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장◦◦을 징역 4년에 처합니다.”
지난 6월 30일, 춘천지법 제2형사부(노진영 부장판사)는 지적 장애 3급 여동생을 죽인 장 모(60) 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장 씨는 3개월 전, 동생을 죽이고 불을 질러 자살 시도를 하기 전까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뇌병변 장애인 동생을 돌봐 왔다. 사건 이튿날 동네 주민들로부터 발견된 장 씨는 심한 화상을 입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식을 되찾은 후엔 범행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고, 교살 증거인 분홍색 보자기도 현장에 있었다.
피고 장 씨의 말을 검사의 심문, 최후 변론 과정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자살을 준비했던 몇 가지 행동은 기억이 나지만 사건 당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장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동생이 죽은 것도 몰랐다. 화상으로 병원에 옮겨진 후 깨어나서 경찰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깨어나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딸 같았다” 던 동생은 죽었고, 자살은 심한 화상을 남긴 채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합니다.” 살인죄는 무기 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검사는 장 씨에게 7년을 구형했다. 장 씨의 사정은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의사 표현이 어려운 장애인을 죽였고, 피해 회복 방법도 없기 때문에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국가의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를 비관해 이런 살인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을 위한 신체 활동, 청소 세탁 등 가사 활동을 지원하고 복지사가 정기적으로 상담과 방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복지 서비스가 있는데 자신의 처지만을 비관하면서 상태가 악화하는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주민의 호의를 거절했다”며 피고의 잘못임을 강조했다. 검사는 구형을 하면서 “배심원 여러분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매우 관대한 처분을 내릴 수 있겠으나 이는 매우 쉬운 결정이 될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고 죽어 간 피해자를 생각해야 한다” 고 말했다.
장 씨의 변호사는 이 사건이 전형적인 ‘간병 살인’ 이라며 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일본 같은 초고령화 국가에서 오랜 간병으로 심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사람이 선택하는 간병 살인은 사회적 고민거리다. 통계에 의하면 간병을 시작한 지 1년 이내에 살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이 어려워지고, 치료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심화하는 등 급격한 생활 환경의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장 씨의 경우, 1년 사이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치매를 앓았다. 치매에 걸린 노인과 동생 간병은 전적으로 장 씨의 책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애인 동생과 처음 맞는 겨울, 보일러까지 고장이 났다. 그의 남동생은 최근 장 씨가 자주 술을 마신 데엔 몸을 덥히기 위한 이유가 클 거라고 봤다.
변호인은 장 씨의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의 일기장엔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다는 고백, 이불 빨래 등 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며 그가 해야 했던 일, 찾아오지 않는 동생들에 대한 원망, 먹고사는 괴로움 등이 서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재판은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9명의 배심원이 내놓는 유무죄 판단과 양형 의견은 재판부가 선고를 내릴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2008년 국민 참여 재판 도입 후부터 배심원 판단과 판사의 선고 결과는 상당히 비슷했다. 이 사건에서 9명 배심원 전원은 유죄라고 평결했다. 존귀한 인간의 생명을 침탈했고, 피해 회복 방법도 없는 중죄라는 것. 하지만 피고의 여러 상황을 봤을 때 감경 요소 역시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배심원 과반수가 징역 4년이 적당하다고 재판부에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대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워커스》는 지난 15호에서 장 씨의 사연을 다룬 바 있다(박다솔, 윤지연 기자, <불안정 노동이 산에 올랐다, 빈곤이 보였다>). 그가 살던 강원도 영월로 내려가 이웃 주민, 그의 형제를 인터뷰했다. 장 씨의 가난과 ‘계절직’ 일자리라는 불안정 노동에 대해 취재했다. 재판 과정에서 당시 기사엔 채 다루지 못한 사실들이 밝혀졌다. 그는 살인 사건이 있기 9일 전부터 식사를 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이날 재판엔 2명의 증인이 나왔다. 한 사람은 장 씨의 또 다른 여동생이었고, 한 사람은 장 씨를 관리했던 산불감시원 팀장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여동생은 장 씨가 원래 폭력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지만 여동생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장 씨의 남은 두 동생은 재판부에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형제들은 기구한 집안사를 탓했다. 어머니,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불행이 이번엔 큰 형과 죽은 동생에게 향했다고 생각했다.
산불감시팀장은 장 씨와 3년 전부터 알았고, 맨 처음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장 씨로부터 깊은 사정을 들은 적은 없지만 집에 장애인 동생이 있고, 동생 대소변을 받아야 하고, 때문에 빨래를 자주 해야 했다는 말을 언뜻언뜻 들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술을 자주 마셨다고도 말했다. 최근엔 동생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어 산불감시원 일을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장 씨에게 최후 진술 기회가 주어졌다.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가 오열하며 말했다. 검사는 가난한 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 서비스가 이미 구축됐다고 했지만 충분한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노동, 되물림되는 가난, 장애를 온전히 떠안는다면 또 다른 장 씨가 머지않아 튀어나올 것 같다.
(워커스18호 2016.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