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을 향한 비난이 터져 나온다. 민주노총이 청와대 간담회에 불참하며 비난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주적’이 됐다. 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정부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복귀 요구를 거부하자, 민주노총은 ‘노동 적폐’로 낙인찍혔다.
친노동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의 행보에 왜 ‘딴죽’을 거냐는 거다. 한때 민중총궐기와 촛불광장에서 기세 좋게 펄럭이던 민주노총의 깃발은 잊혀진지 오래다. 도대체 어떠한 연유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대중으로부터 욕을 한바가지 먹으면서까지 ‘제 갈 길’을 가는 걸까. 과연 다수 대중들이 민주노총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누군가에게는 ‘친노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노동’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과, 민주노총의 ‘친노동’은 수준과 방향성에 있어 꽤 간극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주력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민주노총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해 왔다. 소위 진보진영 내부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가장 타협적인 목소리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진보진영 내부의 가장 타협적인 목소리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문 대통령이 국정 제1과제로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이에 따른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해결 과정은 이 같은 간극을 꽤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깜짝 방문한 뒤 6개월이 흐른 지금. 정부의 대책은 비정규직 철폐도, 하다못해 ‘차별 철폐’에도 근접하지 못했다. 11월 15일,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은 인천공항공사의 연구 용역을 받아 ‘인천국제공항공사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 및 실행방안 수립 용역 중간보고서 설명 자료 ‘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대상자 중 854명(9%)만 생명·안전 밀접 업무로 판단해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8,984명은 별도 독립법인(자회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공사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닌 이상,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간접고용 신분. 심지어 공사 정규직과의 임금차별까지 그대로이다. 그저 소폭의 ‘근로조건 개선’인 셈이다. 당연히 노동계에서 이를 ‘정규직 전환’으로 받아들이기는 만무하다.
용역 보고서에서는 성공적인 자회사 모델로 ㈜부산항보안공사(부산항만공사 자회사)를 꼽는다. 하지만 이를 ‘성공 모델’로 내세우는 것 역시 민망한 구석이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부산항보안공사 직원 370명 중 19%(70명)가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은 21명, 기간제는 49명이 존재한다. 공사는 신입사원을 기간제로 채용하고, 1년 뒤 시험 성적에 따라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으로 분리한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동일한 업무를 한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의 연 기본급은 1951만 원, 정규직 연 기본급은 3,140만 원이다.
게다가 문재인 표 ‘정규직화’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점점 미약해져만 갔다. 지난 9월 정부는 꽤 오래 논란이 됐던 기간제 교원, 영어회화 전문강사, 초등스포츠강사 등 비정규직 교사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또한 끝이 아니다. 심지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예산이 부담된다며 내년도 월 임금산정 시간을 243시간에서 209시간으로 줄였다.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꼼수’였다.
대화의 기술
‘민주노총’의 이미지는 아직도 ‘강경 투쟁’이나 무장 투쟁에 가까운 ‘폭력 집회’ 머물러 있는 듯하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보수정권의 지칠 줄 모르는 선전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 얼마나 온건해져 왔는지, 내부에서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민주노총이 얼마나 대중의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역시.
대부분 언론에서는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의 대화 요구를 가차 없이 걷어차 버린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사실 이 또한 어폐가 있다. 민주노총은 줄곧 문재인 정부에(심지어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대화를 요구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놓고 어떠한 대화를 할 것이냐’는 거다. 친목모임이 아닌 이상에야, 노동계와 정부가 만나서 해야 할 일은 정책적 ‘협상’이다. 협상이란 자고로 각 이해집단이 상호 만족할만한 수준의 결과를 도출하는 행위다. 상호 만족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것은 평등한 테이블이다. 사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 초임 직후부터 ‘노정 대화’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며 사실상 ‘거부’한 쪽은 오히려 정부다. 대신 정부는 민주노총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노사정위’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정리해고제, 파견제 등의 악법을 탄생시켰으며, 절대적으로 노동계에 불리한 합의테이블에 민주노총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가긴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둔 현재, 민주노총 내부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사회적 대화‘다. 심지어 선거에 출마한 4개의 후보조 중, 3곳이 노사정 대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각 후보들의 차이점은 ’대화 형식‘에서 드러난다. 우선 기호 3번 윤해모 후보조는 가장 선명하고 심플하다. 그냥 정부가 요구하는 노사정위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는 ’신8인회의‘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 2명, 사용자 측 2명, 정부 인사 2명, 대통령, 국회 대표자로 구성된 테이블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현 노사정위에 국회 대표자를 추가하자는 거다. 기호 4번 조상수 후보조의 대화법은 가장 복잡하다. 우선적으로 사안별 노사정 대화를 개시하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논의한다는 것과 산별교섭과 노정교섭을 정례화 하겠다는 공약이다.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의 공약도 비교적 선명하다. 이제까지 민주노총이 요구해 온 ‘노정교섭’ 테이블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또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형식들이다. 앞서 지난 2014년에는 ‘신8인회의’와 비슷한 형식으로 국회 산하에 노사정소위(노+사+정+국회)가 가동한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은 내부 논의 끝에 불참을 선언했다. 노사정위처럼 ‘다수의견’ 혹은 ‘검토의견’과 같은 결정 방식으로는 민주노총의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합의되지 않은 쟁점을 노사정위에 이관하는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노사정소위가 시급한 현안 문제 대다수를 노사정소위에 이관하려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실제로 노사정소위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탈법에 면죄부를 주며 활동을 마감했다.
2003년에는 철도 민영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 철도청(현 철도공사) 3자가 수용한 합의가 타결된 바 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공식, 비공식 대화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합의를 깨고 철도 민영화의 기본 공사인 철도 상하분리를 입법화했다. 2015년에는 사회적 쟁점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 관련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결과는 공무원 연금 삭감안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리기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안’에 대한 패키지 합의였다. 결국 현재 남은 것은 공무원 연금 삭감안이오, 사라진 것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위한 사회적 기구였다. 사실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흔치 않다. 문제는 무엇에 관한 어떤 요구안을 놓고, 얼마나 동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느냐는 거다. 하지만 현재 후보자들이 내놓은 대화 기법은 ‘형식’만 있을 뿐, 어떠한 쟁점을, 어떠한 요구 조건으로 협상할 것인지에 대한 알맹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 민주노총은 어디로
민주노총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는 ‘대공장, 정규직, 남성, 고연봉, 아저씨’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일종의 ‘정규직 중년 아저씨’ 정도의 이미지랄까. 특정 연령, 성별, 직군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사실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이 같은 이미지는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00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의 평균 연령은 34.8세였다. 10년 뒤인 2010년에는 평균 연령이 41.4세로 훌쩍 뛰었다. 그리고 올해 조합원 평균 연령은 약 45세다. 17년 새에 평균 연령이 10세가 늘었다. 17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는 금속노조는 43~46세가 79.4%로 압도적이다.
고용 형태에 있어서는 80만 명의 조합원 중 비정규직은 약 20만 명 가량이다. 노동자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 시대에, 너무 야박한 수치다. 여성 조합원의 규모는 지난해 약 18만 명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여성 노동자 조직률은 8% 정도로 남성 노동자 조직률 15.7%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여성 비율은 남성의 절반 수준을 따라가기도 벅차 보인다.
민주노총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조직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 숱한 계획도 세워왔다. 민주노총은 2005년과 2009년에 걸쳐 1, 2차 전략조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에는 200억 원 기금 조성을 통한 전 조직적 조직화라는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자발성에 기초한 200억 기금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민주노총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업 예산의 30%를 미조직·비정규사업비로 책정해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노조하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올해 상반기 ‘만원행동’으로 움직였던 연대체가 하반기 노조 가입 투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이후, 이들의 활동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민주노총 관계자 A씨는 “운동본부에서 계획한 구체적인 조직화 방식은 없다”며 “노조법 개정을 선전하고, 투쟁하는 사업장을 지원하는 정도다. 일단 내달 중순까지는 운영하는데, 집행부가 바뀐 뒤에도 지속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새 지도부 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노총 조직화의 미래는 어떠할까.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의 조직화 공약은 △전 조직적인 전략적 집중 조직화 사업 △노조하기 좋은 나라, 노동조합 만들기 범국민 운동 정도로 뭉뚱그려져 있다. 러닝메이트인 백석근 사무총장 후보는 11월 20일 유세현장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민주노총 예산의 30%를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민주노총은 3기 전략조직화 기금 실패로 예산 30%를 조직화에 배정해오고 있다.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는, 미조직 조직화 사업에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 민주노총 핵심 사업으로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할 법한 원론적인 내용이다. 기호 3번 윤해모 후보조는 아예 정책 자료집에서 미조직 비정규 대책이 빠져 있다. 기호4번 조상수 후보조는 전략조직화센터 ‘2020위원회(2020년까지 조합원 200만 명 조직)’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일종의 조직 전문가와 홍보집단을 양성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왠지 낯설지가 않다. 민주노총은 이미 2005년부터 되던 안 되던 조직활동가 양성 체계를 구축해 왔다. 올 하반기에는 조직활동가 양성을 위한 시범학교를 계획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 B씨는 “지금껏 민주노총 조직 사업은 기금 모금, 조직 전문가 채용이 전부였다”며 “비슷한 방식으로 10년을 넘게 이야기해 왔다. 이제는 담당 부서가 아닌, 전 인력이 조직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기금 조성, 활동가 양성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직접 현장 조합원들이 동료, 친구, 미조직노동자를 만나 조직을 유도하는 현장 밀착형 조직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