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난민이 유럽연합(EU)을 붕괴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이 중동과 아랍에 대한 분리 통치를 획책하면서 난민 문제라는 부메랑을 맞고 쓰러지고 있다. 또한 브렉시트는 최초의 유럽연합 이탈이지만 최후 사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난민 문제로 유럽연합 내부가 떠들썩할 당시 “유럽연합엔 유럽도 없고 연합도 없다”던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발언은 유럽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다.
유럽연합은 미국 주도의 중동 전쟁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을 타고 요르단, 바레인(심지어 이들 국가는 독재도 아닌 왕정이다)과 같은 나라에 친미-친서방 정권 유지를 위해 민중의 저항을 탄압하면서 권력을 보장해 주었다. 리비아, 시리아 등 반미-반서방 국가에 대해서는 전쟁까지 치르며 정권 교체에 나섰다. 독재자를 몰아냈던 이집트는 다시 친미 군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리아는 늪과 같았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시리아 아사드 정부 타도를 목표로 반군의 무장을 허용했고 내전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언한 IS(이슬람국가)였다. 전쟁은 내전에서 한층 더 복잡해졌다. 종파 전쟁까지 벌어져 세 세력 간에 끝없는 공방과 전투, 공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전쟁은 6년째 이어 오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시리아에서만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작 전쟁에 책임이 있는 당사국들은 뒷짐을 지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난민이 속출하면서 처음에는 같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로 몰렸고, 그다음에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목숨을 건 탈출을 할 때만 해도 이들은 남의 일처럼 여겼다. 그러다 2015년 초부터 육로와 해로를 통해 유럽의 부국으로 난민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독일과 프랑스는 난민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5년 9월, 터키 해안가에서 세 살배기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난민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 캐머론 정부는 유럽연합 국가의 이민자에 대한 차별도 지속할 정도였으니, 난민 수용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난민 문제로 유럽은 갈라졌다.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자 중동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던 북유럽과 동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전쟁에 직접 책임이 있는 당사국이 먼저 해결하라며 맞서 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난민 문제는 곪을 대로 곪아 있던 유럽 내 이민자 문제가 터져 나오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글로벌화)는 유럽연합 내에서도 발생해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정확히 말하면 이 국가의 대기업들)은 많은 혜택을 받았다. 반면 역내의 다른 국가들 특히 남부 유럽에서는 노동 유연화와 임금 삭감, 긴축 정책 등 노동자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왔다. 국가별 임금 격차까지 상당히 벌어지고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으로 복지가 축소되자 노동 인구의 쏠림 현상은 당연한 결과로 나타났다. 독일 등 주요국 내에서도 경제 위기 여파로 노동자 임금과 권리가 축소되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를 더 축소한다는 박탈감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동해 왔다. 이런 상황에 수백만 명의 난민까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 이슬람과 난민 혐오, 이민자 차별이 횡행하고 고립주의와 극우 세력이 준동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유럽연합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자유로운 개방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유럽연합의 이상은 허울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렸고, 유럽 각국이 이제는 국경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아랍을 분리해 지배권을 유지하려 했던 유럽연합은 아랍 시민에 의해 붕괴할 현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