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한진(한림대 사회학과)
[편집자 말] 14일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원유 생산시설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번 공격은 사우디 일일 산유량은 절반 밑으로 떨어졌으며 국제 유가도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이번 공격은 예멘 반군이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는 지난 5년 간 사우디가 주도해온 예멘 내전과 수만 명의 희생자와 국내외로 쫓겨간 수백 만의 난민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 이란 압박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 달 전에도 유조선 나포 시비로 논란이 일었다.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이란을 둘러싼 정세와 그 배경을 짚어본다.
유조선 사태
5월 12일 4척의 상선 피격, 6월 13일 오만만에서 2척의 유조건 피격, 6월 20일 미국 정찰용 드론 피격, 7월 4일 지브롤터 해협에서 이란 유조선 나포, 7월 18일 이란 정찰용 드론 피격, 7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국 유조선 나포.
최근 페르시아만 등지에서 이란과 연관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7월에는 영국 국적의 유조선이 이란 혁명수비대에게 나포됐는데, 이란 측은 억류 이유로 항로 이탈, 다른 상선과의 충돌사고, 송수신장치 소등, 석유 밀수 혐의 등 해양법 위반을 내세웠다. 하지만 영국령 지브롤터 해협에서의 자국 상선 나포에 대한 보복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직전에 발생한 이란 선박 그레이스 1호 억류에 대해 영국은 이 배가 EU의 제재대상국가인 시리아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의 요청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최근 지브롤터 법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억류해둘 법적인 근거가 없다면서 이란 선박의 석방을 결정했다. 이란이 EU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EU의 제재조치와 무관하며, 이 선박이 혁명수비대와 연관된 선박이어서 문제라는 미국의 주장 역시 혁명수비대가 EU나 영국 또는 지브롤터 법에 테러리즘 조직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당초 이 나포를 사주한 것으로 지목되는 미국에게는 치욕적인 사건이 됐다.
미국
이번 사태로 초래된 페르시아만 지역의 갈등은 전적으로 미국이 계획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작은 2018년 5월 트럼프의 핵협정(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선언이었다. 그에 뒤이은 경제제재조치 재개, 페르시아만 지역 군사력 증강 등의 움직임이 이번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보를 통해 미국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중동과 중동 석유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협정보다 자신의 전략이 이란 핵문제 해결에 더 나은 방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마무리 짓지 못한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에게 큰 정치적 성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1) 현재 트럼프는 지난 2년여 동안 자신이 세계 각지에서 시도한 일들의 과실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가장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는 북한 문제조차 적어도 지금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찾기는 힘들다. 시리아에서도 알 아사드 정권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유럽
최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 보호를 목적으로 한 연합함대 결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 주요 국가들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이 지역으로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안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미국에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미국의 핵협정 탈퇴를 비난했고 이란과의 교역을 지속할 독자적인 방안을 강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의 결과는 극히 상징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이란과의 교역 품목이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한 유럽의 무기력함 또는 형식적인 대응은 최근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란 유조선 나포에 대해 영국은 지브롤터 당국이 독자적으로 진행한 작전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이란은 보복조치로 페르시아만을 지나던 영국 국적 유조선을 나포했다. 영국은 페르시아만에서 자국 상선의 안전보장을 위한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사태가 진행되는 와중에 총리직을 맡게 된 보리스 존슨은 미국의 보호에서 해결책을 찾게 된다. 독일 역시 선명한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이란문제에서 외교적인 해결책을 주창해왔고 최근 미국의 연합함대 참여 요구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독일 국방장관은 유럽 차원의 독자적인 작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미국 주도의 작전 참여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2)
호르무즈 해협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해협은 고대부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조여진 목의 형상을 지닌데다가 해협 봉쇄가 자주 거론되면서 세계를 향한 이란의 위협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란이 중동과 남유럽 지역의 중요한 일원이 되는 통합의 기제 역할도 해왔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세계 원유의 6분의 1, 액화천연가스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란과 서방세계 간의 긴장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가장 좁은 지역의 경우 폭이 21마일에 불과한데다 곳곳에 배들이 다니고 있어 운항이 쉽지 않다. 안개도 통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 바다가 위험해지면 서방세계 전체가 석유수급을 위협받을 수 있다”.(3) 이 해협이 위험한 것은 지리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이곳은 무력충돌이 주기적으로 발생한 지역이다.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는 500척 이상의 배가 손상을 입어 ‘유조선 전쟁’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먼저 이라크가 이란의 해상유전과 유조선 등을 공격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러한 공격을 통해 이란의 극단적인 조치, 즉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유도하고 이를 빌미로 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노렸던 것으로 해석됐다. 양국 모두 경제의 석유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유조선 공격을 택한 측면도 있다.
봉쇄
원유를 수송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송유관을 통하거나 유조선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두 방법 모두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피해는 미미했다. 그래서 이 사건들이 유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4)
현재 유일한 대안은 사우디아라비아를 가로질러 홍해에 이르는 거대한 송유관이다. 그러나 운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 이란은 미국의 군사적인 우협이나 도발이 있을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언급해왔다. 예를 들어 1984년 유조선 전쟁 당시 폐쇄된 적이 있으며 2011년 미국과 이란이 전쟁 직전에까지 갔던 상황에서 당시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은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란이 최근 다시 이 카드를 꺼내든 것은 미국이 이란 핵협상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직후인 2018년 7월이었다. 그러나 이란 자신도 봉쇄가 불가능한 선택임을 잘 알고 있다. 무자비한 공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주 수입원인 석유도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전쟁
“전쟁은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전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요소 중 4분의 3이 불안감을 주는 안개 속에 있다. (…) 전쟁은 우연의 영역이다. 어떤 인간의 행위도 이만큼 우연에 자리를 부여하지 않는다.”(클라우제비츠)(5)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접하며 가장 많이 떠올리는 질문은 아마 전쟁이 실제 일어날까 하는 것이다. 양측의 언사나 행동을 볼 때 전쟁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조치는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가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현대사회에서 전쟁은 더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다만 유사한 경험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9·11 테러 이후 중동지역에서 전쟁은 더욱 쉽게 일어났고 더 이상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특별한 조건을 갖춘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게 됐다. 보다 많은 곳에서 보다 쉽게 일어나고 쉽게 종결되지도 않는다. 중동지역에서 발발한 전쟁을 살펴보면 공히 심각한 사회혼란의 상태에 있는 지역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전쟁으로 사회의 분열이 심각했던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분열을 경험한 팔레스타인, 종교・종족 간 갈등으로 점철된 레바논, 지역 간 갈등이 심했던 리비아 등 심각한 사회분열 상태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물론 내적인 상황은 상당부분 외부세계의 압력과 개입의 결과이기도 했다. 현재 이란의 경우도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와 함께 민중의 저항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지만 민중의 이반이나 사회의 분열이 전쟁이 발발했던 지역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전쟁이 나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혁명수비대의 위력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란의 군사력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 당시 국제사회가 이라크를 세계 4위의 군사대국이라고 평가했지만 불과 며칠만에 연합군의 폭격에 무너졌던 경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다만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영해로 매우 익숙한 지역이다. 승리하지는 못하더라도 미국 역시 매우 힘든 싸움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6)
이란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승리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는 심리적인 차원의 승리를 거두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역사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다. 우리는 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어떤 나라의 역사보다도 오래 존재했던 우리 자신의 제국(페르시아제국)을 포함해서 말이다.”
지난 7월 22일 ‘영원한 이란’이라는 테마를 담은 모하마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한 이 말은 이란의 결연한 태도와 함께 대미항전의 역사적 정당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란이 가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석유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란의 석유가 경제적인 무기로 쓸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군사력 역시 미국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대적할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보다는 미국과의 긴장상태를 가능한 한 오래 버티는 것이 정권 차원에서 이란이 취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이란은 이러한 저항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당연히 강대국과의 대치와 외부의 경제제재가 장기화되면 민중의 상황은 피폐해진다. 그러나 정권의 굴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문제는 외부의 제재가 정권보다 민중들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정권의 향배에 쏠려있는 논의가 반쪽짜리인 이유이다.[워커스 58호]
[각주]
(1) https://www.les-crises.fr/iran-etats-unis-aux-racines-de-la-crise-par-eric-juillot/, 2019년 8월 20일 검색.
(2) https://www.wsws.org/en/articles/2019/08/10/germ-a10.html, 2019년 8월 19일 검색.
(3) https://www.francetvinfo.fr/monde/usa/comment-le-detroit-d-ormuz-est-devenu-le-theatre-des-tensions-entre-les-etats-unis-et-l-iran_3542511.html, 2019년 8월 20일 검색.
(4) https://www.iris-france.org/137462-le-detroit-dormuz-est-une-artere-vitale-pour-le-marche-du-petrole/, 2019년 8월 20일 검색.
(5) 엄한진, 2013, 「새로운 전쟁으로서의 중동전쟁」, 『아세아연구』 56권 4호: 342쪽.
(6) https://www.lorientlejour.com/article/1175289/detroit-dormuz-desequilibre-des-forces-et-guerilla-navale.html, 2019년 8월 20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