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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하청노동자 대행진, 거제를 뒤흔들다

“마! 조선소 개판인 거 인제 알았나”
2016년 11월 6일Leave a comment25호, 이슈By 김한주 기자

사진 정운

10월 29일 거제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차도는 썰렁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높이 100m, 길이 180m, 무게 900톤의 골리앗 크레인에 온 도시가 위축된 느낌이다. 거제시 어디든 골리앗 크레인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골리앗 크레인은 오후 3시가 되자 ‘고용안정호’와 3천 명의 하청노동자 대행진에 묻혀버리고 만다.

오후 3시 ‘조선 하청노동자 한마당’이 거제시 아주동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공설운동장은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뒤덮였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풍선에 자신의 요구를 적었다. “물량팀 폐지”, “고용이 안정된 일터”, “임금 체불 없는 조선소” 등을 적었다. 가장 많이 쓴 것은 “하청 노동조합 건설”이었다.

 

블록 A21번.

물량팀장 : 마! 거 사다리 놓고 빼면 되잖아!

노동자1 : 거 사다리가 짧아서 안됩니더.

물량팀장 : 그럼 크레인에 쓰레기통 달아줄게 타고 올라가 때워라.

노동자1 : 위험해서 안 됩니더. 족장(받침대) 놓고 나면 하입시더.

물량팀장 : 기성금 내려와야 월급 제때 나올 거 아이가. 크레인 쓰레기통 단디 해줄 테니 빨리빨리! 꼼꼼하게! 안전하게….

(물량팀장 퇴장)

노동자2 : 와 아침부터 썽을 내노?

노동자1 : 시x…. 팀장 저 미친 xx가 족장도 안 놨는데, 쓰레기통 타고 용접하라 안 합니까. 쓰레기통 타고 올라갔다 떨어져 죽으면 지가 책임질 끼가. 지난달에도 하청만 둘 죽었는데 너무하네. 형님도 마찬가지요. 용접하다 화상 입으면 병원 갈 필요 없이 아까징끼 바르면 낫는다고 한 게 형님 아이요.

노동자2 : 마, 하청이 그깟 거 같고 무슨 병원이고. 그라고 아까징끼 잘 바르모 진짜 잘 낫는다. 어이, 우리 막둥이 왔나?

노동자3 : 형님요, 이번 달 월급이 왜 그렇습니까? 돈이 영 적은데예.

노동자1 : 원청에서 기성금 후려쳤다고 일당 깐다는데 뭐라 할끼고.

노동자3 : 여는 법도 없나…. 월급에서 4%씩 띠는 건 또 뭡니까?

노동자2 : 아 그거 세금 내려고 뗀다 안 하나.

노동자3 : 세금요? 세금 진짜 내기는 냅니꺼?

노동자1 : 팀장은요. 지도 업체 사장한테 삥 뜯기는 기라 카던데요.

노동자2 : 팀장이 처먹든, 사장이 처먹든…. 우리 돈 처먹는 거 아이가.

노동자3 : 에이 시x. 진짜 여는 법도 없네. 개판이네 개판!

노동자1,2 : 마! 조선소 개판인 거 인자 알았나?

 

무대에서 상황극을 연기한 사람은 물량팀 노동자였다. 상황극이 끝나고 이 노동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몇 마디 하겠다고 외쳤다. “조선소는 소득세도 안 내고, 4대 보험도 안 듭니다. 하청노동자가 죽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일자리입니다. 기간제, 파견 확대는 이런 일자리 늘리는 겁니다. 물량팀 즉각 폐지하고 원청에서 직접 고용하십시오. 그게 진짜 구조조정이고, 조선업 살리는 길입니다.”

그는 동료 하청노동자에게도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겁니까. 혼자서 소리 내봤자 소용없습니다. 뭉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생깁니다. 이제는 참지 말고 뿜어냅시다. 그다음부턴 아주 쉬워집니다. 용기 내서 하청지회 가입합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조선하청노동자대량해고저지시민대책위원회 권미정 씨는 “거제에는 빅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중 빅2(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가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은 하청노조가 있지만, 거제에는 없다. 구조조정이 가장 심각하게 일어나는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이 업체 폐업으로 해고돼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권미정 씨는 거제 하청노조를 조직하기 위한 희망버스를 준비했다.

 

전국 희망버스 11대, 왕복 11시간, “오느라 욕 봤지예”

 

서울 시청역에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까지 거리는 약 400km. 서울에서 여섯 시간이 훌쩍 넘어 희망버스 4대가 도착했다. 창원 2대, 대구, 청주, 대전, 광주, 아산에서 각각 1대의 희망버스가 왔다. 약 500 명의 시민이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 모였다.

“오느라 욕 봤지예.” 거제의 조선업 하청노동자는 11대의 희망버스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최순실 사태로 모든 이슈가 묻혀버린 지금. 수만 명의 노동자가 사라져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 시국에 수백 명의 시민이 희망버스를 타고 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의 한 학생은 “조선업 구조조정 뉴스에 기업만 있고 노동자는 없어요.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얼마나 감축하고 정부가 얼마를 지원한다고만 하지, 노동자가 구조조정으로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보도를 안 해요”라고 했다. 사실 이 학생은 지난 여름방학 때도 거제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에 느꼈던 조선업 노동자 현실을 보고 다시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노동자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사라질 것은 몇 만의 노동자가 아니라, 조선업을 이렇게까지 만든 국책은행과 경영진 아닌가요?”라며 “하청노동자들의 행동은 처음인데 희망버스에 탄 학생들이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중년의 여성은 집회 무대에서 나오는 음악에 몸을 들썩이며 즐기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힘든 기색이 없었다. 조합원도 활동가도 아니었다. 그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노동하진 않지만, 세브란스 병원에서 조합 활동하는 친구 때문에 노동 문제에 많이 공감했어요. 그 친구랑 같이 오기로 했는데 친구가 일이 생겨 혼자 오게 됐네요. 그래도 오길 잘했어요. 운동장에 들어올 때 비장한 마음도 들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창원에서 온 황영애 씨는 SNS에서 고용안정호를 만드는 작업을 보고 오게 됐다고 전했다. 황 씨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청이든 하청이든 같은 사람이잖아요.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처럼 내가 당했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연대하러 올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왔어요”라고 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조선업 하청노동자 문제가 덮일까 걱정이에요. 관심이 멀어진 사이 조선업 재벌은 노동자를 해고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전남대학교에서는 학생 19명이 왔다. 자율전공학부 최용헌 씨는 “10월 초 학교에서 조선소 노동자를 다룬 <그림자들의 섬>이란 영화를 상영했어요. 영화는 매우 담담하게 진행됐어요. 그 담담한 노동에 고통이 느껴지더라고요. 학교에서 공부하고 토론했는데 노동자의 삶을 지우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너무 분했어요”라고 했다.

 

하청 구조가 노린 것 “노조는 안 돼”

 

하청노동자와 시민 3,000여 명의 대행진은 대우조선해양 앞 거리를 뒤덮었다. 거제시도 이런 대행진은 처음이었다. 배치된 경찰은 1개 중대, 80명이었다. 헬멧도, 방패도 없었다. 경력이 부족해 경찰 개개인이 넓은 간격으로 행진 대오를 따라다녔다. 지나가는 거제 시민들은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찍었다.

행진 대오는 오후 5시께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남문과 서문에 각각 도착했다. 퇴근길 쏟아지는 수천 명의 조선소 노동자들은 같은 작업복을 입고, 다른 헬멧을 썼다. 작업복은 대우조선해양의 유니폼, 헬멧은 소속 하청 업체의 것이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합시다.” 거제통영고성하청노동조합준비위원회 소속 노동자들은 동료들에게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나눠줬다. 조선소 입구에 앉은 시민들은 함성으로 퇴근길을 위로했다.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받아든 노동자는 집회를 보고 “마음이 아프다. 노동조합 동료들이 잘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는 “시위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입장이다. 사측이 너무하다. 잘못된 건 뿌리 뽑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 노동자는 “전단지 밑 ‘하야해_박근혜’ 문구를 보고는 박근혜 정권이 빨리 퇴진해야 조선소도 바뀔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는 “조합에 가입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답을 피했다. 한 노동자는 “일당이라…”며 노조는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노동자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돈 벌면 그만이었다. 하청의 하청, 물량팀부터 돌관팀까지 쪼개진 조선업 고용구조는 노조를 조직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대행진에 참여한 윤현식 진보정치연구소 설립추진위원은 이에 대해 “1960~70년대 일본 조선업 구조조정이 지금 한국과 똑같다. 하청에 재하청을 줘 인력 이동을 쉽게 한 것, 또 하청 구조로 정부는 조선업 관리에서 손을 뗀 것이다. 이 구조 때문에 위기의 책임은 노동자에 전가됐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전했다.

 

‘고용안정호’에 올라선 하청노동자

 

오후 6시 ‘고용안정호’의 조명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을 밝혔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은 고용안정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고용안정호’는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바라며 예술가들로 구성된 파견미술팀이 제작한 나무로 만든 배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고용안정호에 후원한 시민들의 이름도 보였다. 본래 3,000명을 목표로 후원을 시작했지만 4,511명이 후원했다.

고용안정호에 한 하청노동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는 “사장이 백 명이 넘는 동료의 임금을 갖고 도망갔어요. 말 그대로 ‘먹튀’한 거예요. 원청에 책임지라고 찾아갔습니다. 근데…. 목구멍 막혀서 말도 안 나오네…. 저는 술과 낚시를 좋아합니다. 세상이 좀 나아져서 술도 많이 먹고, 동료들과 배 위에서 회도 썰어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이 노동자는 회를 ‘먹는 것’이 아닌, 회를 동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조선소가 그 즐거움을 앗아갔다.

한바탕 고용안정호 판 굿이 벌어졌다. “고용안정호를 지어보세. 떠나지 못한 배를 띄워보세. 덩실덩실 춤을 추고 좋은 나라 만들어보세. 에헤야 디야.” 모든 액운을 쫓아내는 고용안정호 진수식이 진행됐다. 노동자와 시민은 자신의 소원을 적은 종이배를 고용안정호에 담았다.

정부는 10월 31일 앞으로 32%의 조선업 노동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업 전체 노동자 20만 명(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 중 6만 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소리 없는 그림자들의 섬. 10월 29일 대행진은 거제를 연대의 섬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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