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약칭 경총) 영리병원 설립 허가 및 원격의료 허용 주문
▲7월 19일 정부부처협동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 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발표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 5당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오찬에서 “의료혜택이 닿기 어려운 도서벽지 환자에 대한 원격의료는 선한 기능” 발언
▲9월 20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간사 합의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약칭 규제특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지난 박근혜 정권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영리부대사업을 확대했다. 신의료 기술 평가를 간소화하고 임상시험 규제를 완화했다. 규제의 빗장이 열리면서, 줄기세포를 필두로 각종 의약품과 화장품,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현재, 문재인 정부는 ‘개혁, 혁신 과제’라는 이름으로 지난 정권의 의료 정책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산업의 규제완화’를 외치던 의료자본과 한 배를 탄 건 지난해 여름부터다. 지난해 6월 8일 제1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당시 김동연 부총리는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곧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규제개선 등 9건의 혁신성장 규제개혁 과제’를 기재부에 건의했다. 이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선한 기능’을 언급하며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한 달 후인 9월 20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간사 합의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약칭 규제특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규제특구법은 병원자본이 병원을 사고 팔 수 있게 하고, 부대사업을 무제한적으로 펼칠 수 있게 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관련법을 풀어 기업이 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규제특구법은 특정 지역에 한해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 및 서비스의 규제를 풀어주는 법안이다. 시·도지사에게 규제자유특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는 규제자유특구의 승인권한을 갖도록 했다. 지자체장이 임의로 신사업이라고 규정하면, 기존 법도 적용받지 않는 특혜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사업들도 브레이크 없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
① 헬스케어특위, 기업들의 신문고?
박근혜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창조경제’라 불렀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를 ‘4차산업혁명’이라 부른다. 정부는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이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수혜 분야로 ‘헬스케어’를 꼽았다며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경청과 지원을 예고했다.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새로운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라 홍보했다. 2017년 12월,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헬스케어특별위원회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1년간, 4차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업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 안아 정부에 전달하는 ‘빵 셔틀’의 역할만 했다. 마치 1년 안에 뽕을 빼겠다는 듯, 내용은 실로 방대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위원회는 문 대통령으로부터 의료기기분야 규제완화를 이끌어냈다. 체외진단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고 신속히 시장 진입이 가능해졌고, 국내 출시가 불가능했던 융복합 의료기기의 인허가 및 유통도 가능해졌다.
2018년 6월, 헬스케어특별위원회는 스마트헬스 분야의 6개 주요 과제 추진계획을 밝혔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신약개발 및 임상시험, 의료기기 규제완화 등이 중점 과제였다. 의료민영화의 끝판왕인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 빅데이터 활용 등도 요구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역시 이를 강조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 정부 위원회에서 의료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걸까. 의료산업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헬스케어특위 구성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헬스케어 특별위원회는 1명의 위원장, 10명의 산업계 위원, 7명의 학계 위원, 3명의 연구계 위원, 4명의 정부부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산업계 위원들에 대한 불투명한 선정 과정과 대표성은 두고두고 논란거리였다. 실제로 산업계 위원 10명 중 7명은 의료기기·체외진단기기 업체 출신이다. 규제완화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인 셈이다. 이 같은 연유로 헬스케어특위 발족 후 7월엔 의료기기 규제완화 대책이 대거 나왔다.
학계 위원으로 위촉된 교수들 중 일부는 관련 기업에 몸을 담고 있다. 특히 장정호 세월셀론텍 대표가 줄기세포 분야의 공식적 대표자로 참여하고 있음에도, 줄기세포 기술개발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이 위원장 및 학계 대표로 위촉됐다. 우선 특위 위원장인 박웅양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삼성유전체연구소에서 유전체 분석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또 ‘마크로젠’이라는 생명공학 벤처기업 전문업체에서 2006년부터 3년간 사내이사로 재직했다. 마크로젠은 개인 유전정보 분석, 질환예측 및 진단용 유전자 발굴, 줄기세포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회사다.
박윤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는 2016년 주식회사 ‘나이벡’에서 경영개발기획본부장, 전무이사 등을 맡았다. 나이벡은 펩타이드 헬스케어 전문기업으로, 의료용품 및 기타 의약 관련제품인 치아미백제, 치과용 골이식재 제조 사업을 비롯해 화장품 사업까지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나이벡의 주식 4.20%를 보유하고 있다. 오정미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하임바이오’에서 임상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하임바이오는 차세대 항암제 신약개발, 건강 기능성 제품 개발, 스마트 헬스케어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오 교수는 2011년부터 1년간 의료기기 판매업체인 엔케이바이오(현 셀텍)의 사외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지난해 8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혁신성장론’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헬스케어특위의 문제를 꼬집었다. 김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완화 방식은 지난 정권에 비해 보다 위협적이다. ‘선진입-후평가’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의료 분야에 전면 적용했다”라며 “특정 산업체 요구를 근간으로 경제부처 중심으로 규제완화의 틀거리를 세우고, 보건의료 관련 부처가 경쟁하듯 산업계 민원을 근거로 이를 지원하고 실행수단을 강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② 의료기기 휘뚜루 마뚜루 규제 풀었다
지난해 7월 19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의료기기의 시장진입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현행 280일에서 250일로 단축하고, 보험등재 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인체 안전성의 우려가 적은 의료기기에 한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정책도 있었다. 예를 들면 체외진단검사 분야의 경우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해 개발 후 1년 넘게 걸렸던 시장진입(최대 390일)을 80일 정도(최대 310일) 대폭 단축시키는 것이다. 체외진단(In Vitro Diagnostics) 제품으로는 임신진단시약부터, 위해성이 높은 수혈용 감염질환(HIV, HBV, HCV) 선별 시약, 혈액형 확인 시약, 인플루엔자 감염진단 시약, 종양검사 시약까지 다양하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평가절차에서 탈락해온 부실한 의료기기를 어떻게든 시장에 진입시키겠다는 업체들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이라며 “불필요한 진단기기가 도입될 경우 환자는 과도한 검사에 노출되고 그에 따른 의료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외진단기기의 규제완화는 원격의료의 선행조건으로 꼽힌다. 원격의료가 활성화 될 경우 가장 큰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장비이기도 하다.
원격의료 확대 움직임 또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1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은 원격진료 확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1차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에 대해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모니터링 사업 추진하고 환자의 건강·생활을 모니터링해 맞춤형 교육·상담 등 환자관리 서비스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③ 환자정보 푼다
기업이 개인의 건강 및 질병 정보를 합법적으로 취득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오·헬스 산업 활성화 등을 명분 삼아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 정보’로 분류되는 건강정보까지 빗장을 여는 규제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민간보험사는 개인의 건강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보험상품을 설계하거나, 보험가입 시 보험금을 높이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병이 많은 사람은 아예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다. 민간보험사에게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지난해 10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는 ‘개인의료데이터 활용범위 구체화’가 규제혁신 방안의 하나로 꼽혔다. 바이오·헬스 산업에 활용할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으로 보건복지부는 올 상반기에 ‘건강정보의 보호 및 활용에 관한 법률’(가칭)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관으로부터 자기 정보를 직접 다운받고, 제3자 제공을 허용하는 방식이므로 개인이 정보의 주체가 되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데이터 이동권 확립’, ‘국민의 데이터 주권 찾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들은 “마이데이터 사업은 자신의 의료정보를 자신이 내려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포괄적 동의 방식으로 충분한 설명이나 고지 없이 다수의 개인 건강검진기록이 제3자에게 자동 전송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39개 대형병원 5000만 명의 환자 개인정보에 대한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사업을 2020년까지 완료하고 기업들의 상업적 활용 및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 사업 역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39개 병원장들의 동의만으로 사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한편 기재부 등 관계 부처는 올 상반기에도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의료를 포함해 관광, 물류, 게임·콘텐츠산업 등 네 개 분야의 활성화 방안이 주요 내용으로 담길 전망이다.(워커스 51호)
10년 전, 삼성이 찍은 미래 먹거리 ‘바이오, 제약’
정부의 규제완화, 삼성의 큰 그림 안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던 삼성은 2010년 바이오산업을 5대 신수종사업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사업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신사업추진단 관계자들에게 향후 10년 동안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친환경 및 건강증진 사업에 23조3000억 원을 투자해 집중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이듬해 삼성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사업(CMO)을 맡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연구개발 사업에 집중했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줄곧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투자는 계속됐다. 30,000L 생산능력을 가진 1공장에 이어 2013년 152,000L 생산 가능한 2공장을 착공했고, 2015년엔 180,000L 생산 가능한 3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3공장 준공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1위의 CMO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에도 엄청난 투자가 이어졌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면서 얻게 된 R&D 노하우를 바탕으로 추후 신약에도 도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44억 원 가량을 들여 삼성물산 등으로부터 R&D 센터 시설을 취득했다. 2012년 회사 설립 이후 2017년까지 투자한 R&D 비용은 9000억 원이 넘는다.
삼성 바이오산업의 안정화는 정부와 업계에서 집중하고 있는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의 기반이 됐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제약 분야와 삼성의 다른 의료 사업 간의 시너지를 모색하고 있다. 삼성의료원이 의료서비스를, 삼성SDS가 원격의료 플랫폼을,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과 각종 전자칩 기술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맞춤형 의약품 생산을, 삼성생명이 보험을 담당하며, 고부가가치의 의료산업에서 삼성계열사 간의 협업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그림이다.
2015년 12월 삼성은 그룹 내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전동수 전 삼성 SDS 사장을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으로 임명하며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정부에 규제완화를 주문하는 것 역시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 준비의 일환이다.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미래 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건강관리서비스의 시장화와 원격의료의 도입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부터 산업계 관계자의 요구를 받아 안아 원격의료를 위한 규제 완화 과제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만이 누릴 수 있는 조금 더 노골적인 주문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바이오 제약 분야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며 약값이 시장에서 자율로 정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3일 뒤, 김 부총리는 ‘의료 관련 규제’가 규제혁신 리스트 우선순위에 있다는 뜻을 밝히며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를 달궜다.
최근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 움직임은 삼성생명에 호재다. 빅데이터는 보험 심사에 활용하거나, 신약 및 건강관리서비스 등을 개발할 수 있는 무궁한 수익 창출원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정책이 개인 정보 유출 및 건강불평등 심화, 기업의 이익 독점을 야기할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개인정보관련법 개정 없이도 개인이 기관으로부터 자신의 정보를 다운로드해 건강관리서비스 업체에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시간 건강관리를 받는 ‘마이데이터’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2005년 공개 된 ‘삼성생명 내부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최종 목표는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다. 이는 통상 의료민영화의 종착점이라 불린다. 삼성은 ‘정액방식의 암보험(1단계)’ → ‘정액방식의 다질환 보장(2단계)’ → ‘후불방식의 준 실손보험(3단계)’ → ‘실손의료보험(4단계)’ → ‘병원과 연계된 부분경쟁형(5단계)’을 거쳐 최종적으로 민간 보험이 정부 보험을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