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 자본에게 한국의 대형 빌딩은 꽤 짭짤한 투기 상품이다. 국내 오피스 빌딩 거래 규모는 2014년 5조 원, 2016년 8조 원에서 2018년엔 12조 원을 기록했다. 오피스를 포함한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지난해 거래 금액이 19조 원을 넘었다. 지난해 서울의 거래규모는 런던과 뉴욕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서울이 빌딩 투기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풍부한 유동성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움직임에 힘입어, 오피스 투자 시장은 당분간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JLL, 2019년 2분기 오피스 투자 시장 보고서)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20년의 대형 프로젝트 준공을 앞두고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자본 효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매각과 사옥 수요자의 매입이 증가하고 있다.” (SAVILLS, 2019년 2분기 서울 프라임 오피스 브리핑)
“2019년 임대 시장의 회복세와 더불어 투자 시장 거래 규모가 증가했다. 잠재적 공실 리스크를 보유한 오피스 자산을 매입해 리노베이션, 용도 전환, 재개발하는 자산 가치 향상 및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략은 앞으로도 활발히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CBRE, 2019년 부동산 연구 보고서)
투자 업계는 빌딩 부동산의 불패 신화가 계속되리라 전망했다. 2019년 상반기 오피스 빌딩 거래 규모는 6조 6천억 원, 2018년 상반기 거래금액 6조 1천억 원보다 많다. 또다시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공실률이 하락하며 임대 수익에 대한 기대가 커졌고, 따라서 빌딩 거래, 투자 규모까지 모두 증가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공실률은 빌딩 몸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임차인을 모집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화에스테이트가 서울지역 연면적 3,300㎡ 이상 빌딩을 조사한 결과, 2017년 10%에 육박하던 공실률은 2019년 1분기 7.4%까지 떨어졌다.
빌딩의 규모가 클수록 거래가 활발해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거래금액별 오피스 빌딩 거래는 2천억 원 이상이 8건, 1천~2천억 원이 5건, 5백~1천억 원이 5건, 5백억 원 미만이 단 2건이었다. 2천억 원 이상 거래는 2013년 3건, 2015년 4건, 2017년 7건으로 지속해서 늘었지만, 그 이하 가격의 빌딩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았다.
연면적 9,900㎡ 이상 대형 오피스 빌딩의 75%는 종로구 일대 도심권역(CBD, 28%), 강남권역(GBD, 31%), 여의도권역(YBD, 16%)에 몰려있다. 연면적 66,100㎡ 이상 프라임급 빌딩은 도심권역에 29개, 강남권역에 18개, 여의도권역에 11개가 있다. 프라임급 빌딩이 주도하는 오피스 거래 시장의 평균 매매가는 1㎡당 2009년 350만 원, 2012년 417만 원, 2015년 471만 원, 2018년 523만 원으로 급등했다.
해외 자본도 서울의 빌딩 수익률을 일찌감치 눈치챘다. 이미 많은 해외 자본이 서울에서 빌딩을 소유하거나, 이미 되팔아 큰 시세 차익을 남겼다. 2017년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와 홍콩 림어드바이저스가 더케이트윈타워를 매각해 수익 약 2천억 원을 챙겼고, 2015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 등은 스테이트타워남산을 팔아 1천 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다. 부동산 자문 업체 에비슨영코리아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이 매수한 서울 오피스 총액은 2012년 2조 원, 2014년 3.5조 원, 2018년 4.4조 원까지 증가했다. 매도 금액 역시 2012년 1조 원, 2016년 2.4조 원, 2018년 2.8조 원까지 뛰었다. 또 다른 부동산 자문 업체 콜리어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 투자자의 투자 분포는 오피스 빌딩이 71%, 리테일이 12%, 개발 8%, 물류 6%, 호텔이 4%였다. 해외 부동산 투기 자본이 빌딩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대형 빌딩 거래가 부동산 시장에 불을 붙이자 부동산 펀드도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펀드 대비 부동산 펀드 비중은 2014년 7.8%, 2016년 9.7%, 2018년 13.7%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리츠 또한 총자산이 2017년 8월 29.2조 원, 2018년 6월 38.6조 원, 2019년 8월 46.5조 원으로 늘었다. 부동산 펀드는 투자자들이 하나의 조합을 이뤄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고, 리츠는 부동산투자회사의 지분을 매입해 건물 운용에 따른 수익을 투자자들과 공유하는 집합투자기구다. 모두 부동산 간접 투자 상품이다.
정부도 부동산 펀드 시장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공모 리츠·펀드 활성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6조 원이던 공모 리츠·펀드 규모를 2021년까지 60조 원 규모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사모 96%, 공모 4%인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공모를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사모는 소수의 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고, 진입장벽이 높아 고액 투자자만의 상품으로 여겨져 왔다. 반면 공모는 불특정다수를 모집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외부감사 등 규제를 받는다. 정부는 이런 공모 리츠·펀드에서 발생하는 배당 수익을 9%(투자금액 5000만 원 한도)의 세율로 분리과세하기로 했다. 일반 이자·배당 등 금융 수익에 대한 세율은 14%다. 이밖에도 정부는 리츠 취득세 감면을 검토하고, 투자 대상 물량 확대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8·2대책, 9·13대책 등으로 주거용 부동산 투기는 잡되, 상업용 부동산 투기는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다.
사실 이 같은 부동산 간접 투자의 위험성은 상당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도심권역 그랑서울 빌딩을 소유한 코크렙리츠의 투자 위험도는 ‘매우 위험’ 단계인 1등급이다. 최근 청약 경쟁률이 63.28 대 1로 화제를 모았던 롯데리츠 또한 1등급이다. 신한알파리츠 역시 1등급이다. 그런데도 리츠와 펀드들은 ‘커피값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며 막대한 자금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 같은 투자 쏠림 현상으로 실물 자산은 실제 가치보다 높게 책정되고, 실물 자산이 무너질 경우 이와 연관된 파생 상품 또한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리츠와 펀드는 부동산 임대료를 최대한 늘리는 착취의 방식으로 운용된다.
한 채에 1조 원, 한 해에 수백억 원씩 오르는 서울의 빌딩 숲은 자본의 운동장과 같다. 여전히 서울 곳곳에 빌딩이 올라가고, 리모델링 공사가 바쁘며, 프랜차이즈를 들이려 안달이다. 더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갖춰가는 도시의 모습. 빌딩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558만 명, 주거 빈곤에 허덕이는 45만 청년 가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