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 편집장
총선이 끝났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제1당의 교체, 영호남 지역 구도의 균열, 안정적 제3당의 출현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났다. 이 속에서 구도, 바람, 인물 등 기존 선거 룰을 모두 무너뜨리고 더민주당은 제1당이 됐다. 1여 다야의 구도, 호남에서 분 친노 심판 바람, 그 나물에 그 밥인 인물, 정당 지지율 3위로도 더민주당은 의문의 1승을 거뒀고, 새누리당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출구 조사가 발표되기 전까지 누구도 새누리당의 압승을 의심하지 않았던 터다. 게다가 야권 분열론을 딛고서 호남에서의 압승을 발판으로 38석을 거둔 국민의당까지 본다면 야권은 문자 그대로 ‘윈윈(win-win)’이다.
더민주당의 의문의 승리가 비단 미디어 선거의 여론 조사 오류 정도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더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할 이유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조건이었다. 여당 심판이나 정권 심판론 같은 바람이 거세게 분 것도 아니다. 그 바람만큼 친노 심판이라는 역풍도 크게 불었고,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국민의당 후보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더민주당이냐 물어보면, 연극에서 이야기 흐름과 상관없이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 나타나 결말을 짓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그저 ‘국민은 무서웠다’는 식으로 이유를 설명할 뿐이다. 의회의 원내 지형이 이렇게 바뀌고 있지만, 이 변화에 기대나 희망을 걸기도 어렵다. 새누리당의 참패가 보수의 패배로 등치되지 않고, 야권의 승리가 진보나 개혁의 승리로 보이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더민주당보다 정책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민주당은 총선 직전 필리버스터를 멈추고 <테러방지법>과 재벌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 지원을 약속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통과를 용인했다.
정책적으로도 미국 힐러리 후보 선거 정책을 그대로 베낀 듯한 포용적 성장론은 정부와 새누리당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 이미 포용적 성장론의핵심인소득주도성장과이익공유제등을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 민주화나 포용적 성장론은 진보적인 정책도 아니다. 또한 야권 분열론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3당 구도를 만들어 낸 국민의당과는 달리 더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에 목을 매면서 정체성 확보에 실패한 정의당도 이러한 정치의 우경화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총선의 의문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울산이다. 대구 무소속 돌풍이나 부산·경남에서 더민주당의 약진, 호남에서 새누리당의 당선 그 이상의 의미로 울산 북구 윤종오 후보와 동구 김종훈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이 두 후보의 선전은 오래전부터 예상됐다. 그러나 친야 성향의 신문에서 선거 개표 전까지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권에서 존재하지 않는 후보로 유령처럼 있었다. 오히려 <조선일보> 같은 보수 신문이 ‘통합진보당의 부활’,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로 비난하면서 두 후보에 대한 악선전을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선거일주일전검찰공안부는윤종오후보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까지 하면서 당선을 저지하려고 했다. 두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선거이틀전울산을찾아더민주당이종북세력인 통합진보당 출신 후보들과 연합했다면서 색깔론 공세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당선됐다. 색깔론과 탄압, 여론의 무관심 속에서 일궈 낸 당선이다.
의문은 희망이면서 두려움이기도 하다. 정치에 기로 또는 분기점이 있다면 지금부터가 아닐까.
(워커스 6호 2016.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