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서 경영난으로 점심값이 삭감된 때를 기억한다. 아마도 5만 원이었다. 애초에 점심값 명목으로 주어진 돈이 큰 금액도 아니어서, 이제 막 받기 시작한 월급 자체가 마냥 좋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월급 삭감 경험이 없던 나의 순진한 예상이었다. 종종 내게 응당 주어졌어야 할 점심값을 생각했고, 그 빈자리는 5만 원보다 크게 느껴졌다. 임금노동자라면 월급에 대한 촉수는 민감하다(어쩌면 사용자가 더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노동계 최대의 핫이슈인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바로 임금노동자의 촉수를 건드린다.
아마,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 1일부터는 피해가 가시화돼 노동계를 뛰어넘은 전 사회적 분노가 모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내 월급 통장을 건드린 주체가 국회의원이라면, 정부라면, 조금더화가나지않을까싶다.이틀에한번꼴로‘소득주도성장’을 부르짖으며 정부와 국회가 한 약속이 있으니 말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에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차상위계층에까지 해당되는 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안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했다. 이를 주도했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연봉 2,500만 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에게는 피해가 없다”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연봉 2,500만 원 미만의 노동자들도 피해를 본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법안도 폐기하겠다”는 등 자신감을 보였다. 개정안을 통과시킨 당사자들이나 노동계,둘중하나는거짓말을하는것이분명하다.우리는그거짓말을 확인하기위해내년까지기다릴여유가없다《. 워커스》는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월급명세서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분석해보기로 했다.
#1년 차 학교비정규직(조리실무사) A씨의 2018년 4월 급여명세서
A씨의 2019년도 예상 급여명세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보호할 수 있다는 ‘연봉 2,500만 원’ 이하 저임금 노동자의 급여명세서다. A씨는 방학 중 일하지 않는 조리실무사로 1년 연봉은 1,901만 원 정도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작년과 동일한 인상률인 16.4%가 인상된다고 전제하면 내년도 기본급은 183만 840원(8,760원*209시간)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여러 반발이 있는 상황에서 이 금액은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가 약속한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려면 이 정도의 인상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같은 기준을 잡았다.
A씨가 받고 있는 정액급식비 월 13만 원과 교통보조비 월 6만 원이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내년부터 월 6만1841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기본급 대비 복리후생비의 7%가 넘는 부분을 최저임금으로 산입시키기 때문이다. 복리후생비로 받는 총 19만 원 중 128,158원(183만 840원*0.07)을 초과하는 6만 1,841원이 그 금액이다. 1년으로 따지면 74만2094원의 불이익을 볼 수 있는 금액이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2024년에 이르면, 불이익금액은 연 228만 원에 달한다.
오영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사무처장은 “올해 입사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뀐 단체협약 때문에 월 통상 근로시간(올해까지 243시간)을 기준으로 산정된 월 최저임금(182만9790원)에 미달하는 금액을 보전하는 12~18만 원 상당의 ‘최저임금 미달 보전금’도 못 받는다”라며 “1년 차부터 3년 차까지의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입사자가 아닌 2, 3년 차 노동자의 경우 기본급과 ‘월 최저임금’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보전금도 그만큼 감소한다. 바뀐 최저임금법은 이렇게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직격탄이 된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공무직 14만여 명 중 이번 산입범위 개악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비율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 될 것이라 파악하고 있다.
#경기 안산지역 제조노동자 B씨의 2018년 5월 급여명세서
B씨의 2019년도 예상 급여명세서
역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기본급을 받고 있는 노동자 B씨의 급여명세서다. B씨의 경우 상여금의 600%를 격월로 지급받고 있다. B씨는 내년 상여금을 월 단위로 받게 되는데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라 다시 계산된 그의 상여금은 45만7710원이다. 현행대로라면 91만5420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기본급의 25%가 최저임금으로 산입되기 때문에 무려 상여금의 절반이 깎일 수 있다. 물론 기본급이나, 상여금을어느수준으로조정할지는노사간에다시정할수있는 문제지만 이 금액을 깎아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대로라면 B씨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든 급여를 가져간다.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으로 상여금을 월할 단위로 쪼개는 것도 사업주의 재량이 됐다. 개정안 제6조의2(최저임금 산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의 특례)는 ‘1개월을 초과하는 주기로 지급하는 임금을 총액의 변동 없이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는 경우’ 노동자 동의 없이 단순 의견 청취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민주노총은 “근로자의 단체교섭과 노사자치원칙을 침해했다”라며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 없이 단지 의견만 청취하고도 일방적으로 임금 구조를 개편하도록 함으로써 근로자의 단체교섭과 노사자치원칙, 직장 내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권리 침해 내용들을 근거로 지난 6월 19일 최저임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이주노동자 C씨의 2018년 2월 급여명세서
이주노동자 C씨의 급여명세서다. 이주노동자 임금의 경우 올해부터 숙식비가 대폭 공제되고 상여금이 없어지는 등 임금 개악의 전면에 서 있다. 이 급여명세서는 이미 임금에 있어서 불이익한 부분들이 적용돼있다.
C씨의 급여명세서엔 몇 가지 누락된 부분이 있다. 바로 숙박비 부분인데 지난해까지 회사는 C씨에게 사업장 밖의 방을 얻어주고 ‘기숙사비’ 명목으로 10만 원씩 공제했다. 그러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올해부터는기숙사비를포함해전기,가스비등을모두노동자 부담으로 전환해 24만 원을 공제하기 시작했는데 급여내역엔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정부로, 지난해 2월 숙식비용 징수지침을 만들어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도 숙박비다. 숙박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한 것인데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기숙사를 이용하는 한국 노동자들에게까지 해당하는 부분이다. 민주노총은 “숙식비의 경우 현물로 제공해놓고 공제해가는 방식을 택했던 사업주들이 이제는 현금 명목으로 산입하면서 임금 총액은 유지하는, 그러면서최저임금인상은피해가는선택을할수있다.기본급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면서 나머지는 숙식비로 채우는 최저임금 인상 회피의 전형적인 꼼수, 숙식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에 걸리지만 않게 숙식비를 산정하면서 별도의 숙식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위의 급여명세서는 지난해와 또 다른 큰 차이가 있다. C씨가 지난해까지 생산장려금 명목으로 받은 상여금 200%가 사라진 것이다. 몇몇 제조업 사업장들을 제외하면 상여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극히 드물다. C씨의 경우 희귀하게 받아온 사례에 속했지만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자 사업주는 상여금부터 없앴다. 이처럼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용자로 하여금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민주노총은 “사업주들은 월 상여금의 25% 초과분, 복리후생비 7% 초과분에서 결국 전부가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개악된 최저임금법과 현행 숙식비 공제지침(월 통상임금의 8~20%)과 비교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할 수 있다. 숙식비 지침을 별로 신경 안 쓰던 사업장에서 개악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맥도날드 라이더 D씨의 2018년 5월 급여명세서
위의 급여내역처럼 알바노동자의 경우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에겐 임금구조상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의 산입 여부보다 최저임금 인상률 자체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알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식대와 숙박비에 대해 보장해주기보다 꼼수로 인한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는 최저임금 개정안이 6월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음식점에서는 알바노동자들에게 관례적으로 식비를 대신해 제품을 지급하였으나, 이제는 최저임금에 식비가 계산돼 있다는 꼼수를 사용해 식비를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위의 임금명세서의 주인공 D씨는 맥도날드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배달일을하고있다.주휴,연차,야간 등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모든 수당등을더한 그의 임금은 월106시간 일했을 때 103만 원 정도다. 라이더의 경우 건당 400원의 배달 수당을 별도로 지급받는다. 맥도날드 알바노동자의 경우 따로 식대는 없지만 현물로 햄버거를 지급받는다. 직급에 따라 선택 가능한 햄버거 종류도 다르다. D씨는 “글로벌 기업 같은 맥도날드는 이미지가 있어서 당장은 알 수 없지만 2024년 조건 조항이 없어질 땐 알바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맥도날드가 정책을 바꾸어 햄버거 대신 6,000원을 식대로 지급하기로 하고, 이 6,000원을 최저임금에 산입해 버리면, 그나마 식사처럼 먹던 햄버거도 사라질 수 있다. 만약 시간당 임금이 1만 원이고 6시간 일하기로 했다면 하루 일당으로 6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일당 5만4000원+식대 6,000원으로 줘도 상관없는 것이다. ‘너머’에서 활동하는 김준호 씨는 “편의점이라든가 식당 같은 원래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곳에서 일하는 알바 노동자들은 당장 더 힘들어질 수 있다”라며 “체불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온갖 변명을 하는 사업주들이 댈 수 있는 핑계가 더 생긴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