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록 객원기자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 발생 이후 전면적인 탈핵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재검토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크다.
허술한 내진 설계, 시한폭탄 품은 핵발전소
이번 포항지진(5.4)은 경주지진(규모 5.8)처럼 양산단층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지만 울진, 월성, 고리핵발전소는 모두 양산단층을 내진설계시 반영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내 핵발전소 내진설계를 살펴보면, 현재 가동 중인 24기 가운데 신고리 3호기만 규모 7.0(0.3g)으로 내진설계가 돼 있고, 나머지 23기는 모두 규모 6.5(0.2g)에 맞춰져 있다. 내진설계 설정 기준은 역사지진기록과 계기지진기록, 활동성단층을 이용한 최대지진평가다. 그러나 월성과 울진, 고리에 있는 핵발전소는 모두 양산단층대를 내진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고리와 한울핵발전소는 1936년에 발생한 지리산 지진 규모 5.0을 이용, 월성핵발전소는 읍천단층(규모 6.0)을 이용, 한빛핵발전소는 속리산지진(1978, 규모 5.2)을 이용해 모두 0.2g로 설계했다. 양산단층대는 육지 길이만 230km이며, 양산단층을 중심으로 울산단층, 일광단층, 동래단층, 밀양단층 등 60개가 넘는 활성단층이 분포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또 이번 포항의 지진규모는 5.4이지만 진앙지에서 2.6km 떨어진 한국가스안전공사 흥해관리소에서 측정된 최대지반가속도는 0.58g에 이른다. 즉, 규모 6.5=0.2g, 규모 7.0=0.3g의 내진설계가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최대지반가속도(g) 값은 지진의 규모뿐만 아니라 발생 깊이, 거리, 지질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참고 : 지진규모는 지진 발생지점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말하며, 최대지반가속도(g)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땅 위의 사람이나 물체가 느끼는 흔들림 정도를 말한다. 진도는 특정 지점에서 사람이 느낀 감각이나 구조물의 피해 정도를 등급화한 것이다.)
김성욱 박사(지질학, 지아이지반연구소 대표)는 지난 9월 울산에서 열린 경주 지진 1년 토론회에서 “역사지진 목록을 보면 고리지역 최대지진은 7.72다. 역사지진 기록은 진도 8 이상이 15회, 진도 5 이상이 440회 있었다”며 “고리와 월성지역 원전부지는 활성단층대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
진·지질조사 없이 11년 전 재탕보고서 제출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부지의 지질과 지진조사도 하지 않은 채, 11년 전에 작성한 신고리1·2호기 조사결과 재탕보고서로 건설허가를 받은 것은 이미 밝혀진 바다.
2016년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승인했다. 원안위는 건설허가 승인 과정에 다수호기 관련 안전성, 지진과 지반 안정성 등을 검토했지만, “다수호기 안전성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진, 태풍 자연재해와 인위적 사건으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부지를 선정했다”고 결론지었다. ‘원자로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 제4조에 있는 심사기준은 ‘원자로시설은 지각의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며, 그 설치지점 및 주변의 지표면이 붕괴되거나 함몰될 가능성이 없고 경사면과 지반이 안정된 곳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와 관련한 원안위 회의록을 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원전의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질현상은 없었다. 원자로건물 설치지점의 지반 부위에 연약대가 단층 형태로 발견되었으나 저희가 정밀조사를 요구하여 확인한 바로는 최후 운동시기 186만 년 이전으로 활동성단층은 아니며, 길이 200m 이내, 최대 폭이 1.3m 정도로 원전의 안전성에는 영향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2016년 6월 9일 제56회 원안위 회의록 중 김인구 KINS 원자력심사단장 발언)”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지진에서 확인되듯 동남권 핵발전소 부지
안전성은 장담할 수 없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작성한
활성단층지도와 지진위험지도 폐기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은 2009년 자연재해 저감기술 개발사업 일환으로 20억 원의 정부 예산을 들여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연구용역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맡겼다. 연구 기간은 2009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연구진으로는 18명이 참여했다.
이후 2012년 10월, 정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작성한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연구용역 보고서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역시 활성단층지도와 지진위험지도를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졌으며, 당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책임자였던 최성자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질조사 결과 활성단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공청회를 열었지만,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2012년 제출한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연구용역보고서가 일반 국민에게 공개됐다면, 월성1호기 수명연장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진은 활성단층으로는 양산단층, 울산단층, 일광단층, 광주단층 등 17개 단층을 조사했으며, 3년 동안 연구한 정보를 이용해 활성단층정보시스템도 개발했다. 보고서는 활성단층 정밀조사 지역은 전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동남부의 양산 및 울산단층 일원임을 밝혔고, 향후 추가로 전국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평가
“허점과 오류 투성이 공론과정이 숙의민주주의라니”
위에 언급한 내용 가운데 포항지진 내용을 뺀 나머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이전에 이미 밝혀진 내용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운영한 신고리 5·6호기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을 운영해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정부에 권고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건설 재개 입장을 밝혔다. 전국 9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안전한사회를위한 신고리 5·6호기백지화 시민행동’과 전국 탈핵진영은 신고리 5·6호기 공론 결과를 접하며 뼈아픈 교훈을 얻고 있다. 건설 재개가 결정되자 공론화 과정 초기 대응에 부족했던 점, 문재인 정부의 탈핵의지를 낙관한 것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이 11월 17일 명동성당에서 ‘기로에 선 탈핵운동,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주최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평가 워크숍에서 양이원영 처장(환경운동연합, 공론화 대응 탈핵진영 정책 담당)은 “공론화 의제가 탈원전이 아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가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공론화 의제를 신고리 5·6호기로 국한함으로써 탈원전을 찬성하는 이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재개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또 “공론화위에 공론화 전문가가 없으면서 사실상 제대로 된 공론화 설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숙의 기간이 충분치 않음도 지적했다.
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대외협력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탈핵진영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대응에 대해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약속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공론화 대상이 아니라 정부가 즉각 실행할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탈핵진영은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모든 핵발전소 전면 백지화와 가동 중인 핵발전소 조기폐쇄를 위한 탈핵로드맵을 정부가 수립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고리 5·6호기백지화울산시민운동본부는 두 차례의 평가토론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탈핵의지에 대해 낙관했던 측면을 되돌아보고, 당사자 지역 목소리가 시민참여단이나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 시민참여단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참가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공론과정을 진정한 숙의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허점과 오류투성이의 공론과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정부가 주장했던 3개월의 숙의기간은 9월 16일부터 10월 15일 까지, 10일간의 추석 황금연휴를 제외하고는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으로 축소됐다. 활동 종료시점 이틀 전인 10월 13일 설문조사에서 471명의 시민참여단 중 신고리 5·6호기가 어디에 들어서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57.6%에 불과했다. 종합토론회에서는 양측의 상반된 주장만 오고가면서 시민참여단이 ‘팩트’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다. 시민참여단 구성 역시 건설재개측 36.6%, 건설중단측 27.6%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했다.
한편, 11월 15일 포항 지진 이전까지 신고리 5·6호기 공론 결과 여파로 충격에 빠졌던 탈핵진영은 다시금 전면적인 탈핵을 요구하고 있다. 포항, 경주, 울산, 부산 등 핵발전소 인접지역 주민들은 피난배낭을 싸는 등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과 울산, 부산, 경남, 울진 등지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핵발전소 가동 중단과 안전성 재검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워커스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