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미군기지가 확장될 무렵, 그 풍경들은 여전히 뇌리 속에 남아 있다. 대추리·도두리의 노을진 들녘, 달빛 아래 고개숙인 벼들. 불타는 논밭과 뜨거운 아스팔트 위 새까만 전투경찰들의 군홧발, 스크럼을 짠 방패들 그리고 그 위로 헬기들이 요란스럽게도 날아다녔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택으로 찾아와 함께 걷고, 함께 싸웠다. 대추분교가 부숴지고 마을 안의 집들이 무너지는 풍경들 또한 잊혀지지 않는데, 정작 마을주민들의 얼굴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군기지가 미군기지로, 그 미군기지가 다시 확장되는데는 그렇게 어지러운 풍경들이 있었다.
성주 소성리에 골프장이 들어서고 그 골프장이 다시 미군기지로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작은 마을의 풍경 또한 어지럽다. 줄지어 늘어선 경찰버스와 하루에도 수십번 오가는 헬기들이 주민들의 눈을 시끄럽게 한다. 몇 차례 국가권력의 ‘작전’이 펼쳐지고 우리의 일상이 힘겹게 유지되는 동안, 이들의 일상은 손쉽게 파괴되고 있다. 평화로운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땅 곳곳은 울음바다이다. 왜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들이 아파해야 할까. 이름없는 이들의 얼굴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워커스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