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들의 투쟁이 부른 기억들
3월부터 시작된 홍콩 시민들의 이른바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워커스》도 홍콩 시민들의 투쟁 상황을 잘 소개한 바 있다.¹ 6월 시위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150만의 홍콩 시민이 참여했다. 결국 홍콩 당국이 한발 물러나긴 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완전한 법안 폐기와 시민을 폭도로 규정한 것에 대한 사과, 연행자 석방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위해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려 2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이 시위에 위기감을 느낀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는 8월 들어 강경진압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강경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홍콩 경찰의 인권침해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 역시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150만 명이 참여로 상징되듯, 홍콩 시민들의 민의는 이미 증명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런 민의를 담지 못하는 일국양제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인민해방군 투입까지 시사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특히, 8월 5일 총파업 이후부터, 홍콩 경찰의 무차별적인 최루탄 난사와 폭력 진압, 그리고 폭력배 개입으로 인해 시위대 역시 방어를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홍콩의 상황은 한국 활동가들이 겪었던 여러 경험과 기억들을 소환한다. 100만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홍콩 거리를 가득 메웠을 때는 박근혜를 탄핵시킨 것처럼 홍콩 시민들이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홍콩 시위대 사이의 폭력-비폭력 논란은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의 논쟁과 유사했다. 그리고 지하철역까지 경찰이 침탈해 최루탄을 난사하던 모습은 1990년대 한국에서 흔했던 시가전에서의 기억을 불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홍콩 시위대가 성조기와 유니온 잭을 들고 나오던 모습은 최근 태극기부대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홍콩의 상황은 홍콩에 익숙한 한국 활동가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홍콩은 아시아 지역 사회운동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 오면서 한국 활동가들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홍콩에 자리 잡은 아시아 인권위원회²(Asia Monitor Resource Center)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홍콩에서 활발한 지역적 운동의 교류는 있었어도 경찰에 맞서는 대규모 시위는 홍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러나 2003년 홍콩 WTO 투쟁에 참여했던 한국 시위대의 투쟁은 홍콩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경찰 저지선과 맞서고, 시위장에 진입하기 위해 바다를 수영하는 한국 시위대의 모습에서 홍콩 청년들과 활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뒤에 흔들리고 있는 일국양제는 2014년 우산혁명을 거쳐 결국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수반되는 시위를 넘어 제2의 천안문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어떻게 홍콩 시민들과 연대해 나갈 것인가
지난 8월 8일 광화문에서는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기자회견³이 있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공동 성명에는 무려 92개 한국 시민 사회단체들이 연명했다. 이러한 관심은 이례적인 것으로 그만큼 한국 시민사회가 홍콩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왔고, 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나타내는 것 이었다. 사실 6월부터 홍콩 시위가 본격화되면서 홍콩 시민들의 투쟁에 연대하자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다만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나서고 한국에서도 홍콩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연대 행동이 조직 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기자회견 형태의 연대행동은 시위가 본격화 된 지 2개월 만에 열리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홍콩 시민들의 투쟁에 공감하고 연대하겠다는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과 의지는 크지만 실질적으로 홍콩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여건에서 중국 정부가 한국 시민사회의 비판 여론을 얼마나 의식할지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로 하여금 홍콩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게끔 압력을 넣는 방안도 있다. 실제로 홍콩 시위 발발 후, 보수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친중반미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목소리를 내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막상, 보수 정치권이나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이 홍콩 시위 관련하여 성명을 포함하여 연대행동을 했다는 뉴스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한일 무역 분쟁의 상황에서 중국에 민감한 문제를 한국 정부가 제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한국 외교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낸 사례 자체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결국 한국 시민사회 차원에서 홍콩 시민들과 연대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경찰폭력에 대해서 아시아 지역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아시아 인권위원회는 공동으로 한국을 방문해 경찰 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이에 대한 결과발표 및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⁴
이 사례를 근거로 한국의 시민사회가 홍콩 경찰의 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단을 파견하고 이 결과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조사단 파견 논의가 본격화 된다면 한국뿐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와 공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하거나 아니면 국제인권단체들과의 공동조사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콩 활동가들을 한국에 초청하거나 제3국에서 현재 투쟁에 대한 전망을 포함해 경험들을 공유하고 지역적 차원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동안 홍콩 시민사회는 앞장서서 한국의 투쟁에 연대해 왔다. 삼성의 직업병 문제에서부터 노조탄압과 경찰 폭력에 이르기까지 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 앞에서 홍콩 활동가들은 항상 한국 사회운동의 요청에 응답해 주었다. 이러한 홍콩 활동가들을 비롯한 홍콩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 앞에, 그리고 어쩌면 중국 군부의 무력진압 위험에 놓여 있다. 어떤 사안보다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4220
2) http://www.humanrights.asia/ (Asia Human Rights Commission)와 아시아노동정보센터 https://www.amrc.org.hk/
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52444&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9T0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51756465&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