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규직화가 비정규직 해고 사태로 번지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째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가하면, 계약 만료로 해고되는 일도 다반사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꼼수도 횡행한다. 과연 문재인 정부조차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째 번식하는 비정규직의 망령을 몰아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그 역시 그저 방기하고 있는 걸까. 일자리 상황판을 가리키며 ‘성과와 실적 ‘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의 정규직화 정책은 역대 정부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을까.
과거 정부의 정규직 전환, 무엇이 똑같을까
노무현 정부는 2004년 5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을 발표하며 정규직화와 공무원 증원 계획을 밝혔다. 상시적 일자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을 ‘상용직화(정규직화) ‘하겠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23만4천 명(노동부, 2003) 중 위탁집배원, 학교 영양사·사서 등 약 5천 명을 공무원 증원 계획에 포함했다. 또 지방자치단체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 노동부 직업상담원 등 약 2만7천 명은 상용직화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통해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내놨다. 2018년에 9,475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겠다는 계획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과 유사하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의 가장 큰 논란은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의 졸속 심의와 상시업무 기준에 대한 협소한 판단인데 이 또한 노무현 시절과 비슷하다.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도 정규직 전환 심의 절차, 상시업무 기준이 미비한 게 문제였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Q&A에 따르면 “상시업무를 사전적으로 정하지 않고 사후적으로 판단”한다며 전환 평가 절차에 자율적인 해석의 여지를 두었다. 하지만 평가 절차에는 9가지 전환 대상 예외 사유를 제시했는데, 이는 정규직 전환 제외에 면죄부로 활용돼 오히려 비정규직 사용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놨다. 당시 정부는 2009년 3월 ‘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을 발표하며 정규직 전환 시 사업주가 부담하는 4대 보험료를 2년간 50% 감면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위원회가 ‘5년 로드맵’에서 밝힌 “일자리 우수기업에 대해 정부의 세제·금융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과 유사한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13~15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계획’을 공개하고 상시·지속 업무 비정규직 65,711명을 ‘공정한 평가’를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공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종합대책은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보지 않았고, 그래서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더 열악한 간접고용으로 내몰았다. 한편 공공기관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해고하며 비정규직 감축을 이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정부와 싸우기도 벅찬데, 정규직은 어찌하란 말이오
역대 정부 모두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은 그대로 둔 채, 일부 비정규직만을 선별해 무기계약직화 하는 ‘재탕’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노동자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됐고, 노노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정규직을 상대로는 ‘양보론’을, 비정규직을 상대로는 ‘공정한 경쟁 절차’를 강조하면서 노노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오순옥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이 눈물을 쏟은 것도 그 탓이다.
그는 “11월 23일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공청회에서 정규직은 단 한 사람의 비정규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공청회장은 마치 조선시대 때 양반과 쌍놈을 가르는듯한 분위기였다”며 울먹였다. 노·사·전문가협의회 구성 단계 때부터 한국노총은 입장을 달리했고, 협의체 구성은 한 달이나 걸렸다.
민주노총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비정규직 노조, 한국노총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는 정규직 노조다. 이전 정권에서는 정규직이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무임승차 웬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규직화 반대 투쟁에까지 직접 나서고 있다. 신철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은 임금과 처우에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20년간 정규직, 비정규직의 신분 계급 사회 단면을 문재인 정부가 드러냈다고 본다. 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는데, 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에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다. 언젠가 겪을 노노갈등이 터졌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연구용역을 수행했던 황선웅 교수에 따르면, 인천공항 연 매출은 2조 원, 영업이익은 1조 3천억 원이다. 현재 공사의 인건비는 4천억 원에 불과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직접 고용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456억~1,096억 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사전협의회는 노노갈등을 핑계로 자회사안(정규직 전환율 약 20%)과 보안방재 공사안(정규직 전환율 약 52%)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노갈등 속, 사라진 정부 책임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노조 집계에 따르면 ‘교사 및 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초등스포츠강사 등 약 7만 명을 통째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가 사실상 정규 교원,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반대 여론에 밀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교육 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대책이 발표된 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반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움직이던 반대 여론은 현장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한국교총은 지난 8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10만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지 않으면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민숙 전교조 교육선전실장은 “일부 간부들은 전교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찬성하면 조합원이 1만에서 2만 명이나 줄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 반대 입장을 압박했다”면서 “지난 6월 30일 학교 비정규직이 전면에 나섰던 사회적 총파업에 전교조가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자, 조합 탈퇴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 노노갈등은 첨예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전만 하면서, 노노갈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공무직법’ 철회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조직된 정규직화 반대 여론에 무너졌다. 2017년 12월 교육부의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율은 2%, 교육청은 10% 안팎이다. 학교 비정규직 당사자였던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또 다시 좌절했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사실상 ‘정규직 전환제로’였다”며 “정부는 현장 갈등만 일으키고 뒤로 숨었고, 교육 분야 정규직 전환 반대 여론에 올라탄 상황이다.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었다면 사용자로서 직접 노조와 교섭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박혜성 대표 역시 “학교 현장의 노노갈등은 정부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간제교사에 대한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반대는 정부의 잘못된 교원수급 정책 탓인데, 교육부가 직접 ‘교사는 청년 선호 일자리라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했다’고 말한 것이 노노갈등을 부추겼다”고 전했다.
민간부문도 노노갈등 움직임 공공부문 양상 따라가
한국지엠에서는 12월 8일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인소싱(비정규직 담당 업무를 정규직 공정으로 이전)’에 합의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지엠은 연말이면 계약 만료에 따른 비정규직 해고 문제가 잇따랐지만, 노조가 비정규직 해고에 합의한 적은 없었다.
회사는 노사합의라는 명분을 얻어, 글로벌지엠의 한국 물량 축소에 따른 인원 감축의 초석도 마련했다. 또 한국지엠은 불법파견 문제에서 자회사 설립이라는 ‘꼼수’ 정규직화를 시도하기도 용이해졌다. 노노갈등이 회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진환 사무장은 “2018년 2월 예정된 불법파견 소송에서 한국지엠이 패소하면 당장 정규직 전환에 나서야 하는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양상에 따라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커졌다”며 “인천공항과 마찬가지로 자회사 고용, 신규채용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부문에서 이뤄진 정규직화가 민간부문에선 ‘최대치’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노노갈등은 이런 정규직화 꼼수에 힘을 싣고 있다 “고 전했다.
SK브로드밴드는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 설립으로 노노갈등을 야기했다. 2016년 12월 SK브로드밴드의 불법 개인 도급이 드러나자, 회사는 2017년 3월 전원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는 노동자 약 5천 명 중 4,600명만 자회사로 고용했다. 노동자의 의견은 자회사 전환-미전환으로 엇갈렸다. 그렇다고 자회사로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하청에서 받았던 각종 수당이 사라져 임금이 하락했다. 자회사가 도입한 새로운 평가제와 실적 강요도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노동자간 갈등 없이 정규직 전환을 이룬 사례도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 약 1800명 대부분은 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조합원은 약 150명이다. 지난 12월 정규직 조합원들은 인력 충원과 정규직 전환 등을 내걸고 두 차례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지난 13일 서울대병원 본원 비정규직 581명 정규직 전환과, 지난 28일 서울대보라매병원 91명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