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이 떠난 자리
성지훈 기자
사진: 언론노조
2824, 1578, 1549, 1492, 1471, 1350. 6월 29일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홈페이지 첫 화면에 박혀 있는 숫자다.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이용마, 정영하, 강지웅, 박승호, 최승호, 박성제, 이정호. 숫자는 이 이름들의 해고 일자다. 이들은 〈YTN〉과 〈MBC〉, 〈부산일보〉 해직 언론인이다. 길게는 8년, 짧아도 5년의 세월. 취재하던 사람들이 취재 대상이 돼 살아온 시간은 이렇게 길어졌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아졌다 다시 사라지길 반복했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지난 6월 24일 해직 언론인들과 1,800여 명의 시민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들었다. 언론노조가 주최한 ‘공정 언론 바로 세우기 콘서트’에서 이들은 공영 언론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YTN〉의 해직 언론인들은 2008년에 해고됐다. 당시 대통령의 대선 캠프 언론 특보를 지낸 구본홍 씨가 〈YTN〉 사장으로 선임됐다. 〈YTN〉 노조는 대통령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하며 퇴진 투쟁을 벌였다. 사측은 2008년 10월 6일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6명을 해고하고 6명을 정직하는 등 33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노사 간 고소 고발이 잇따르고 노조 집행부가 경찰에 체포되는 등 충돌은 더욱 격화됐다. 이후 8년 동안 노사 간 합의, 사측의 합의 미이행, 해고 무효 판결과 대법의 판결 번복이 이어졌다. 6명의 해직자 중 3명은 복직했고 3명은 아직 거리에 남아 있다. 해고 사태 이후 〈YTN〉의 보도도 변했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축소됐다.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 글 2만 건’ 단독 리포트는 단 한 차례 방영된 뒤 보도국장 지시에 따라 단신으로 축소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을 외면하는 화면과 기사를 누락했다. 시사 풍자로 〈YTN〉 대표 콘텐츠로 주목받던 ‘돌발 영상’도 폐지됐다.
〈MBC〉 언론인들은 2012년에 해직됐다. 〈MBC〉 창설 이래 최장기 파업을 진행한 후과다. 〈MBC〉 노조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김재철 씨가 2010년 사장으로 부임한 후 보도의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MBC〉에선 ‘뉴스 후’ 등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관련자들을 시사 보도와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 내 ‘보복성 인사’라는 비난이 일었다. 급기야 2011년 한미 FTA 반대 시위 현장에선 〈MBC〉 기자들이 시위대에 쫓겨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170일의 최장기 파업을 벌였다. 상황이 비슷했던 〈KBS〉, 〈YTN〉도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유례없던 방송사 공동 파업이 만들어졌다.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결방되며 세간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적 지지를 얻은 파업의 대가는 혹독했다. 노조 홍보국장을 맡은 이용마 기자를 필두로 노조 위원장과 집행부들이 줄줄이 잘려 나갔다. 노조 집행부가 아니었던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도 해직됐다. 지난 1월 최민희 전 의원은 당시 〈MBC〉 사측 고위 간부가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의 해고에는 증거가 없지만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해고했다”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해직된 언론인은 총 22명이다.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언론인들이 징계를 받았다. 그사이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MBC〉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보도 참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시청자들은 〈MBC〉를 불신하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22명의 언론인이 떠난 언론 현장은 22명 이상의 공백을 만들었다.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는 사라졌다. 대신 대통령의 업적을 치하하는 기사만 남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공정 언론’의 대안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들 22명의 해직자였다.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뉴스타파〉는 2013년, 영국령의 버진 아일랜드가 재벌들의 조세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특종을 냈다. 이들을 해고한 언론사들이 〈뉴스타파〉의 단독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과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 등 대형 특종 역시 〈뉴스타파〉 몫이었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는 24일 공정 언론 콘서트 현장에서 〈MBC〉에서 잘리고 난 후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승호 앵커는 〈MBC〉에서 해고된 이후 〈뉴스타파〉 취재진으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4대강 관련 돌발 질문을 던진 경험을 언급하며 “〈MBC〉에 있었다면 그런 질문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 위원장도 해직 이후 대안 언론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2011년 일종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인 ‘용가리 통뼈 뉴스’를 운영했다. 2012년 1월부터 〈뉴스타파〉 초대 앵커를 맡았고,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시민들이 출자금을 모아 만든 미디어 협동조합 〈국민TV〉에 실무진으로 합류했다. 노 전 위원장은 〈국민TV〉 제작국장과 뉴스 프로그램 ‘뉴스K’ 앵커를 겸했다. 현재는 ‘일파만파’란 이름의 뉴스 에디팅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2015년 복직했다 최근 다시 두 차례의 재징계를 받은 〈MBC〉 이상호 기자는 지난 5월, 결국 사직서를 냈다. 징계를 받은 이유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행적을 좇은 ‘대통령의 7시간’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해직된 이들은 거리에서 또 다른 매체를 만들어서 싸우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에 그치지 않는다. 조승호 전 〈YTN〉 기자는 공정 언론 콘서트 무대에 올라 “노조 간부도 아닌 제가 해고됐다는 사실은 〈YTN〉 노조가 지키려 한 것이 결국 공정한 언론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년의 시간은 길다. 해고자들은 생계 문제, 패배감, 무력감을 모두 이겨 내야 했다. 이들은 “긴 시간이 희망마저 재로 만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재가 된 희망을 붙들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그들이 떠난 만큼의 구멍만 생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그들이 떠나며 평화와 노동, 생명의 가치를 담은 보도가 함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