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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바뀔 것이다

2016년 7월 15일Leave a comment18호, 진보생활백서By 양지혜

사진/홍진훤

글-양지혜/사진-홍진훤


지난 5월 12일, 월성 핵발전소 1호기에서 압력 조절 밸브가 고장 나는 사고가 있었다. 방사능 유출이 되지 않아 심각한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거대한 사고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월성 핵발전소 1호기는 1985년 가동을 시작할 당시 예상 수명이 30년이었다. 2015년에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었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작년 6월 10일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을 승인했다. 사고의 책임을 통감해야 할 그들은 바로 그 시각 또 다른 핵 사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의 건설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날 미래를 보았다. 월성 1호기는 원안위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선명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6월 23일, 원안위는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승인했다.

원래 고리는 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어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 지역으로 불렸다. 신고리 5, 6호기를 가동하면,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것으로 대한민국이 자신의 기록을 깨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다. 다수호기의 경우, 한 기에서 사고가 나면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나므로 대형 사고로 번지기 쉽다. 핵발전소가 많아질수록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이를 직접 목격했다.

5년 전이었던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는 진도 9.0의 강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에서는 4기의 핵발전소가 며칠에 걸쳐 폭발했다. 핵발전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덮었다. 전 세계적으로 핵에 대한 반대 여론이 퍼졌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에 응답해야 했다. 원안위가 그 응답이었다.

원안위의 초대 위원장은 강창순 서울대 명예 교수다. 그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에 더해 두산중공업 사외 이사, 한국수력원자력 자문위원을 맡는 등 오랜 시간 동안 핵 산업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소위 ‘핵 마피아’ 라 불리는 집단의 일원이다. 심지어 2004년 “주민 안전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며 서울대 안 관악산에 핵폐기장을 유치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점검하고 규제하는 위원회의 위원장 치고는 의심스러운 필모그래피다. 그러나 초대 위원장은 시작일 뿐이었다. 원안위의 대부분은 그간 핵 산업에 참여해 온 찬핵 인사들로 꾸려졌다. 이번 신고리 5, 6호기 신규 건설을 심의할 때도 김익중, 김혜정을 제외한 7인의 인사는 핵 마피아의 카르텔로 이어진 찬핵 인사였다.

원안위는 사실상 원자력‘진흥’위원회였다. 원안위는 단 한 번도 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2012년 고리 1호기 정전 사고가 은폐되었을 때도, 2013년 제어케이블 위조를 비롯한 각종 부품 비리가 터졌을 때도, 2014년 말 해커에 의해 월성 핵발전소와 고리 핵발전소의 각종 도면이 유출되었을 때도. 매년 핵발전소와 관련된 중요한 비리가 폭로되고 있음에도 원안위는 묵묵부답이다.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5년 만에 처음 지어지는 핵발전소가 될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성립된 원안위는 제 입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잊었으며, 국민의 안전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잊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8월, 센다이 핵발전소를 가동하며 핵의 역사를 재개할 것을 밝혔다. 또한, 피난민들에 대해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모든 지원을 끊어 버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피난민들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높아 고향에 돌아갈 15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핵발전소 사고에서 살아남았음에도 사회가 이들을 버린 것이다. 핵발전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 선택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절멸의 위기 속에서 간신히 숨을 붙들고 살아간다.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인 벨라루스에서는 2006년부터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핵으로 인한 희생을 개인적인 불행으로 치환하며, 핵의 역사는 그 명맥을 이어 간다.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를 선택한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2015년 고리 1호기에 폐로 결정이 내려졌다. 핵발전소의 설계 수명은 여태까지 30년이었다. 고리 1호기는 이 수명을 다했고 무리하게 수명을 10년 연장했다가 많은 한계에 부딪혀 가동 중단을 결정하게 됐다. 부산 지역의 고리1호기 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에서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주장하며 부산시청에서 농성하고 울산 시민 73.7%가 고리 1호기 재수명 연장에 반대하는 등, 주민들이 표출한 강력한 반대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지어진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이다. 신고리 5, 6호기의 가동 수명은 60년이다. 1970~1980년대 건설된 기존 핵발전소의 수명이 하나둘 마감되는 지금, 60년 짜리 핵발전소가 등장하려 한다. 우리는 개발 정권 때부터 명맥을 이어 오던 핵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끝낼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이윤을 위해 인간을 희생해 온 핵의 역사, 사람의 목숨이 헐값이 되는 성장주의 체제를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고 있다.

지난 6일 있었던 울산 5.0 강진을 통해 우리는 핵발전의 ‘선명한 미래’ 를 본다. 울산 지진의 진앙은 울산 동구 동역 52킬로미터 해역으로, 신고리 5, 6호기에서 약 6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만일 지진 규모가 지금보다 높았다면, 신고리 5, 6호기가 가동되고 있었다면, 재난 대응 시스템이 지금처럼 부실했다면 어땠을까? 울산 5.0 강진 이후 시민들을 뒤덮었던 공포는 ‘언제 핵발전소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일상에 대한 공포였다. 이러한 공포는 이미 여러 차례 현실로 일어난 바 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71년간 이어져 온 핵의 역사를 이제는 끝내자.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선명한 미래’를 거부하자. 신고리 5, 6호기에서 신울진, 영덕, 삼척으로 이어질 핵의 미래를 함께 막아 내자. 우리들의 미래는 바뀔 것이다.


양지혜-청소년 활동가로 살다가 스무 살을 맞았다. 청년초록네트워크, 청년좌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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