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록(객원기자)
지난해 9월부터 울산의 온산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석유화학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다. 흔히 ‘플랜트 건설 노동’이라고 하는데 기계, 제관, 배관, 용접, 전기 등을 통해 석유화학, 발전, 정유 등의 공장 시설을 건설하거나 설치하는 일이다.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0과 5.8 지진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저녁 7시 44분 1차 지진, 8시 33분 2차 지진이 발생했다. 울산시내 모든 곳에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담벼락이 무너지거나 유리창이 깨지고, 천장재가 떨어지거나 조명등이 파손되고, 승강기 고장 등 교육기관에서만 88곳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현장에서 이야기꺼리는 단연 지진이었다. 여진이 계속 이어져 며칠째 사람들은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피난 배낭을 챙겨 현관문 앞에 놓아두고, 청바지를 입은 채 잠을 잔다고도 했다. 지진과 핵발전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갈렸다. 하나는 “위험한데 저 핵발전소를 우야노”라며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 또 한 부류는 “터지면 다 죽는 거지 뭐. 방법이 있나”라며 어쩔 수 없다는 사람들이다.
나는 탈핵활동을 해오던 터라 울산에 신규로 건설 중인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를 의도적으로 언급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핵발전소 반대에 나서자고도 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안되지. 그게 우리 밥줄인데.”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를 건설하게 되면 플랜트 건설노동자 수천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몇 년은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핵발전소 짓는 일은 우리 세대와 미래세대에게도 핵폭탄을 안고 살아가라는 말과 같다고 강변했다. 같은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내가 일 안 한다고 뭐가 바뀌나’ 정도로 받아넘겼다.
그들의 경제논리
한국수력원자력과 울주군 등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건설 찬성론자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주장한다. 그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총 8조6천억원 규모의 대형 건설 사업이며, 600여 개 업체가 참여하고, 주설비 공사에 투입되는 연인원 320만 명의 임금이 지역에서 소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업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인력이 대거 투입될 수 있다고도 귀띔한다.
울산에는 울산시청 반경 30km 이내에 고리와 신고리, 월성과 신월성 등 총 14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또 2개(미포, 온산)의 국가산업단지가 있는데 유독물과 화학물질 취급량이 각각 전국 유통량의 30%를 넘는다.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은 470개, 위험물 취급 사업장은 5,500개에 달한다.
울산시, 울산시의회, 환경단체 등이 최근 2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울산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한 결과 시민 약 70%는 핵발전소 건설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이들은 ‘핵발전소 때문에 불안하다’, ‘탈원전 정책이 필요하다’, ‘핵발전소로 인해 안전에 위협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핵발전소에 비해 지나치게 인구가 밀집돼 있고, 좁은 땅이라서 영광, 울진, 경주, 부산과 울산의 핵발전소 사고는 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핵발전소로 불안하다는 70%는 무얼 하고 있나
핵발전소에서 일하든 석유화학업체에서 일하든,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모두가 ‘내가 생산하는 노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해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 나눈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탈핵에 동의하면서도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플랜트 건설 노동자 가운데 반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어떤 이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핵발전소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은 에너지를 핵발전소 대신 풍력이나 수력으로 대체해도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아직 담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방사능 피폭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수많은 발전노동자와 플랜트건설 노동자, 그의 가족들은 ‘생계 수단’으로써 불안한 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폐로비용과 핵폐기물 처리비용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전기인데도 “싸고 경제적”이라는 핵발전론자들의 논리가 여과 없이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에 반해 한국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은 위험하거나 정의롭지 않은 노동과 소비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오류나 책임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기획하는 일에 집중했으면 한다. 핵에너지를 거부하고,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전기를 자가발전하고, 적어도 인류와 생명이 핵발전 노동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는 고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벌써 오래전부터 ‘적녹연대’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초록과 적색은 ‘연대’가 아니라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다. ‘내가 생산하는 노동’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곰곰이 생각하며 변화를 향한 첫발을 떼 보자.[워커스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