤를 이어 민주당이 14%(140명)를 차지했고, 변혁당과 녹색당은 각각 8%(83명, 82명), 노동당과 민중당은 각각 6%(58명, 52명),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0.7%(15명)의 분포를 보였다.
진보성향의 응답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⓵낙후된 경제, 비민주적 정치,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 ⓶평등한 사회이나 풍요로운 경제발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⓷과도한 소비와 이기적 경쟁을 절제한다면 전체가 잘 살 수 있는 사회 ⓸구성원 전체가 평등하고 풍요로운 바람직한 사회 등 4개의 답변을 놓고 설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항목인 ⓵, ⓶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44%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⓵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약 10%, ⓶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약 34%였다. 반면 조건부 긍정의 답변인 ⓷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25%, 긍정적 답변인 ⓸번을 선택한 응답자가 각각 31%였다.
▲ [디자인] 김동훈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응답자의 지지정당별로 다른 특색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 중 부정적인 답변인 ⓵,⓶번 항목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62.3%에 달했다. 자유민주당 등 보수주의자의 73.3%도 부정적인 항목을 선택했다.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의당 지지자 중 51.3%도 사회주의에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반면 소수정당인 녹색당 지지자 31.7%, 민중당 지지자 32.2%, 노동당 지지자 25.0%, 변혁당 지지자 14.4%가 각각 ⓵,⓶번 항목을 선택했다.
지지정당별로 살펴보면, 녹색당 지지자 중 가장 많은 35.4%가 조건부 긍정인 ⓷번을 선택했다. 정의당 지지자 27.9%, 민주당 지지자 22.5%, 민중당 지지자 25.0%, 노동당 지지자 23.3%, 변혁당 지지자 24.1%도 ⓷번 항목을 선택했다. 특이할만한 것은 자유한국당 지지자 20.0%도 조건부 긍정 항목을 택했다는 점이다. 한편 정의당 지지자 21.9%와, 민주당 지지자 15.2%는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 답변인 ⓸번을 택했다. 변혁당 지지자 61.4%, 노동당 지지자 51.8%, 민중당 지지자 42.9%, 녹색당 지지자 중 32.9% 역시 사회주의를 ‘구성원 전체가 평등하고 풍요로운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 계획 경제에 대한 찬성률은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질문에 따른 선택 항목은 ⓵시장경제 ⓶시장경제 중심 계획경제 보조 ⓷계획경제 중심 시장경제 보조 ⓸계획경제 등 총 4가지다. 그 중 응답자의 가장 많은 비율인 45.2%(452명)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계획경제를 보조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⓶번 항목을 택했다. 계획경제를 중심으로 시장경제를 보조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38.7%(387명)로 뒤를 이었다. 완전한 계획경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14.4%(144명)%였으며, 완전한 시장경제에 찬성하는 비율은 1.7%(17명)였다.
지지정당별로 살펴보면, 자유한국당(73.3%), 민주당(69.8%), 정의당(54.7%) 지지자들 과반수 이상이 ⓶번 항목을 택했다. 계획경제 중심의 보조적 시장경제인 ⓷번 항목을 가장 많이 선호한 이들은 녹색당 지지자들이다. 녹색당 지지자 64.6%, 민중당 지지자 53.6%, 변혁당 지지자 51.2%, 노동당 지지자 50.0%, 정의당 지지자 36.1%, 민주당 지지자 21.6%가 ⓷번 항목을 선택했다. 완전한 계획경제를 가장 많이 선호한 집단은 변혁당(34.1%)이며, 노동당(27.6%), 기타(23.2%), 민중당(8.9%), 정의당(7.6%), 녹색당(7.3%)이 뒤를 이었다.
김태연 변혁당 대표는 해당 설문을 기반으로 한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전망과 과제’ 발제문에서 “계획경제에 대해 진보성향 응답자들의 사회주의적 답변 비율은 다른 항목에 비해 높지 않다”며 “소련과 동구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계획경제는 실패한 사회주의체제의 대표적 경제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배급제’, ‘국가통제’ 등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이 제출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대중화를 어렵게 할 것이다. ‘민주적’ 계획경제의 구체적 내용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지소유제와 재벌지배구조
계획경제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만큼, 토지사유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응답도 높았다. 설문조사에서는 토지소유제와 관련 ⓵토지사유 철저히 보호 ⓶토지사유보호, 부분적 소유권 행사 제한 ⓷토지사유금지, 부분적 사유 인정 ⓸토지사유 완전금지 등 4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응답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인 57.1%(572명)가 토지사유를 보호하되, 부분적으로 소유권 행사를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토지사유를 부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21.3%(213명), 토지사유를 완전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7.9%(179명)으로 집계됐다.
정당지지별 특징을 살펴보면, 정의당 지지자 66.4%, 민주당 지지자 69.3%, 민중당 지지자 54.5%, 녹색당 지지자 47.6%, 변혁당 지지자 39.0%, 노동당 지지자 36.2%가 ⓶번 문항을 선택했다. 위의 5개 정당 중 노동당과 변혁당을 제외하고는 ⓶번 문항을 선택한 비율이 모두 높았다. ⓷번 항목을 선택한 비율은 노동당 지지자가 36.2%로 가장 많았고, 민중당이 25.5%, 녹색당이 24.4%, 정의당이 22.0%, 민주당이 17.9%, 변혁당이 19.5%로 그 뒤를 이었다. 토지사유를 완전 금지해야 한다고 밝힌 이들은 변혁당 지지자들이 가장 많았고(40.2%), 이어서 녹색당(26.8%), 노동당(25.9%), 민중당(16.4%), 정의당(8.9%) 순으로 나타났다.
재벌지배구조 해결 방안에 대한 설문에서는 ‘불법적인 총수 일족의 경영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응답이 40.2%(404명)로 가장 많았다. ‘총수일족 경영권을 완전 박탈해야 한다’는 응답이 30.8%(309명)로 뒤를 이었고, ‘소액주주 권리확대로 민주적 견제’가 26.2%(263명), ‘총수일족 경영권 보장’이 2.8%(28명)로 집계됐다. 불법적인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보수정당부터 진보정당 지지자까지 폭넓게 나타났다. 기업 경영 책임자를 결정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는 응답자의 44.3%(444명)가 ‘노동자 대표가 참가하는 이사회에서 선출’하는 방법을 꼽았고, 43.7%(438명)는 ‘해당 기업 노동자들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부실 민간 대기업의 국유화와 관련해서는 55.9%(562명)의 압도적인 응답자들이 ‘회생 후에도 국가 소유로 운영해야 한다’고 답했다. 뒤를 이어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16.0%(161명), 국유화가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응답은 15.9%(160명), 국유화로 회생 후 민간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12.2%(123명)을 차지했다.
당신이 원하는 사회는?
응답자 중 44.4%(444명)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성장 동력의 한계,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30.2%(302명)는 ‘양적 성장을 했으나, 빈부격차, 고용불안, 환경파괴 등 해결과제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었으며, 24.6%(246명)는 문제 해결 전망이 부재하다고 내다봤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공공성 과제로는 의료공공성을 34.7%로 가장 많이 꼽았고, 교육(29.9%), 토지주택(18.2%), 에너지(11.1%), 교통(3.7%), 통신(2.4)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진보진영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와 관련해 ⓵자본주의 사회 ⓶자본주의 중심, 사회적 방식의 보조적 운용 ⓷사회주의 중심, 자본주의 방식 보조적 운영 ⓸사회주의 사회 등 4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⓶번 항목을 택한 응답자가 43.2%(430명)로 가장 많았다. ⓷번 항목은 33.3%(332명), ⓸번 항목은 20.2%(201명)로 각각 집계됐다.
지지정당별로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자 중 압도적 다수인 70.3%가 ⓶번이 바람직한 사회라고 답했다. 정의당 지지자 51.4%, 민중당 지지자 30.9%, 노동당 지지자 21.1%, 녹색당 지지자 20.7%, 변혁당 지지자 8.4%도 ⓶번을 꼽았다. 녹색당 지지자의 과반 이상인 52.4%는 ⓷번을 지지했다. 노동당(40.4%), 민중당(43.6%), 정의당(39.1%) 지지자들 다수도 ⓷번이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반면 사회주의 사회를 꼽은 비율은 변혁당이 54.2%로 가장 많았고, 노동당(36.8%), 녹색당(26.8%), 민중당(25.5%)이 뒤를 이었다. 정의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응답은 각각 7.1%와 4.3%에 그쳤다.[워커스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