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는지 매년 초조한 마음으로 확인한다. 최저임금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엄마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와 엄마 모두 최저임금 이상의 시급을 받아 본 적 없다. 다만 올해는 조금 기대를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얘기를 하기도 했고. 최저임금 결정이 늦어지기에 뭔가 더 오르는 것 아닌가 막연한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별거 없다. 최저임금을 결정한 사람들이 꼭 최저임금으로 살아 봤으면 좋겠다.” (김송희, 22)
길고 오래 걸렸던 최저임금 심의가 지난 16일 마무리됐다. 심의 기간은 108일로 최근 10년 이내 열린 심의 중 가장 길었다. 전원회의 역시 열네 차례가 열려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노동자위원은 전원이 퇴장하고, 소상공인 대표 2명이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다며 표결 직전 퇴장했다. 재적 위원 27명 중 사용자위원 7명과 공익위원 9명이 올해 대비 440원(7.3%) 인상, 시급 6,470원 최종안을 가결했다. 6월 말이 시한인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일을 보름이나 넘겼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내년도 최저임금 7.3% 인상에 대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의미가 크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에 항의하며 전원 사퇴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지난 19일 국회 정론관(기자 회견장)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녔다”며 “야당 국회의원, 시민 사회와 함께 제도 개선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무용론… 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사용자위원 9명, 노동자위원 9명에 정부쪽 인사인 공익위원 9명이다.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이 협상안에 대해 각 아홉 표씩 이견을 다툴 때, 결정권은 공익위원 9명에게 있다. 이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인 셈이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 공동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법>의 취지는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의 담합으로 내팽개쳐졌다”며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2007~2016년 최저임금 심의 현황에 따르면, 열 번 중 일곱 번이 공익위원 안으로 결정됐다.
공익위원들의 형평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지만 정부쪽 인사로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공익위원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최저임금위원회를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한 한 노동자위원은 공익위원이 정부 정책과 수치, 통계에만 전문가일 뿐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익위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대학 경영학부 교수나 정부 산하 기관 연구원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경제학적 전문성은 있을지 모르나 노동자의 삶에 맞는 임금을 이해하고 노사 간 의견 차이를 조정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공익위원 9명 중 4명이 대학 경영학부 교수다. 그 외 인사는 한국개발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의 연구원 등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폐쇄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저임금이 서민들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는 녹취록이 있어도 국회 자료 요청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했다. 회의록은 속기록 형태가 아니라 결과만 요약한 수준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회의 방청도 쉽지 않다.
지난해 폐쇄적 운영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노동자위원들의 요구로 관행적으로 허용해 왔던 회의 배석자 수가 늘어나고 회의록이 홈페이지에 공개되기도 했지만 일시적인 개선일 뿐이었다. 최저임금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책임성이 낮고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운영 방식인 셈이다. 지난해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와 회의 속기록을 공개하고 방청을 허용해 최저임금 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통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취지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역시 지난 5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속기록 작성과 공개를 의무화하고, 시민 방청을 보장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번 위원회도 변화는 없었다.
2년째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본연의 목적이 뚜렷하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상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둘러싸고 노사정 간 굉장히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원회를 통해 확인한 건 회의 구조의 답답함과 폐쇄성”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시민들이 방송 중계를 통해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임금 결정 과정의 면면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정해졌지만 최저임금과 최저임금위원회를 둘러싼 무용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상되어야 하지만 누구의 삶도 보장할 수 없는 임금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생활임금추진단도 지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소폭 인상에 대해 강하게 규탄하며 생활 임금 제도 도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의 어제와 오늘… 내일은?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은 1988년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시간당 급여는 487원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세계 최장 노동 시간, 세계 최저 임금의 현실을 거친 노동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한 게 최저임금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그 적용 대상이 한정적이고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저임금 계층 일소, 임금 격차 해소, 분배 구조 개선이라는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후 1993년 전까지 최저임금은 1,000원을 넘지 못했다. 1993년이 되어서야 1,005원, 그다음 해 1,085원으로 올랐다. 시급 2,000원을 넘은 것 역시 2001년 이후다. 전년보다 12.6%가 인상된 2001년의 최저임금은 2,100원이다. 2017년 예정된 최저임금은 1988년에 비하면 13.2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많이 올랐다고 할 수 없다. 500원이 채 되지 않은 초기 제정 금액이 너무 낮았을 뿐이다.
최저임금의 인상률은 최저임금의 상승 폭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드러낸다. 10%를 넘었던 것은 1989년부터 1992년과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 2006년으로 총 일곱 번에 그친다. 2010년 이후는 2016년 8.1% 상승이 최대다. 치솟는 집값과 전셋값, 쇠고기, 채소 등 장바구니 물가 폭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듣는 건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으로는 한 끼 밥값을 내기 힘들다는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28년 최저임금의 역사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인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은 20일 사퇴를 선언했다. 공익위원이 운영 개선을 요구하며 사퇴를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노동자위원은 하루 앞서 전원 사퇴를 선언해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는 와해됐다. 이들은 더이상 최저임금위원회에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은 국회로 향했다. 실질적인 생활이 가능한 선에서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를 주도록 법으로 정하는 생활 임금 제도를 도입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19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다. 노동자들의 하루 벌이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워커스 20호. 201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