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오후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25미터 넘는 작업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숨졌다. 노동자는 안전망을 움켜잡았지만 안전망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추락했다. 현대중공업은 사람 목숨이 일회용품이라고 생각했는지, 이 안전망은 전기선을 정리할 때 사용하는 일회용품인 케이블 타이로 난간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안전 조치 소홀로 현대중공업에서는 올 들어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런데도 대부분 이런 사망 사고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고작 15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2015년 7월, 안전 관리 소홀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하청 노동자 6명이 사망한 한화케미칼은 시민 단체가 선정한 ‘2016년 최악의 살인 기업’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한화케미칼 공장장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고, 한화케미칼 회사에는 벌금 1500만 원만 부과됐다.
독극물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로 2016년 5월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464명에 이른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져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책임은 엉뚱하게도 ‘표시, 광고’ 위반. 이 살인 기업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최고의 법적 책임은 “제품 허위 표시”로 벌금 1억 5천만 원을 물리는 것뿐이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 간 세월호 참사는 돈벌이를 위해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고 과적 운항을 한 청해진해운에도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청해진해운에 물을 수 있는 것은 어이없게도 ‘기름 유출’에 대한 책임이다. 청해진해운은 과실로 선박 기름을 유출한 점에 대해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으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것이 전부다. 사고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배를 몬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이 졌다.
지난해 미흡한 초동 대처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 186명 중 38명이 숨졌다. 삼성서울병원에서만 90명의 메르스 환자가 새롭게 발생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감염 환자를 격리하지 않고 응급실에 입원시켜 추가 감염자의 숙주 역할을 했다. 감염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병동 폐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일로 삼성서울병원은 ‘2016년 최악의 시민 재해 살인 기업’에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삼성병원이나 관계자가 메르스 대응 문제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한국은 기업에겐 천국이지만 노동자나 소비자에겐 지옥인 세상이다. ‘헬-조선’이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기업엔 ‘헤븐-조선’이라는 말이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배출 가스 조작이 드러난 뒤 토마스 쿨 폭스바겐 한국 법인 사장은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내 “진심으로 사과하고,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1년 동안 어떤 ‘조치’도 진행된 게 없다. 미국에서 폭스바겐은 똑같은 사고를 치고도 소비자 배상 방안을 마련하고 배상금으로 150억 달러(약 17조 5천억 원)를 내기로 합의했다. 이런 차이는 기업에게 묻는 책임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하는 노동자와 제품을 사용하는 대중에게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생명을 빼앗거나 중대한 위협을 끼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책임도 함께 있다. 세월호 참사에는 정부의 구조적 책임이 있었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일선 경찰의 문제로 치부되었으며, 정부는 어떤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는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스리슬쩍 없어져 버렸다. 《워커스》 이번 호 이슈에서 다루는 ‘간병 살인’(‘간병 살인’의 진범은 누구일까)같이 미흡한 제도와 정부의 방조로 가족끼리 서로 죽여야 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2008년부터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기업 및 정부 기관이 업무와 관련된 모든 노동자 및 공중의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게 범죄 책임을 부과한다.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 부과가 가능하고, 유죄가 확정된 사업주 이름과 기업과 기관의 범죄 사실을 지역 또는 국가의 언론 등에 공표해야 한다.
2016년 현재, 이 법은 영국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