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의 눈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32분경. 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망한 김용균(24) 씨는 한국서부발전 1차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입사 3개월 차 노동자였다. 고인의 어머니는 사업장을 둘러보고 ‘살인병기’라며 오열했다. 아들을 집어 삼킨 살인병기를 그대로 두면 죽음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고인 또래의 노동자에게 “너라도 살아라”고 말하던 유족은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겠노라며 고용노동부, 서부발전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컨베이어벨트에 협착됐다는 표면적 사망 이유가 아닌, 이 상황을 만든 진짜 원인을 알아야 했다. 왜 위험 업무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되는지, 사람 목숨 값으로 절감한 이윤은 누구의 배를 불렸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진짜 원인을 알게 될 것이었다. 5개 발전소에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37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원인 또한 알게 될 것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김용균씨의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분진을 막기 위해 쓴 마스크가 그의 안경을 조금 들어올린다. 안전모는 검은 석탄가루로 얼룩져 있다. 더 가까이, 자세히, 오래 그의 눈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김용균이라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하루에 한 명 꼴로 산재를 당해 사망하는 또 다른 김용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오늘도 이어지는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는 그의 죽음을 오래 기억해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 큰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 ‘1:29:300의 법칙’ 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은 1명의 사상자가 나오기까지 29명의 경상자와, 300명의 잠재적 부상자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태안화력발전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하기 전부터 이미 무수한 하청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이 죽음들에는 ‘위험의 외주화’ 라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이것은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낳도록 하고, 이후의 대책들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과연 ‘비정규직 보호’ 를 외쳐왔던 정부와 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에어떤 조치들을 해 왔을까. 《워커스》는 지난 2년간 수 없이 사라져 간 또 다른 김용균들의 죽음과, 이후 조치들을 살펴봤다.
#1. 제주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 씨
2017년 11월 9일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민호 씨가 제주 용암수를 만드는 한 음료회사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중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10일 뒤인 11월 19일, 이 씨는 끝내 숨졌다. 향년 만 17세였다.
사고 당일 CCTV를 보면, 이 씨는 팔레트 바닥의 합판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합판을 밀어 넣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던 것처럼 이 씨의 행동은 능숙했다. 이 씨가 조치를 취하고 나오는 순간 압착기가 작동해 그의 머리를 덮쳤다. 앞으로 고꾸라진 이 씨의 목과 가슴이 압착기와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 끼었다. 몇 분간 방치된 끝에 이 씨가 발견됐지만, 설비는 15분간 멈추지 않았다. 작업자, 관리자 누구도 기계를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비상정지 스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 의 조사 결과, 회사는 설비 오작동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동하고 있었다. 감지 센서나 방호펜스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설치하지 않았다. 현장실습생임에도 위험작업에 홀로 배치됐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번 사고는 이 씨가 당한 세 번째 사고였다. 7월부터 ‘현장실습’ 을 시작했는데, 두 번째 사고 당시에는 갈비뼈를 다쳐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사망사고 이후, 회사는 이 씨가 정지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고 설비 내부로 들어갔다며 사고의 책임을 개인 과실로 돌렸다. 사고 발생 초기엔 현지 언론에 계약직 직원이 살짝 다쳤다고 사고를 축소해 알리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의 현장 점검 결과 산업안전 분야에서는 총 513건이, 근로감독 분야에서는 167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하지만 2018년 1월 3일, 작업 중지 명령이 해제되면서 업체는 운영을 재개했다.
이민호 씨 사망으로 현장실습생 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2017 12월 1일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폐지안을 내고 2018년 2월엔 ‘학습중심’ 현장실습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노조나 시민사회진영에선 “무늬만 ‘학습’ 이며 저임금 노동착취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라고 반발하고 있다.
2018년 12월 28일 회사의 대표, 공장장에 대한 결심공판이 진행된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의 혐의를 들어 대표에게 3년을 구형하고, 공장장에게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한 상태다. 민호 씨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노동부의 표면적인 조사를 성토하며 재조사를 요구 하고 있다. 이 씨는 “용균이 아버지, 어머니께도 절대 지쳐서 쓰러지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깔리고, 쓸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조문 오는 정치인들을 믿지 말라고도 했다. 결국 유족들 손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2. CJ대한통운 아르바이트 대학생 김 모 씨
2018년 8월 5일 오전 4시경, CJ대한통운 대전 물류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김 모(22) 씨가 컨베이어 벨트 아래를 청소하다 전기가 흐르는 기둥에 닿아 감전됐다. 함께 일하던 친구 이 씨가 “살려달라” 고 외쳤지만 누전 차단기는 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라인이 멈춘 건 감전된 지 30초 이상 지난 뒤였다.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김 씨는 열흘간을 버티다가 8월 16일 끝내 사망했다.
이후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누전을 두고 원청과 하청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전기안전관리 하도급업체 측은 경찰조사에서 “이전에도 누전이 있어서 CJ 측에 조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고 주장한 반면 CJ 측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 라고 맞섰다.
CJ 측에 대한 문제들은 계속 드러났다. CJ 측은 누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고를 막는 ‘접지시설’ 도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1만 원도 안 되는 누전차단기조차 없었다. 사망한 김 씨와 친구 이 씨는 그곳에서 작업복도 갖춰 입지 못한 채 일을 해 왔다. 열대야 속에서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은 웃통을 벗고, 포도당 2알과 얼음물 한 병에 의존해 12시간 이상 일했다. 고용노동부의 안전보건 감독 결과, 전체 과태료 7,500만 원 중 CJ 측에 부과된 액수는 650만 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6,500만 원은 고인을 고용한 하청업체에 부과됐다.
CJ대한통운에서는 이 사고 이후 3개월 동안 두 건의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더 발생했다. 8월 30일, 옥천터미널에서 상하차 업무를 하던 김 모 씨(54세)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고, 10월 29일엔 대전터미널에서 유 모 씨(33)가 후진하던 트레일러에 끼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안전보건 감독 결과는 모두 비공개에 부쳐진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 관계자는 “입장을 바꿔서 내 사업장에서 근로감독하고 그 결과를 공표해버리면 누가 좋겠나라며 “저희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 고 말했다.
#3. 한화종합화학 대산 석유화학단지 하청 노동자 구민영 씨
구민영(27) 씨는 2018년 5월 18일 한화종합화학 대산석유화학단지 공장에서 숨졌다. 구 씨는 한화종합화학 하청인 ㈜한수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에 따르면 회사 관리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 9시 37분, 냉각탑(쿨링타워) 내 설비 이상을 감지했다. 전류 암페어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냉각탑 내 배관이 막혔다는 신호였다. 관리자들은 냉각탑 위 발판이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설비보조제 투입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구 씨는 보이지 않았다.
오후 1시 55분 경, 소방관들이 냉각탑 내 배관(버터플라이 배관)에 팔이 끼인 채로 숨을 거둔 구 씨를 발견했다. 소방서는 냉각탑의 물을 1시간가량 뺀 뒤 오후 2시 55분경 시신을 수습했다. 서산소방서가 밝힌 신고 시각은 12시 49분이다. 하지만 서산경찰서에는 당일 한화종합화학으로부터 들어온 신고가 없었다. 구 씨는 이날 작업을 하다 발판이 떨어져 6m 깊이의 냉각탑으로 추락했다. 발판을 받치는 볼트가 부식된 것으로 밝혀졌다. 난간은 없었고, 추락 방지망도 없었다. 사고 당일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은 “사업장에서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사망 사고로 이어져 안타깝다” 며 “원하청 관련자들을 불러 안전 작업 수칙 준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법 위반사항에 대해 사법 조처를 내리는 등 엄정한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 고 밝혔다. 그러나 보령지청은 재해 조사에 노동조합을 포함하지 않았고, 이후 ‘반쪽짜리’ 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는 “우리가 공유 받은 보고서는 A4 약 3장 분량이었다. 보고서엔 발판을 새 것으로 교체한 사진, 안전 난간을 설치한 사진 등이 있었다. 근본 대책인 하청 구조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고 밝혔다.
노동부 보령지청 관계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조사를 다 했으나,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 관련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 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원하청 관련자 4명을 기소했다. 작업중지해제도 심의위원회를 거쳐 안전조치를 마련했다” 고 밝혔다. 하지만 구 씨가 사망하고 10일 뒤,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또 다른 포스코건설 하청노동자가 30m 위 구조물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4. 엘리베이터 시설관리 하청 노동자 이명수 씨
이명수(21) 씨는 2018년 3월 28일 오후 4시경 이마트 다산점 에스컬레이터에 몸이 협착되는 사고를 당했다. 하청 업체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이미 숨을 거둔 이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 씨는 태광엘리베이터 소속 노동자였다. 이마트 다산점은 승강기 유지보수 업무를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에 위탁했고, 이 업체는 다시 태광엘리베이터에 재하도급을 줬다. 사망한 이 씨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니다 현장실습으로 태광엘리베이터에 취직한 하청 노동자였다.
사고 당일, 이 씨는 지하 1층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지상 1층에서 작업 중이었다. 위쪽과 아래쪽 두 명씩 총 4명이 해야 할 작업이었다. 사측은 사고 이후 양쪽에 2인 1조로 작업했다고 했으나 이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사측은 또 작업 전 10분 간의 안전교육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CCTV 확인 결과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사측은 안전업무일지의 고인 서명까지 위조해 유족에게 들통나기도 했다.
사고 이후 마트산업노조는 이마트의 외주화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까지 이마트는 에스컬레이터 외에도 미화, 보안 등의 업무를 모두 외주화했다. 마트노조는 외주 문제 개선과 안전관리 책임자 충원 등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5.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이남주 씨
2018년 4월 26일 오후 4시 40분경 대전의 한 아파트 계단에서 이남주(38) 씨가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이 씨는 SK브로드밴드 자회사인 홈앤서비스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 씨는 이날 혼자 아파트 IDF함 층포트 연결 작업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이삿짐센터 직원이었다. 발견 즉시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뒤 오전 9시 10분경 이 씨는 숨을 거뒀다.
노조는 2인 1조로 근무했더라면 사망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평소에 지병이 없었다. 이 씨가 쓰러진 뒤 최소 10분에서 최대 40분가량 방치됐던 것도 문제였다. 병원과 노조는 이 씨가 혼절 직후 응급조치를 받았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는 인트라넷을 통해 이 씨가 개인 건강상의 이유로 사망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노조는 홈앤서비스가 자회사로 전환되기 전부터 2인 1조 근무를 요구해 왔다. 사측은 2인 1조로 근무하게 되면 물량을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SK브로드밴드는 현재까지도 위험 업무의 2인 1조 근무 원칙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김선우 SK브로드밴드지부 정책부장은 “사측은 사고 이후 안전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 며 “현재 사측이 실시하는 산업안전보건 교육은 형식적이다. 우리 작업 현장과 동떨어진 건설 현장 얘기가 나오는 등 우리 안전과 무관한 내용이 절반가량이다. 가장 중요한 2인 1조 근무 얘기는 없다” 고 밝혔다.
죽음 내몰리는 청년 하청 노동자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하청 노동자는 1,426명이다. 하루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셈이다. 최근 6년간 3명 이상 사망한 재해에서 하청노동자가 8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죽음의 외주화로 내몰리는 20대 청년들도 늘고 있다. 2018년 8월 기준 통계청 연령별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30대는 2013년에 비해 3%p, 40대는 약 3%p, 50대 역시 0.1%p 소폭 감소했다.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20대 청년층만 비정규직 비율이 늘었다. 경제활동인구 전체를 따져 봐도 비정규직 비율은 증가세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은 2017년에 비해 2018년 3만9천 명이 늘었다. 반면 정규직은 2만9천 명이 증가했다. 5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비정규직은 3만 3천 명이 증가했고, 정규직은 6천 명이 감소했다.
한편 국회는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빠르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위험 업무의 도급을 금지하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2016년 구의역 김군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이후 이를 추진하다 재계의 반발로 물러선 전력이 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측은 “유족은 고인이 남긴 ‘문재인 대통령님,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라는 유언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며 “국회는 산안법 개정 국면으로 사고를 축소하고 꼬리를 자르려 한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 가운데 하나는 외주 업무를 인소싱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동시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은 반복된다” 고 강조했다.(워커스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