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화물연대의 파업이 1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정부는 8.30 방안을 유지하면서 과적 단속과 지입차주 권리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안을 냈다. 화물연대는 이 안을 받아들여 파업을 철회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8월 30일 발표한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8.30방안)’에 화물노동자의 숙원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화물노동자는 노예제와 같은 지입제를 없애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입제란 개인차주(지입차주)가 구입한 차량을 운송업체에 등록한 뒤, 해당 회사의 번호판으로 일감을 받아 영업하는 제도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운송업체에서 번호판을 회수하거나 계약을 갱신해주지 않으면 지입차주는 꼼짝없이 쫓겨난다. 이 때문에 화물연대는 지난 13년간 6차례나 파업했다.
6년 단서 조항, 운송업체엔 돈, 화물노동자에겐 독
2014년 5월 신설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규정에 따르면,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던 화물노동자가 계약갱신을 원하면 법이 정한 사유가 없는 한 운송사는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 계약 기간이 6년을 초과할 경우, 운송사가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단서를 달았다.
정부는 이 ‘6년 단서’ 조항의 내용을 수정해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불상사를 방지하겠다고 한다. 법상 보장되는 계약 기간 6년이 지나고 계약을 해지할 때 ‘상호 합의’라는 문구를 추가하겠다는 것이 8.30 방안의 내용이다. 그리고 19일 정부가 화물연대와 합의한 것은 ‘지입차주에게 귀책사유가 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6년 단서 조항은 지금도 여러 방법으로 악용되고 있다. 계약 6년이 지나면 번호판 값을 명목으로 추가로 현금을 요구하거나, 번호판을 반납하고 나가라는 식이다. 한 조합원은 한 달 16만 5,000원이던 지입료가 55만 원으로 올랐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지입차주가 버틸 경우, 지입료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리거나, 관청에 계약이 해지됐다며 해당 차주가 유가보조금을 못 받게 하는 방법 등으로 괴롭힌다. 한 조합원은 한 달 16만 5,000원이던 지입료가 55만원으로 올랐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6년마다 뺏고 뺏기고 번호판 전쟁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 L 씨는 지난 4월, H 운송사로부터 번호판을 반납하고 나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회사 소속 5명에게도 계약 만료를 알리는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7월이면 계약 기간 6년이 됐다. 운송사로선 6년이 다 돼가니 번호판 장사를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L 씨는 아무 이유 없는 계약 해지를 받아들 수 없었다. 다른 운송사에 들어가면 또다시 번호판 값 몇천만 원을 써야 했다. L 씨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쟁의하겠다고 사측에 밝혔다. 6명은 그날부터 밤새 번호판을 지켰다. 잠을 못 자니, 일하기도 어려웠다. 속이 타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풀렸다. 번호판을 양수하겠다는 쪽이 마음을 돌리면서 H사의 번호판 장사도 무산되고 말았다. L 씨는 “그래도 노동조합이나마 있는 곳은 함께 대응을 모색하지만 비조합원의 경우는 다 놓고 나가기 일쑤다. 운이 좋아 계약이 연장됐지만 회사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며 불안함을 털어놨다.
충청권에서 일하는 비조합원 Y 씨는 실제로 번호판을 탈취당했다. 6년 계약을 앞두고 H 운송사는 나가라고 요구했고, Y 씨는 버티고 있었다. 저녁에 차를 타려고 보니 번호판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은 빈 번호판으로 불법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돈 1,200만 원을 주고 지입회사를 통해 다시 번호판을 샀다. 번호판은 한 번 뺏기면 돌려받을 수 없다. 분실신고를 하고 재발급 절차를 받기 위해 운송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번호판 탈취가 자주 있다 보니 6년이 다 돼가는 지입차주들은 번호판을 떼서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기도 하고, 번호판을 못 떼게 담벼락에 딱 붙여 주차하기도 한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운송사들이 이 법을 자유로운 계약 해지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6년마다 운송사에 황금알을 낳아주는 법이면서 화물노동자에겐 그만큼 부담을 지우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위와 같은 사례들을 막기 위해 6년 뒤엔 지입차주들에 귀책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귀책사유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관련 단체와 협의해서 정하겠다고 한다. 운송사들은 지금도 집단행동, 지입료 연체 등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남발하고 있다. 어디까지 지입차주의 귀책사유로 보는 게 합당할까?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지금 운수사업법에 규정돼 있는 범위를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은 위수탁 계약 갱신이 어려운 사유들을 제시한다. ‘위수탁 차주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 기간 운수종사자의 준수사항을 위반해 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 등이다. 하지만 지금도 지입차주들의 지입료 연체, 집단행동 등을 귀책사유로 만들어 6년 이전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운송사들이 있다.
생계 요구에 어떤 명분이 더 필요했을까
파업 철회에 이르기까지의 결과를 지켜본 한 화물연대 관계자는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한 건 6년 단서 조항 폐지와 지입제 폐지였는데, 과적 단속을 정부에서 먹잇감으로 던져줬다. 6년 단서 조항은 합의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차후 논의 수준이어서 개인적으로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지나 조직을 추스르는 차원에서 필요하지 않았겠나”라며 파업 상황이 안 좋았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정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정당성 없는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일절 교섭에 임하지 않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파업 10일 동안 연행된 조합원은 68명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파업을 이끄는 박원호 본부장은 ‘교통방해죄’로 체포됐다. 경찰이 화물연대의 집회 행진을 막으면서 부상자도 속출했는데 19일에만 조합원 8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화물노동자는 지난 13년간 지입제를 폐지하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번번이 약속을 어겼다. 말을 뒤집는데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정부가 계속 말을 바꾸는 이상 화물 노동자의 파업도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