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입, 반기문 UN 사무총장 한국에 오다
[워커스 28호]구심력 약화하는 유엔
2011년 3월 21일, 아랍연합 회의 참석차 이집트 카이로에 들른 반기문 유엔(UN,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맞은 건 성난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사흘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내전에 대해 ‘시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사 개입을 승인하고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데 항의했다. 격렬한 시위를 피해 반 총장은 경호대에 둘러싸여 간신히 건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리비아는 수천 명이 사망하는 내전을 겪고도 여전히 단일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뿐 아니라 종파 간, 부족 간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도 프랑스 공군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이유로 리비아 영내에 진입해 폭격할 만큼 상황은 불안정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연임한 10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국내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화제가 되면서 국제사회도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미 반기문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크지 않다. 그가 거대한 촛불이 켜진 한국사회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만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이라는 출세주의적 평은 여전히 입에 오른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의 유엔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인권의 이름으로 승인한 전쟁들
반기문 총장은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고별연설’을 했다. 2007년 1월 1일 취임한 이래로 만 10년 만이다. 그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유엔의 원조를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을 강조하며,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유엔의 힘으로 자란 ‘유엔 어린이(UN Child)’”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 중 세계 어린이들의 현실은 더 열악해졌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물론 성소수자 권리 증진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과 같이 반 총장의 공으로 꼽히는 성과도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은 주요 지역에서 벌어진 미국과 서구의 전쟁을 ‘평화와 인권’의 이름으로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막중하다.
반기문 총장이 취임하기 전인 2002년. 유엔은 미국 부시 행정부가 당시 이라크 후세인 정부가 대량학살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유포하며 착수한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일방적으로 승인했다. 그리고 2007년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뒤, 유엔은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 “사형제는 각 나라의 사안”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유엔은 1989년, 이미 사형제도 폐지를 결의한 상황이었다. 또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묵인했다.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비극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현지 다양한 정파와 계층을 탄압하면서 집권했지만 유엔은 이 역시 방조했다. 그뿐 아니라 반기문의 유엔은 아랍의 봄 여파로 일어난 ‘리비아 사태’에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승인해 끝없는 내전으로 비화하는 데 일조했다. 시리아에 대해서도 무력 충돌을 방조했다. 그 후 반기문은 일관되게 시리아에 군사적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정치적 합의를 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유엔의 어린이’, 반기문이 유엔에 연임하면서 어린이가 세계 난민의 약 절반을 차지할 만큼 현실은 처참해졌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세계에서는 6,530만 명이 난민이 존재하는데, 어린이 난민의 수는 3,000만 명에 가까웠다. 또 전체 난민 수는 지난 5년 동안 50%가 늘었고, 어린이 난민 수는 75%가 늘어 어린이들의 여건이 훨씬 더 열악해졌음을 알 수 있다.
세계 곳곳서 논란 일으키고, 유엔 내부의 노동권은 약화
반기문 총장은 이 모든 문제를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대표적으로 아이티에서는 UN 평화유지군이 유발한 콜레라에 대한 책임을 끝내 부인하다 최근 퇴임을 앞두고서야 이를 인정했다. 아이티의 콜레라는 2010년 10월 이곳에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던 네팔 부대에서 발병해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 콜레라 창궐로 지난 7년간 아이티에서는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반기문 총장은 이 때문에 지난 10월 허리케인 매튜로 약 1천 명이 사망한 아이티 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성난 주민들의 돌팔매를 맞아야 했다.
또한 평화유지군이 현지 여성과 어린이를 성적으로 이용한다는 논란이 계속 터져 나왔지만, 유엔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소년 6명이 평화유지군에 성폭행당했다는 증언이 나온 뒤, 공식적으로 40건 이상의 피해사례가 나왔다. 9세 전후의 이 소년들은 프랑스 출신의 평화유지군을 상대로 유사성행위를 하고 그 대가로 돈과 식료품을 구했다고 밝혔다. 또 UN 감사실(OIOS)에 따르면, 아이티의 경우 2014년 조사에 응한 231명의 여성이 평화유지군과 정기적으로 성매매했다고 밝혔다. 평화유지군은 숙소, 아기 용품, 의료비 등이 부족한 여성에게 돈이나 전화기 등 물품을 건네며 성적인 대가를 요구했다.
유엔 운영에서도 잡음은 계속됐다. 2013년에는 반 총장이 유엔 직원노조(SCC)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하면서 세계적으로 논란이 됐다. 애초 유엔총회가 유엔 직원노조에 관한 규칙을 수정하라고 지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는데, 반 총장은 이 지시에서 더 나아가 단체협상권을 축소해버리고 협상도 중단했다. 유엔헌장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내외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후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내부 고발자에게는 보호가 아닌 해고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 제임스 와서스트롬은 2007년 코소보에서 상관의 비리를 고발했지만, 조사 보고서는 공개되지도 못했고 대신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이후 해고 무효 소송에서 이겼지만 내부 고발자에 대한 유엔의 실질적인 개선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구심력 약화하는 유엔
반기문의 유엔은 한반도에도 인권의 이름으로 갈등의 불씨를 지펴왔다. 2005년부터 12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을 추진해온 유엔은 올해는 3년 연속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북한 당국을 회부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은 애초 양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교훈으로 인권과 국제 평화를 위한 국가 연합체로 설치됐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나 식량농업기구(FAO) 등 전문기구들의 역할이 인권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엔은 현재 16개국에 12만 명의 군과 경찰을 파견하는 등 몸집과 역할도 커졌다. 그러나 유엔은 점점 더 미국의 이해에 종속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평화유지군은 각국에서 미국과 서구의 용병 역할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또 미국은 평화유지군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 더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엔의 구심력이 약화한 모습도 보인다. 단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는 아프리카 국가의 탈퇴 도미노에 이어 브라질과 러시아까지 탈퇴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분명 이들 문제는 반기문 총장 개인만이 아닌 세계의 현실이자 유엔의 모습이다. 하지만 유엔의 어린이, 반기문이 유엔에 있던 1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더욱 첨예해졌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요지 알레포를 함락했지만, 러시아, 이란, 미국,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등 세력 간의 이해다툼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