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파괴 범죄로 구속된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에게 탄원서를 써 면직(해고)됐던 금속노조 간부 조 모 씨가 재심에서도 면직조치 됐다. 앞서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지난 6월 6일, 만장일치로 조 씨에게 ‘의원면직’ 처분을 결정했다. 조 씨가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나 의혹을 다툴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 씨는 그날 중앙집행위원들에게 최후의 변을 작성해 배포했다. 그는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절차에 따라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조 씨는 절차에 따라 지난 6월 15일 중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18일 열린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조 씨에 대한 징계를 ‘정직 3개월’로 낮추는 수정안이 올라왔다. 회의에 참여한 중앙위원 54명 중 50명이 반대해 수정안이 부결됐다. 면직(해고)이 결정된 1심 원안에 대한 표결이 실시됐다. 54명 중 47명이 찬성, 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결정으로 조 씨의 면직 처분이 확정됐다.
정말 ‘조직적 배경’ 없는 ‘개인적 일탈’이었을까
지난 5월 14일, 조 씨가 삼성 노조파괴 간부의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서 불구속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금속노조는 4일 뒤 ‘삼성자본을 위한 탄원서는 민주노조에 대한 배신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조는 여기서 “현재까지는 조직적인 배경 없이 개인이 삼성 자본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는 노동계 내부의 시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개인적인 일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교섭 과정에 긴밀히 개입해 왔던 과정들을 살펴보면, 단지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지난 4월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직접고용 합의 과정에서 조 씨가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당시 조 씨는《워커스》와의 통화에서 “지부에 교섭권이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지금 상황은 잘 모른다”며 “교섭권자도 아니고 떨어져있는 사람한테 뭘 물어볼 수 있겠나”고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실제로 조 씨는 노사 직접고용 합의 전, 삼성전자서비스 최평석 전무를 만나 탄원서를 약속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합의는 비밀리에 논의되고, 전격적으로 발표된 합의였다.
조 씨가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 교섭 라인을 만든 것은 2014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염호석 열사 투쟁 후, 노사가 ‘블라인드’ 교섭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조 씨는 블라인드 교섭을 주도해 왔던 인물이다. 인물도, 장소도, 내용도 모두 비공개에 붙여진 블라인드 교섭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당시 조 씨는 공개되지 않은 인물과 1대1로 비공개 독대교섭을 했다. 조 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이를 삼성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역시 블라인드 교섭으로 도출된 교섭 결과에 도장을 찍으며 이를 묵인했다.
금속노조는 블라인드 교섭의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이듬해 9월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에 ‘삼성전자서비스 투쟁, 교섭, 조직운영 평가’안이 제출됐다. 금속노조는 여기서 “삼성과의 비공개교섭은 공개교섭, 집단교섭, 교섭회의록 등 기존 금속노조의 교섭관행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평가했다. 합의 이후 단체협약 내용을 둘러싸고 노사가 충돌했지만, 노조는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노측이 갖고 있던 것은 오직 ‘노측 실무간사가 실무교섭팀에 구두로 보고한 교섭상황을 기록한 실무교섭팀 회의결과 뿐’이었기 때문이다. 교섭이 1대1 독대 방식으로 이뤄져, 실무교섭팀이 ‘교섭단위’의 역할이 아닌 ‘최초로 교섭을 보고받는’ 단위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비공개 교섭 정보가 정세 판단, 투쟁 방향 설정의 유일한 근거가 되면서, 노조 교섭총괄 책임자는 교섭총괄 뿐 아니라 투쟁 상황까지 총괄하게 됐다. 또한 금속노조는 주체가 돼야 할 지회가 교섭 당시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에, 합의 사항을 놓고 현장에서 혼란도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금속노조는 “노조 내부에서 비공개교섭이 아닌 다른 교섭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와 토론이 있지 못했다”고도 했다.
‘삼성의 특수성’과 비정상적 ‘교섭 전술’을 묵인한 결과
비판적 평가가 있었을지라도, 노조는 비정상적인 교섭라인과 삼성의 특수성을 인정해 왔다. 그리고 이 같은 비정상적인 구조는 현재까지 이어져, 조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사건을 낳았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운영위에서 조 씨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직접고용 발표 며칠 전 최평석 전무와 조 씨가 만나 ‘직접고용 발표’와 ‘탄원서 작성’을 맞바꿨다.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최 전무와의 만남을 보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직고용 일관되게 밀고가라, 그러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또한 조 씨는 “4월 주말쯤 지회로부터 ‘직고용에 대한 합의문을 곧 발표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금속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긴급하게 보고해야 한다, 그런 주문을 하고 금속과 민주노총에 보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 씨는 최 전무와의 ‘딜’을 ‘교섭전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지부 운영위에서 “저는 교섭전술로 직고용 한다면 (최 전무와 교섭라인에 있었다는 사실을 법원에) 증명해주마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교섭전술로 대비를 한 것”이라며 “쌩까버리면 이후 후속 교섭에 영향을 미치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가 노조에 제출한 경위서에서도 “2014년에도 과거의 민주노조 상식과 맞지 않는 소위 ‘블라인드 교섭’을 했다. 비정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지만 새로운 장벽 앞에서 선택한 ‘변칙’이었다. 이 순간에도 삼성 장벽을 넘으려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이라는 특수성’과 ‘민주노조의 일반적 상식’이 충돌할 수 있다. ‘삼성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 노사관계의 ‘원칙’을 강조하는 분들은 저의 ‘삼성을 넘기 위한 교섭 전술’을 하찮은 변명으로 여길 수 있다”고 항변했다. 블라인드교섭에서 시작된 비정상적 ‘교섭전술’이 노조의 묵인 하에 더욱 불투명하고 사사로워진 셈이다.
실제로 노동계 일각에서는 탄원서 제출이 ‘교섭전술’이었다며 징계를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조 씨가 활동해 왔던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5월 21일 진상조사를 제안하며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직고용’을 이끌어 내기 위한 교섭전술로 탄원서를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조합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재벌 자본과 노조파괴범을 위해 움직인 배신행위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직고용으로 직진함으로서 무노조 삼성에서 민주노조 깃발을 세우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밀하게 자리 잡은 ‘교섭 전술’과 ‘교섭 라인’은 권한을 뛰어 넘는 개인적 거래로까지 이어졌다. 블라인드 교섭 이후 원청 교섭 라인을 갖게 된 조 씨는, 이후 지회와 원청을 연결하는 유일한 소통 창구가 됐다. 조 씨 역시 경기지부 운영위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입장에서는 원청한테 의견을 전달할 루트가 경총과 경찰과 저 세가지였다”며 “지회가 요청했을 때 지회의 판단을 전달하는 것 혹은 삼성이 어떤 요청이 있을 때 전달하는 건 가끔씩 했다”고 밝혔다.
2016년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 간부인 박 모 씨가 협력업체 대표로부터 6천 만 원의 금품을 챙기는 과정에도 조 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조 씨가 나에게 ‘대표가 위로금 이야기를 할 것이니 만나보라’ 이야기를 해서, 무슨 명분으로 위로금을 달라고 하느냐, 그에 맞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조 씨가 ‘내가 다 이야기 해놨다’고 말했다”며 “대표가 ‘조 씨와 퇴사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고 하길래 ‘내 퇴사 문제를 조 씨와 이야기하는 것이 맞느냐’고 했더니 대표가 그냥 전화를 끊었다”고 주장했다. 조 씨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는 답변을 거부한 채 “너무 많은 공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누구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4년 전과 비슷한 것
현재 조 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2014년 블라인드 교섭부터 최근의 탄원서 논란, 금품 중개 등 일련의 사건들까지도 ‘삼성의 특수성’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사정을 모르는 소리’라던가, ‘현실적이지 않다’던가, 심지어 ‘노조를 흔들기 위한 비방’이라고 치부한다. 2014년 당시〈미디어충청〉이 블라인드 교섭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하자, ‘삼성 내 매파가 공작한 역공작 정보로 보이며 교섭을 깨겠다는 의도’라는 비난이 나왔다. 블라인드교섭 과정에서〈미디어충청〉이 교섭안 전문을 게재하자 조 씨는 “모 언론에서 교섭안 전문을 보도해 교섭이 휘청휘청했다”며 “삼성서비스 조합원을 위한 언론”이 돼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조 씨는 최근 발간된 자신의 저서에서 블라인드 교섭 비판을 ‘엉뚱한 논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교섭을 둘러싼 엉뚱한 논쟁이 부각되는 바람에 투쟁문화를 깊이 있게 평가하고 토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해설은 이렇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섭을 둘러싸고 ‘밀실교섭’ 혹은 ‘블라인드교섭’이라고 공격하는 주장이 있었다. (…) 원청과 교섭해야 하는데 원청 사용자는 교섭장에 나오지 않는다. 비공개 직접교섭, 원청이 블라인드 뒤에 배석하고 하청 노사가 교섭을 하는 블라인드 교섭, 정치인을 비롯한 제3자가 중재하는 3자교섭을 비롯해 원청과 하청노조 사이에 복합적 교섭방식이 탄생한다. 이를 보지 못하고 정규직이 사용자와 교섭하듯 하청노조가 공개적으로 삼성전자서비스와 교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관념에 가깝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2015 참조.”
4년이 지난 현재,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는데도 이를 대하는 반응은 비슷하다. 지난 5월 23일, 〈참세상〉은 2014년 블라인드 교섭 직후 조 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심리상담업체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가 수의 계약을 통해 4년째 위탁 계약을 맺고 있으며, 조 씨의 조언을 통해 지회 간부가 해당 업체를 선정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최근에는 조 씨가 지회 전 간부의 위로금 6천만 원 수령 과정에서 중개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및 간부는 ‘악의적 기사’다, 혹은 ‘노조를 깨겠다는 의도’냐, ‘노조가 깨졌으면 좋겠느냐’며 항의했다. 자료 입수 경위나 취재원 정보를 물으며 해당 기사가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사건 후 노동계의 반응도 비슷하다. 여전히 ‘삼성의 특수성’과 ‘교섭 전술’에 대한 비판과 평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밀실협의와 비공식적 교섭 라인, 이로부터 비롯된 노조 간부 개인의 정보 독점과 권한 밖의 활동 등은 ‘노조 내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로 수렴되지 못한다. 지난 18일, 금속노조 중앙위는 조 씨의 ‘면직’을 확정했고, 동시에 조 씨의 ‘면직’을 확정하는 것에서 멈춰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