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호 표제는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이다. 12월인데 당연히 겨울이 오지 뭔 쌀로 밥 짓는 소리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미국 HBO사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명대사다. ‘winter is coming’은 <왕좌의 게임>에서 왕국의 북부를 다스렸던 주인공 스타크 가문의 가훈이다. 왕국을 지키는 북쪽 방벽 너머 죽음과 겨울을 몰고 오는 ‘아더(백귀)‘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의미다. 트럼프 당선 직후, <왕좌의 게임> 원작자인 조지 마틴이 자신의 글에 ‘winter is coming’이라고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이제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하니 그에 대비하라는 뜻일 게다.
박근혜 정권퇴진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5차를 넘었다. 집회 차수가 늘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나왔다. 100만, 150만을 넘어, 집회 시위 참가자 국내 기록을 매주 갱신하고 있다. 촛불은 아직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하야나 탄핵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12월에 접어들었다고 겨울이 오고 있다니….
직선제 쟁취와 독재 타도를 외쳤던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전두환 군사독재도 막을 내리고 대통령 직선제도 시작됐다. 하지만 개헌은 여야 정당 간 협상으로 축소되면서 이른바 민주헌법은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지금의 평화시위론과 같은 선거혁명론에 눌려 사회의 변화도 추동하지 못했다. 그리고 뒤이어 대선에서 노태우 정권이 수립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6월 항쟁의 주역들과 노동자와 시민은 모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2016년 정권 퇴진 촛불집회는 어떨까? 이제 불가피하게 퇴진과 탄핵에 이어 개헌 정국도 도래할 모양이다. 하지만 개헌은 벌써부터 정치권 정쟁의 대상이 됐고 우리 삶의 조건을 제대로 반영하기는커녕,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치고 있다. 곧이어 대선도 치러야 하지만, 이대로라면 중국 변검처럼 새누리당에서 얼굴 가면 하나 바꾸고 박근혜 때를 벗겨낸 보수정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개헌과 대선, 역사는 고약하게 꼭 두 번 반복한다. 독일 출신의 어느 철학자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희극으로….
겨울이 오고 있다. 100만이 넘게 거리로 나섰던 불만의 가을을 지나 어쩌면 다시 반동이 될 겨울이 오고 있다. 100만, 200만 명이 거리로 나왔으나 ‘평화 시위’ 프레임에 갇혀, 차벽에 갇혀 촛불 행진이 멈춰 섰던 당연한 결과다. 이제 이 판을 주도하고 고육계를 쓰면서까지 보수를 재편하고 개헌을 통해 보수정권을 재창출 하려 하는 ‘백귀’들이 모습을 드러낼 참이다.
젠장, 어떻게 미드 제목도 <왕좌의 게임>이란 말인가. 대선을 치러야 하는 우리 처지를 이미 예언이라도 했단 것인지. 그래서 ‘winter is coming’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겨울을 대비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곧 진정한 승부가 시작된다는 의미기도 하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이 열어준 공간에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쟁취를 위해 7월부터 튀어나왔다. 역사적인 노동자 대투쟁도 그때 그렇게 시작됐다. 2016년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었는가. 방벽 넘어 백귀들과의 대전은 이제 시작이다. winter is coming. (워커스 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