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3일 저녁. 알 수 없는 사람이 황 씨의 집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라고 물어봐야 하나, 인기척을 숨겨야 하나 판단이 서질 않는다. 불과 몇 시간 전 검찰이 학교에서 황 씨를 찾아다닌 터였다. 검찰을 따돌리고 다행히 집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불안감이 다시 엄습했다. 이들이 영장을 손에 쥔 채 문을 부수고 들어오진 않을까. 두려움이 극에 달한 순간 문밖에서 택배라는 소리가 들린다.
#1 대학에 들이닥친 DNA 채취자
그에게 두려움을 심은 건 검찰의 DNA 채취다. 한신대학교 학생들은 학내민주화 투쟁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검찰이 이를 이유로 학생 5명에게 DNA를 요구했다. 배경은 이렇다. 한신대 학생들은 학생총회를 통해 ‘민주적 총장 선출을 위한 결의안’ 을 통과시켰다.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 의견이 묵살되는 비민주적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31일 학생들은 이사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학생 요구안을 받으라고 했다. 이사회는 “학생이 관여할 이유가 없다” 며 거부했고 다음 날까지 긴 대치가 이어졌다. 분노한 학생 100여 명이 몰려왔다. 이후 이사회가 학생들을 특수감금과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지난 7월 20일 학생 1명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2명은 벌금 200만 원, 나머지 2명은 100만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형이 확정된 지 3주 후. 8월 13일 검찰은 학생 5명에게 DNA 시료 채취 대상자라며 수원지방검찰청에 출석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DNA 채취는 재범의 우려가 높은 살인, 강간 등 ‘중대범죄자’를 대상으로 한다. 검찰이 학내민주화를 위해 싸운 학생들을 ‘흉악범’으로 취급한 것이다. 영문을 모르던 학생들은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검찰은 “‘특수’ 자가 붙은 범죄는 DNA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학생들은 황당해했고 인권 침해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검찰은 “이렇게 거부하면 영장을 받고 강제 집행하는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8월 23일 오전. 검찰 DNA 시료 채취 집행관은 학생 김진모 씨에게 전화해 “DNA 채취 영장을 받았다” 며 “우리가 갈지, 학생들이 올지 정하라” 고 엄포를 놨다. 학생들은 10일 동안 DNA법의 정체를 파악했다. 위헌 소지,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했다. 변호사, 시민단체를 통해서도 채취를 거부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김 씨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집행관에게 따졌다. 갑자기 집행관이 태도를 바꿨다. 집행관은 “우리도 학생 때 운동했다. 학생들 심경 이해한다. 그런데 영장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며 회유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더 대응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집행관들이 학교로 들이닥쳤다. 집행관은 김 씨에게 “한신대 경상관 앞에 있으니 나오라” 고 했다. 김 씨를 제외한 학생 4명은 모두 집행관 전화를 받지 않고 학교를 벗어났다. 김 씨만 학교 안에 숨었다. 김 씨는 집행관에게 “우리는 학교에 없다” 며 “있어도 채취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집행관은 “언제 오는지 알려 달라.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고 대답했다. 협박이었다. 이후 집행관은 김 씨에게 20~30분 간격으로 오후 6시까지 전화를 계속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집행관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다. 그날 검찰 차량으로 보이는 검은색 밴이 언제 떠날지만 숨죽여 지켜봤다. 해 질 무렵, 차량이 떠난 뒤에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이날부턴 학교를 오갈 때마다 겁이 나더라고요. 다섯 명 모두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이에요. 집에서도 누가 노크를 하면 덜컥 겁부터 나요. 검찰이 처음부터 세게 나올 거라고 변호사도 예상하지는 못했거든요. 그런데 강제집행한다고 학교를 찾아오니까 더 놀란 거죠. 인신에 대한 강제집행이잖아요. DNA 채취는 흉악 범죄자 대상으로 한다고 해요. 학내 민주화 투쟁이 그렇게 흉악한 건가요?” (김진모 한신대 학생)
검찰이 수형인과 구속피의자를 대상으로 DNA 시료 채취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취 요구서를 통해 기본적으로 대상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상자가 거부할 경우 강제로 채취할 수 없으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가 드물고 방화, 살인, 상해, 감금, 협박 등의 대상 범위가 넓어 악용 사례가 많다.
#2 우리 집 골목길에는
지난해 2월. DNA 채취 집행관 2명이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의 집을 서성인다. 동네 이웃은 이를 수상하게 쳐다본다. 당시 최 씨는 집에 없었다. 최 씨의 아내가 집에 들어서려 하자 집행관이 다가선다. “최인기 씨가 DNA 채취 대상자인데 받으셔야 합니다.” 아내는 불쾌했다. 집행관에게 화를 내며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집행관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최 씨 집을 찾아왔다. 검찰이 DNA 채취를 위해 사인의 집 근처에서 상주한 셈이다.
민주노련은 2013년 구로구 마리오아울렛의 노점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매장 내에서 구호를 잠깐 외치고, 지하철역까지 연결된 통로를 지났다. 최 씨는 민주노련 회원들과 함께 위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결국 2017년 1월 집단흉기주거침입이라는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한 달 뒤 최 씨에게 DNA 채취에 응하라고 우편과 전화로 통보했다. 최 씨는 곧바로 거부했다. 집행관은 채취를 거부하면 나중에 출국할 때 불이익을 받는다고 겁박했다. 최 씨에게 매주 전화로 DNA 채취가 별거 아니라며 설득하려고도 했다.
집행관은 같은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영찬 민주노련 위원장의 집에도 찾아왔다. 다행히 최 씨가 집에 없던 때였다. 집행관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영장 받기 전이라도 DNA 채취를 할 수 있으니 협조하라” 고 했다. 집까지 찾아오다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2017년 3월 최영찬 위원장과 최인기 수석부위원장은 다른 집시법 위반 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동작경찰서에 갔다. 그런데 경찰서에 DNA 채취 집행관 3명이 와 있었다. 경찰관들은 “우리도 모르는데 남부지검에서 DNA 채취 건으로 왔다”라고 말했다. 검찰측에서 어떻게 알고 미리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민주노련 간부들은 영장을 들고 온 그들에게 혀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집행관들은 종이로 된 깔때기로 혀를 긁고 플라스틱 통에 담아갔다.
“DNA 채취를 해갈 땐 기분이 정말 더러웠습니다. 쪽팔리기도 하고요. 집까지 찾아와서 골목길에 상주하는데 이웃이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저 가족 수상해’‘대체 뭐 하는 부부야’라는 낙인이 찍히죠. DNA 채취는 조두순 사건으로 출발했지 않습니까. 강간, 살인 같은 흉악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인데, 일반 시민, 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적용하다니요. 흉악범죄도 아닌 개인의 민감한 신체 정보를 국가가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 분합니다.” (최인기 수석부위원장)
#3 노조를 향한 집단 채취
2015년 4월.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 조합원 48명은 김천지방검찰청으로부터 DNA 채취에 응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2010년 공장을 점거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KEC는 노무법인 조인스를 통해 악랄한 노조파괴를 자행했다. 회사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직장폐쇄, 용역 투입, 어용노조 설립,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임단협 교섭을 요구하며 직장폐쇄된 공장에 들어섰다. 조합원들은 생존권을 부르짖었지만, 국가는 공동주거침입죄로 88명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회가 파악한 DNA 채취 대상자 48명 중 23명은 여성이었다. 공장 점거 당시 대부분 평조합원이었다. 파업 참여자, 전체를 노린 DNA 채취였다. 2015년 4월 15일 DNA 채취 1차 안내문이 왔고, 9월 9일 2차 안내문이 왔다.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검찰은 2차 요청까지 거부하면 영장을 발부하겠다고 압박했다. 잘못하면 체포된다는 소문도 돌았다. 공포를 느낀 조합원들은 결국 채취에 응하기로 했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DNA 시료 채취가 진행됐다. 대량 채취였기 때문에 집행관이 직접 노조 사무실로 왔다. 집행관은 조합원들을 휴게실에 기다리게 하고, 한 명씩 회의실로 불렀다. 집행관은 신원을 확인한 뒤 입안에 면봉을 넣고 혀를 긁었다. 한 여성 조합원은 DNA 채취를 당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어떤 여성 조합원이 수치스럽다며 울었어요. 우리는 단지 공장 안에서 살자고, 생존권 지키자고 회사에 교섭을 요구했던 것뿐인데. 분노, 억울함, 부끄러움 온갖 감정이 들더라고요. 특히나 여성이잖아요. 국가가 이젠 나의 생체 정보까지 모든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이미옥 금속노조 KEC지회 수석부지회장)
#4 DNA로 ‘업그레이드’ 한 노조파괴와 국가폭력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해고자 복직, 불법파견을 요구하면서 한국지엠 부평공장 아치 위에 올랐어요. 이때 사측이 낫을 들고 나타났거든요. 노동자들은 깃발과 플라스틱 봉으로 대응했죠. 그런데 우리에게 ‘집단흉기상해’ 라는 죄목을 걸더라고요. 2011년 대법원 유죄 판결 뒤 검찰이 1년에 한두 차례씩 DNA 채취에 응하라고 등기우편을 보냈어요. 거부하니까 영장 발부해서 강제로 하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 과거 독재정권에서 고문은 자백보다 굴복과 인격을 말살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잖아요. DNA 채취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쫓아가 다시는 노동운동을 못 하게 하려는 ‘신종 노조파괴’ 방법입니다.”
(신현창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
“2012년 겨울이었는데 교도관 3명이 저를 조그만 의무실 쪽방에 집어넣었어요. DNA 채취 거부하니까 열흘 만에 영장 들고 온 거예요. 건장한 남자 3명이 강압적으로 나오는데 어떡합니까. 또 DNA 채취는 머리카락으로도 할 수 있는데 입을 벌리라고 하더라고요. 기분 더러워 죽는 줄 알았죠. 용산참사로 그렇게 간 사람도 있는데, 지금까지 흉악범 취급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주거 문제로 정당하게 투쟁했던 것뿐인데….”
(천주석 용산참사 구속철거민)
“2013년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울산으로 희망버스가 출발했는데, 현장에서 몸싸움이 일어났어요. 저는 이일 때문에 지난해 5월 특수공무집행방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고요. 형이 떨어지니까 바로 DNA 채취 요구서가 왔어요. 지난해에도 오고, 올해 7월에도 왔습니다. DNA 채취는 성범죄 같은 중대 범죄자를 상대로 하는 건데, 희망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이걸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검찰이 노동운동에 시민이 연대하는 길을 막겠다는 뜻이고,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두찬 문화연대 활동가, 희망버스 참여자)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7명이 DNA 채취 요구를 받았어요. 2013년 노조파괴로 사측하고 충돌이 잦았는데, 검찰에서 우리들은 (집행유예 기간 중) 동종범죄 우려가 있으니 DNA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문제를 일으킨 건 사측이고 회장이 실형까지 살았는데, 마찰이 잦았다는 이유로 DNA를 채취한다고 하니…. 우리가 계속 거부하니까 한두 달 사이에 영장 받고 또 연락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용노조 조합원 5명 DNA도 이미 채취했으니 우리도 꼭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기분이 엄청 나쁘더라고요.”
(이만희 유성기업아산지회 조합원)
<워커스>가 만난 DNA 채취 피해자다. 이외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생탁 막걸리 등 다양한 투쟁 현장에 참여한 노동자와 시민들이 DNA 채취를 당하거나 요구받았다.
DNA법 헌법불합치…‘빅브라더’ 는 여전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30일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제8조는 영장 발부와 집행에 관한 조항이다. 헌재는 DNA 채취 대상자가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제한받는데, 영장 발부 과정에서 불복할 기회가 없다고 봤다. 따라서 8조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고 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헌재 판결에 따라 국회는 2019년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헌재 판결로 채취당사자 재판청구권은 인정됐으나 아직 DNA 정보의 삭제, 보존 기간 제한, 데이터베이스 통제, 재범 우려 판단 기준 등 문제가 남아 있다. 이미루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헌재 판결은 다행스러운 결과이지만 국가기관의 영장 남발로 인해 채취된 DNA 정보의 삭제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며 “국가는 채취한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쌓아놓고 당사자가 죽을 때까지 관리한다. 정보 보존에 기한도 없다. DNA법 취지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에 대응하자는 건데, 지금껏 부당하게 채취된 개인정보는 그대로 쌓여있다. 인권침해를 당하며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빼앗긴 사람은 평생 국가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된 셈” 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DNA 데이터베이스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수사기관은 그동안 수사 편의성만을 주장하며 마구잡이로 DNA를 채취해 왔다. 중대 범죄를 예방한다는 DNA법에 적용되는 죄목은 살인, 강간, 폭행 등 다양하다. 재범 우려 정도를 차치하고 DNA법 적용 항목에 해당하면 채취당하기 매우 쉽다. 이미루 활동가는 “집행유예라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DNA 채취 대상에 오르는데 특히 활동가들은 집회나 농성 때문에 쉽게 채취 대상이 될 수 있다” 며 “국가기관이 사회운동을 통제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며, 이는 DNA법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 관리위원회’ 가 발간한 데이터베이스 연례 운영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까지 DNA 감식시료가 채취된 사람은 207,033명에 달한다. 영장 청구도 1천 건을 넘는다. 데이터베이스는 지금도 확대되고 있다. 죽어야만 사라지는 DNA 정보. DNA법 악용에 희생된 노동자와 시민들은 국가라는 ‘빅브라더’ 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