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다. 겉으로는 우병우, 안종범,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수석들의 사표를 받는 척하면서 사실은 검찰을 주무를 민정수석을 내정하고 검찰수사를 가이드 하는 한편 박근혜 게이트를 최순실 게이트로 축소하고 최순실을 희생양 삼아 정국 위기를 탈피하려 하고 있다. 누구와의 논의도 없이 김병준을 책임총리로 내정하는 등 국민의 박근혜 퇴진 열망을 거슬러 대통령이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불통과 아집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인 내각 개편에 반발이 거세지자 검찰 조사와 특검 수용을 언급하며 물타기를 하고 있지만, 최순실 구속으로 꼬리만 잘랐을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국내 최대 권력피싱업체인 조선일보가 지난 10월 29일 집회를 보고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한 시나리오대로 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터져 나오는 민심을 경찰력을 동원해 억압하라는 본연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민심은 지금 폭발 직전이다. 대통령의 불통과 아집이 분노한 민심과 완전히 엇박자를 그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분노한 민심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1,553개 단체는 비상시국회의를 개최하고 박근혜 퇴진을 위한 국민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생들은 교문을 지나 거리로 나오며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를 조직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시국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국민의 분노를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어정쩡하게 눈치만 보고 있는 야당의 동참을 촉구하고 나섰다. 거국중립내각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아집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현 정세가 또 다른 87년 항쟁으로 비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확한 예측이다. 민심은 들끓고 있다. 전국 교수연구자 2,234명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에 들어갔으며, 거국내각은 배신행위라고 지적하는 시국선언문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현재 정세는 1년여 남은 내년 대선이 앞당겨져 있는 상황이다. 조선일보가 던진 거국중립내각이라는 낚싯밥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야당이 그 낚싯밥을 물든 안 물든, 최순실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정국이 87년 때처럼 야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과 노동자 민중의 역동적인 항쟁을 야당이 막국수에 말아먹는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민주당이 시국회의에 결합하는 것은 분노한 민심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거국중립내각도 조선일보가 몇 달 전부터 기획해온 지배세력의 부활을 보장해주는 이데올로기 장치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퇴진이라는 절체절명의 요구를 아래로부터 받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국은 대선정국일 수 있지만, 대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선을 치러서도 안 된다. 한국사회의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세 당에 고기를 넘겨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97년 체제(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노력이다. 지배 블록에서 흘러나오는 개헌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서도 안 된다. 내각제든, 4년 중임제든, 책임총리제든 지배권력을 안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개헌보다 더 필요한 것은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제헌 논의’다. 상당한 시간과 진통 등이 예상되지만 이번 정국에서 9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제헌 수준의 논의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는 데에도 엄청난 민심의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성남 민심의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 급선무다. 대통령의 퇴진이 가능하다면 그다음을 기획해야 하는데,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세상을 바꾸는 플랜이 나와야 한다.
대통령을 누가 하든 그것은 권력의 회전문 인사 밖에 되지 않기에 비정규직으로 넘쳐 나는 97년 체제 극복이 이번 정국에서 최대 이슈가 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과거의 오큐파이(점거) 운동이다. 지난날 광우병 정국은 촛불집회라는 집회의 형태를 만들긴 했지만, 국민과 노동자 민중이 각각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터져 나오는 분노를 그대로 뱉어내기보다 국민과 노동자 민중이 그야말로 주체로 등장하는 집회가 필요하다.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인사가 단상에 올라 분노하고 절규하는 목소리에 박수치는 식의 집회,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 하던 과거가 되풀이돼서도 안 된다. 광화문이든 서울광장이든 들끓는 대중의 분노가 밑으로부터 참여와 현장의 직접 토론으로 이어지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집회나 시위는 만민공동회의 총회장으로 변해야 한다. 주말마다 모여 촛불을 들고 그저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집회에 몇 명 모였는가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어떤 새로운 세상이 국민에게 노동자 민중에게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갖고 토론하고, 우리들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집회가 당장의 분노 표출보다 훨씬 더 절박하다.
지금 우리는 정권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힐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개헌이나 거국중립내각을 거부하고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위해 분노하며 그 성난 민심을 표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끝나면 설령 박근혜 정권의 전면 퇴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성난 민심은 급속하게 냉각되고 97년 체제는 더더욱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물에 그 밥’에 ‘그렇고 그런’ 대선을 치르면 헬조선의 마지막 비상구를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정파나 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지 말고 노동자 민중 앞에 하나로 대동단결하여 현 정세를 오큐파이 운동으로 격상시킬 기획을 해 나가자. 민중총궐기의 날인 11월 12일은 시간상으로 급하다손 치더라도 하루아침에 끝날 정국이 아니다. 또, 노동자는 전면 파업을 실천하거나 조직하자. 그리고 집회 현장에서는 서울의 동네별로 팀을 나누고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교차 집합시켜 만민공동회를 열든지, 국민과 노동자 민중을 교차 집합시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현장에서 가동해가자. 요란을 떨며 잠깐 사이 터지고 마는, 폭죽 같은 분노는 필요 없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