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고성, 통영이 있는 경남을 중심으로 조선업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진짜 태풍은 내년이 돼서야 오건만 미리 부는 바람에도 노동자는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덮은 와중에도 조선업 구조조정은 착실하게 진행 중이다. 그것도 가장 약자인, 하청 노동자를 먼저 쳐내는 식이다. 정규직도 울며 겨자 먹기로 희망퇴직서를 제출하는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의 자리는 쉽게 지워진다.
2014년 이후 대형 조선소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빅3(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가 벌이는 저가 출혈 경쟁, 무분별한 해양플랜트 수주가 원인으로 꼽힌다. 수주 절벽에, 하청업체 노동자는 일거리가 없어졌다. 그 많던 잔업과 특근은 사라지고 한 달에 쥘 수 있는 돈은 절반으로 줄었다. 정부는 ‘하청업체’ 대신 ‘협력업체’라는 말을 쓰며 파트너의 의미를 부각한다. 하지만 조선업 상황이 안 좋아지면 원청은 파트너십 대신 희생만 강요했다. 그리고 하청업체의 부담은 하청 노동자로 전가됐다. 일련의 대량 해고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10월 31일, 정부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6월 30일 첫 번째 방안을 내놓은 후 4개월 만이다. 정부는 조선협회의 통계를 빌어 2017년 말까지 하청업체 노동자가 5만 6,000~6만 3,000 명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말 집계된 하청노동자 수는 13만 6,000 명인데 거의 반 토막이 나는 상황이다. 금속노조에선 지금까지 1~2만 명이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는 위험에 처한 도마뱀의 꼬리처럼 먼저 잘려도 되는 존재일까?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전 세계 수주량 절반을 차지하며 정상 자리를 누릴 때를 생각해보자. 조선업 발전은 사내하청 중심의 성장이라 불릴 만큼 사내하청노동자가 기여한 바가 크다. 박종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지난 2014년 <조선산업 사내하청 확대와 원청의 생산 통제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 “(조선산업은) 불황기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고용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현장인력을 감축해 고용 탄력성을 확보하고, 호황기엔 사내하청노동의 활용을 증대시킴으로써 정규직 고용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 절감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커스》는 구조조정으로 힘없이 밀려난 노동자, 저항하는 노동자,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를 만났다. 목소리를 감춘 이들을 추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거제에 희망버스가 도착했다. 불황으로 가라앉은 도시와 노동자에게 희망버스는 새로운 기운을 가져왔을까? 이들에게 희망은 어디에 있는지 짚어 보았다.
뿌리부터 휘청이는 거제
경남 거제시에 뿌려진 29일 자 벼룩시장엔 앞쪽부터 4면이 조선소 일자리로 빼곡했다. A3 크기의 종이는 구인 광고로 여백 없이 가득 찼다. 그 중엔 ‘족장 자재 정리 기한부 일당공 00명 모집’, ‘tubing team 3인 이상 모집’ 등 물량팀을 구하는 광고도 상당수였다.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조선소 여기저기 물량팀을 왜 그렇게 찾는 것일까? 물량팀은 돌관팀(긴급 물량을 처리하기위한 단기간 사용 물량팀)과 함께 조선업 일자리 중 가장 불안정한 일자리다. 원청의 1차 하청도 아닌 2차, 3차 하청업체에서 평균 3개월을 일한다는 비정규직이 물량팀, 돌관팀이다. 가장 불안정하기 때문에 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수주 막바지 작업에 다다른 조선소에선 물량팀을 적극 활용한다. 이들은 이미 해고됐지만 다시 해고를 기다리는 상태였다.
《워커스》는 10월 27일부터 울산을 거쳐 거제로 내려갔다. 거제에서 만난 시민들은 본인이 조선소 노동자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택시기사의 아들은 대우조선해양에 다녔고, 둘째 날 탔던 택시기사의 처남 두 명은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는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각 조선사의 바닥난 수주 현황, 구조조정 감축 목표 등 이번에 닥친 불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인력 사무소는 조선소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몰렸다. 평소 같으면 일감도 없는 비 내리는 날이었지만 혹시나 해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상당수가 대형 조선소 하청업체에 다녔다고 했다.
다른 업체로,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조선 하청노동자 배관사 Y 씨는 조선소 빅3(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를 떠돌며 물량팀으로 일했다. 올해만 해도 사정이 가장 어렵다는 대우조선 협력업체에서 7개월,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에서 1개월 근무했다. 이런 식의 뜀뛰기는 물량팀에 너무나 익숙하다.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곳은 보수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배를 다 만들었거나 물량이 떨어지면 최우선으로 해고되는 사람들이다.
대우조선에서, 삼성중공업에서 깎이는 일당을 보며 조선업 불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는 거제에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 일을 구했다. 현재 경기도 평택 고덕의 삼성 반도체 공장에 다니고 있다. “일자리 없어지기 전 미리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일자리를 못 구하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다 급여를 못 받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저같이 마음이 힘들고 불안하겠죠.” 지금 일하는 곳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스컴에선 삼성이 앞으로 10년 동안 100조 원을 들여 반도체 라인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확정은 아니에요. 삼성 반도체라든가, 휴대폰 팔리는 실적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하니까요.”
중소형 조선소의 불황은 더 오래됐고 더 깊다. 업체 폐업, 임금 체불 등의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STX조선해양 사내 1차 하청업체에 다니던 O 씨는 5월과 6월, 두 달 치 임금이 체불됐다. 회사에선 감당이 안 되자 7월부터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체당금을 신청해놨지만 아직 소식은 없다. 바지사장도 직원들과 함께 잘린 신세가 됐다고 한다. O 씨는 현재 조선소의 물량팀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도 11월부터 휴직에 들어간다고 한다. O 씨는 진해 쪽에 일자리 씨가 말랐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조선소 쪽 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만 10년 일한 사람이 어디를 갈까 싶습니다. 업체 바뀌고, 월급 안 나오고 한두 번 떼인 게 아니에요. 딸도 어린데 너무 불안해요.” 훌쩍 높아진 업무 강도 역시 부담이라고 했다. “둘이 하는 일을 혼자 하니까 힘들죠. 그래서 3일 만에 끝내야 할 거를 5, 6일씩 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늦어지는 건데도 관리자들이 ‘이런 식이면 월급 못 맞추니까 빨리 끝내라’고 말해요. 몸이 하나인데 빨리 끝낼 수가 없잖아요. 사람이 하나 있으나 둘 있으나 위험한 곳인데 더 위험해졌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거제, 통영, 울산 등 5개 지역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 500명을 설문 조사해 펴낸 〈2016년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 및 연구보고〉에 따르면 물량팀의 건강과 안전은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청노동자들은 주로 노동 강도가 높거나 산재 발생 위험이 높아 기피하는 업무에 배치된다. 특히 물량팀 노동자는 짧은 기간, 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위험에 훨씬 많이 노출되고, 혼자서 여러 작업을 도맡기도 한다. 설문조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25%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울산에서 만난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노동자는 “현장으로 들어갈 때 목숨을 맡기고 끝나고 다시 찾아 나오는 거죠. 열 달 동안 1명씩 죽었어요. 한 달에 200만 원도 못 받으면서 그 위험한 곳을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불황을 맞아 전체 물량은 감소했지만, 노동강도가 강화됐다고 느낀 노동자도 절반 가까이(46.64%) 됐다. 김중희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사무국장은 “노동강도는 실제로 세지고 있습니다. 돈은 없고, 물량은 얼른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를 쪼고 있는 것이죠. 관리자들의 통제 역시 세졌습니다.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그렇게 압박을 받으면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훨씬 높죠”라며 우려했다.
그나마 여전히 일하는 하청노동자는 안전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듯했다. 잔업과 특근이 사라진 점을 가장 큰 타격으로 생각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급여가 낮은 수준이 아니었던 이유는 장시간 노동에 있었다. 시급은 최저시급에 가까웠지만, 잔업과 휴일 특근 등으로 급여의 상당 부분을 채웠다. 기본급의 150% 정도가 됐던 상여금도 낮은 기본급을 벌충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조선소 불황이 닥치자 상여금이 가장 먼저 삭감됐다. 잔업과 특근도 없어지며 한 달에 200만 원을 벌기가 힘들다는 게 하청노동자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일반 사무직엔 잔업, 특근은 피해야 할 노동조건이지만 하청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평택 고덕의 반도체 공장으로 옮긴 Y 씨는 현재 다니는 공장이 기본 일당도 높지만, 야간 노동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 10시 30분. 3명이 부대끼며 산다는 원룸에선 잠만 자고 나온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하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였지만, 일을 많이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거제의 한 인력사무소에서 STX 1차 하청업체에 다니던 M 씨를 만났다. STX조선해양 진해 조선소 가동률은 기업 회생절차에 들어간 후부터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일거리가 없어진 M 씨는 체당금을 받고 지난 5월에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온 직후 2~3개월은 지인의 일을 도와주다가 몇 달 전부터 원래 사는 거제의 인력사무소를 찾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7시에 시작하는 일을 위해 새벽 5시 30분 전에 인력사무소에 나와 일을 기다린다. M 씨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활동에 대해 “손을 다 놔버렸다”고 표현했다. 지난 7, 8년간 조선소에서 절단, 가공 일을 해왔지만 건설 일용직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게 대우조선 때문”이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가 일했던 진해와 거제는 조선소 위주로 돌아가던 도시였는데 이제는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 거제 고용센터를 찾은 D 씨도 조선업이 이렇게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대우조선 사태 때문이라며 화를 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2차 사내하청에서 물량팀으로 일했다. 물량팀 절반가량이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2014년 민주노총 경남지부가 발표한 〈거제통영고성 중소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한 물량팀 노동자는 54.6%에 그쳤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발표한 〈2015년 조선업종 물량팀 노동조건실태 연구〉에 따르면, 4대 사회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응답한 물량팀 노동자는 61.9%를 기록했다. 그나마 D 씨는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 14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우조선 경영진들이 했던 짓을 읊으며 결국 노동자만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크게 걱정했다. “나는 조선소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어가요. 나이도 정년이 훌쩍 넘었고 몇 년 전 직영에서 일하다 나왔을 때 받았던 퇴직금도 있죠. 그런데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젊은 사람들, 비축한 게 있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더 걱정이지. 큰일입니다. 진짜 큰일이에요.”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지금 대책이랄 게 있어요? 무슨 발표를 하고 그래도 제일 밑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슨 혜택을 주는지도 몰라요.”
실제로 정부의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6월 30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조선업 구조조정 대응 고용지원 및 지역경제 대책’을 발표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해 고용을 지속하게 하고, 실직한 노동자들의 구직을 돕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10월 25일 조선소 원하청 관계자들이 모인 구조조정 저지 기자회견에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고용지원금을 굉장히 큰 폭으로 확대했지만 그 혜택을 받은 하청노동자가 별로 없다는 게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타났다. 유급 휴직으로 돌리면 정부가 75%, 사용주가 25% 부담해야 하는데 실제 사내하청 협력업체들은 25% 낼 돈도 없어 유급 휴직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인력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거제에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민원을 넣을 게 있어서 거제 경찰서에 갔더니 삼성중공업, 대우조선에서 들어온 민원, 고소가 엄청난 거예요. 보통 일주일이면 모든 게 처리가 되는데 한 달 안에 처리가 안 된답니다. 협력업체 줄 도산하는 과정에서 월급 안 나오면 직원들이 고소도 하고 민원도 넣고 하잖아요. 거제도 생긴 이래 최고랍니다.”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지회는 몇 안 되는 하청노동자가 모인 노조다. 이 중 조합원 6명이 100일 넘게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업체 폐업 방식으로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주장한다. 조선업 불황을 계기로, 노조부터 솎아내겠다는 원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하청지회에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자 원청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6월부터 조합원을 회유하고 협박해 노조 탈퇴를 종용하더니 7월부터는 조합 핵심 간부가 속한 업체들을 폐업시켰다. 업체 폐업은 하청노동자가 겪는 흔한 일이지만 고용승계가 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엔 노조원들을 싹 빼고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김원종, 김경섭 씨가 일하던 현창산업이 폐업하고 새로운 업체가 들어왔지만, 두 사람은 일할 수 없었다. 그들이 받은 문자 한 통에 그 이유가 있었다.
‘영진 XXX 대표님 연락받았는데, 다른 직원들 전부 타업체로 가고 잔여 직원들도 면접 요청도 없고 해서, 두 분만 입사하기는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현창산업 직원은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죄송하다는 연락이 왔네요(08.25).’
자존심이 상해 고용승계를 못 해주겠다는 대표의 말은 진심일까, 원청의 입김 탓일까?
제 발로 나가게 하는 구조조정
대우조선 1차 하청업체에서 A급 용접사로 대우받던 최인송 씨는 실업급여로 생활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13년 정도 일했던 최 씨는 지난 4월 스스로 사표를 썼다. 회사가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최 씨더러 나가달라고 했다. 실제 물량도 감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 악화에 따른 해고로 처리됐다. 최 씨가 다니던 업체도 불황의 여파로 자꾸 사장이 바뀌었고 고용승계를 반복했다. 최근 1년 동안 사장은 다섯 번 바뀌었다. 마지막 업체에선 기능장까지 갖춘 최 씨를 부담스러워했다. 최 씨는 “나이 많은 나를 부려먹기도 힘들고, 원청에서 돈이 나오는데 나를 빼고 초짜를 채우면 그만큼 돈이 남잖아요”라며 업체가 자신을 밀어냈던 이유를 설명했다. 사측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던 중 생각지도 못한 불량이 하나 나왔다. 회사는 계속 꼬투리를 잡았고 용접과 상관없는 부서에 최 씨를 배치하고 업무에 따라 임금도 깎았다. 결국 최 씨는 4월부로 일을 그만뒀고, 용접학원에 다니며 재취업을 준비 중이다. 재취업은 ‘급여를 맞춰주기 힘들어서’, ‘나이가 많아서’ 등 여러 이유로 어려웠다. 최 씨는 조선소 기량자들이 이런 식으로 많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퇴사 압박으로 자살에 이른 노동자도 있다. 지난 5월,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성우기업 소속 노동자 정 모 씨는 사표를 쓰고 살고 있던 아파트 욕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성우기업은 정 씨에게 보직변경, 직책강등, 임금삭감 등의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는 어디에?
해고된 노동자 중 일부의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하청 노동자는 거제엔 남은 희망이 없다고 느꼈고, 어디론가 살길을 찾아 떠났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일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 여겼고, 그들은 별말 없이 회사를 나왔다. 묻고 물어 해고노동자를 찾아도 “할 말 없다”고 하거나,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연락도 끊고 어디론가 잠적했다. 최인송 씨는 “근황을 알고 서로 대응을 하면 좋을 텐데 자살하거나,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연락이 돼요. 손발 묶어서라도 설득시키거나 돕고 싶은데 연락이 안 돼서…”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강병재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조직위(하노위) 의장은 현장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물량팀 제도 자체가 권리의식이 희박합니다. 우리 하청노동자끼리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않아요. 원청에서 노무 관리를 철저하게 해 온 탓이죠. 하노위 활동하던 사람들 거의 다 해고됐습니다. 노동자의 기초적 권리에 대해 무시해버리니 무법천지라 할 수 있죠. 전체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된 건데 요즘은 유인물 받는 것도 꺼립니다. 정규직 노조나 하노위에서 예전에 유인물을 만들면 점심시간에 들고 보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유인물 들고나오는 것 자체를 의식하고 있어요. 질 안 좋은 반장들도 많이 생겨서 그런 행동들을 탄압하고 있고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 거제 통영 고성 지역에서 하청노동자들의 노조가 조직되고 있다. 대우조선 해고노동자 김동성 준비위원장이 총대를 멨다.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스스로 권리를 찾지 않는 이상, 지금 벌어지는 구조조정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0월 29일 거제로 향한 희망버스는 이들의 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한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