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퀸 효과’라는 것이 있다. 주변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제자리에만 머물려고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진화의 경쟁 또는 공진화(co-evolution)라 부르고,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쟁 없는 경제는 죽은 경제’라면서 ‘레드 퀸’ 효과를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힘없는 영양이 살기 위해 빨리 뛰어 도망가는 것으로 진화했다면, 치타도 영양을 잡아먹기 위해 더 빨리 뛰는 것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도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빨리 변하니 여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친 듯이 앞으로 달리고 경쟁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레드 퀸 효과는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레드 퀸 효과를 놓고 경쟁과 혁신(진화)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어느 자본주의 경제학자나 진화론자의 발상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성장을 위한 성장, 경쟁을 위한 경쟁은 암세포의 논리와 같다. 무한 증식하고 성장하고 발전하지만 결국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아프리카 영양은 치타에게만 잡아먹히는 것이 아니라 사자에게도 잡아먹힌다. 사실 영양이 빨리 뛰든 아니든, 잡아먹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레드 퀸 효과는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 잡아먹는 것을 정당화 하는 이론일 뿐이다.
레드 퀸 효과는 쉽게 말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에서 위로 뛰는 것과 같다. 한 참을 뛰어도 제자리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올라가려면 레드 퀸의 조언처럼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문제는 이런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으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선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아무리 피 흘리며 달려도 삶은 제자리다.
그러나 레드 퀸의 숲은 한쪽 방향만 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다. 세상에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만 있는 게 아니다. 반대 방향이 존재한다. 다른 쪽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기만 한다. 그 에스컬레이터에는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 애비 잘 만난 덕에 재벌 총수가 되는 이재용 같은 이들이 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위로 올라가고, 약간만 걸어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레드 퀸 사회라기보다는 위아래 양 방향으로 고정돼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사회’다.
해법은 간단하다. 첫째, 내려가고 올라가는 속도를 줄이자고 할 수 있다. 보다 안전한 속도로, 경쟁을 완화시켜 달라고. 그랬더니 사람들이 계속 더 빨리 위로 올라가려고 또 달리기 시작한다. 길은 막히고 그 사람들끼리 다시 경쟁을 하게 된다. 둘째, 다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세우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면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갈 수 있다. 셋째, 더 좋은 해법은, 우리가 가는 방향에 맞게 에스컬레이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수백만이 거리로 나온 퇴진 촛불 이후 이 에스컬레이터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항상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워커스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