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유엔(UN) 사무총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UN 사무총장, 투명인간 UN 사무총장, 충청권 대망론의 주인공….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현재 가장 많은 수식을 달고 사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뉴스가 되고, 여야 19대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는 1, 2위를 다투며 이름을 올린다. 그가 태어난 충청북도 음성은 반기문 사무총장을 향한 애정이 상당하다. 2010년 반기문 사무총장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의 동상을 세웠다. 몇몇 독재자를 빼고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만드는 경우가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음성군은 반 사무총장의 생가와 ‘반기문 평화랜드’에 동상을 세워 그를 기념하고 있다. 음성군은 또 매년 4월 ‘반기문 전국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6월에는 ‘반기문 영어경시대회’를 연다. 지난달 27일 반기문의 도시, 충청북도 음성을 찾았다.
“완벽한 풍수지리… 큰 인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에요”
‘사드 배치 결사반대’. 음성 공용터미널에서 반기문 사무총장 생가까지 가는 길 곳곳에 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충북 음성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배치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음성군 남녀 의용소방대, 음성군 이장협의회, 음성군 지역발전협의회, 음성 밝은사회클럽 등은 붉은 고딕체로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알렸다.
‘그 언젠가는 삼신산의 정기가 발동하게 되면 이곳에선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커다란 사람과 커다란 부자와 커다란 장수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0개 이상의 사드 반대 현수막을 지나 도착한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행치마을). 반기문 사무총장의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 ‘삼신산(三新山)과 행치(杏峙)마을의 유래’가 소개돼 있다. 삼신산의 정기가 발동돼 세계적인 인물이 나왔다는 것일까. 상당1리 주민 일동은 2012년 10월 마을의 유래를 돌에 새겼다.
풍수지리는 반 총장의 생가를 설명할 때 종종 언급된다. 생가의 뒤쪽에는 보덕산이, 앞쪽에는 ‘한남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어 전형적인 명당의 요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반기문 기념관 관계자는 “이곳은 대한민국 어느 유명인의 생가와 묘소보다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장풍득수(藏風得水)라고,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고 병풍처럼 산이 감싼다는 뜻인데요, 총장님 생가가 바로 그렇습니다. 큰 인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생가 뒤편에는 반 총장님의 아버님과 할아버님의 묘소가 있는데 이곳 역시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힙니다. 후손들의 관운은 조상이 책임진다는 말 들어 보셨지요? 우리 반 총장님은 큰일을 하실 분이십니다”라며 ‘명당에 사람 난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생가 앞에는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반 총장의 방문 날짜가 새겨진 기념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는 곳이다. 2004년 1월을 시작으로 2006년, 2007년, 2011년 등 고향을 향한 발걸음이 잦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을 찾은 건 반 총장뿐이 아니다. 2008년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의 방문 사진이 걸려 있다. 반기문 전국마라톤대회를 기념하는 사진도 있다. 반기문 전국마라톤대회는 매년 4월 음성군 체육회와 음성군 생활체육회가 주최한다. 음성 출신 UN 사무총장 선출을 기념해 세계를 향해 꿈을 펼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개최한다고 밝힌 마라톤 대회는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반기문 총장 생가는 본래 초가삼간 흙벽 집으로 지어졌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통해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됐고, 2002년 3월경 철거됐다. 음성군은 2010년 예전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생가를 복원했다고 밝혔다. 복원된 생가는 관람객 편의를 위한 마당을 만들어 원래 집터보다 약간 뒤쪽으로 지었다. 생가 앞에는 ‘반기문 포토 존’이 자리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건 유례없는 일이라며 논란이 된 동상 옆이다. 인자하게 웃으며 앉아 있는 반 총장 옆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방문객은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생가는 ‘반기문 총장님이 태어나신 방’이라며 극존칭을 사용해 탄생 장소를 알리고 당시 부엌을 재현했다. 생가 관계자는 “세계 대통령인 반기문 사무총장님의 기운을 받겠다며 총장님께서 태어나신 방을 둘러보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전했다. 관계자의 말은 방명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기문 기념관 내 배치된 방명록에는 ‘우리 아이들이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기를. 좋은 기운 받아 갑니다’, ‘우리 딸 아프지 말고 소원 이루기를’ 등 자식을 위한 인사말이 쓰여 있다.
“세계를 움직일 특별한 아이”
“ 9촌 숙모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호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못 보던 나무였다. 호두가 주렁주렁 열린 게 정말 탐스러웠다. … ‘그래 호두 대신 이놈을 잡아야겠다.’ 하지만 꿩은 생각보다 날랬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꾀를 내서 수풀 사이에 숨어 몇 시간이고 기다렸고, 아무것도 모르고 어슬렁거리던 꿩은 끝내 잡혔다.” 반기문 기념관은 그의 어머니가 꾼 태몽을 생생하게 안내한다. ‘세계를 움직일 특별한 아이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는 부제를 단 태몽 이야기는 반 총장의 어머니가 나무에서 꿩을 잡는 모습까지 재현해 인형으로 표현됐다.
반 총장의 유년시절에 대한 묘사도 빠지지 않았다. 돼지를 보살피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음식 찌꺼기를 모아 오는 반 총장의 중학생 시절을 묘사하며 그가 독립심을 갖도록 교육받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충청도식 고집과 양반 기질을 타고났다는 설명도 있다. 타고난 충청도식 기질에 장남으로서 지닌 책임감이 몸에 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 밖에 내거나 밖으로 표시한 적이 없지만 5년, 10년 앞을 계획한 사람이라고 그를 표현했다.
기념관 관계자는 반기문 총장과 그의 아내인 유순택 여사의 첫 만남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말했다. “반 총장님께서 고등학교 학생회장 시절 옆 학교 학생회장이던 유 여사님을 만나게 된 거죠. 바로 1962년도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 적십자와 적십자연맹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최한 연구 대회에 반 총장님께서 청소년 대표로 뽑히셨고 한 달간 미국을 방문하게 됐어요. 이때 인근 학교였던 유 여사님의 학교에서 기념품을 만들어 전달하자는 의견이 나왔답니다. 학생회장이셨던 여사님께서는 대표로 기념품을 반 총장님께 전하게 됐어요. ‘어라, 이 참한 학생은 누구지’ 하며 반 총장님은 이후 여사님을 마음에 품게 됐지요.” 반 총장의 연애 시절까지 읊은 관계자는 자랑스레 기념관 입구를 가리켰다. 지구본이 세워진 입구 양옆에는 ‘반기문 총장님이 앉으셨던 의자’, ‘유순택 여사님이 앉으셨던 의자’라는 안내가 붙은 작은 의자가 놓여 있다.
기념관 한편에는 ‘멘토링 센터’도 있다. 관계자는 “방문객 수가 평일 평균 200여 명, 주말은 500명 이상인데, 보통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온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단체로 찾아오기도 하고요. 그 아이들이 반기문 총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멘토링 서비스를 해 보고 싶다 말하니 컴퓨터 앞으로 안내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라는 제목으로 30개의 질문이 나온다. ‘누군가 무섭게 나오더라도 용기 있게 맞대응합니다’, ‘ 즐겨 부르는 노래를 2~3개 정도 준비해 놓은 게 있나요?’, ‘ 주말에는 공부보다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나요?’라는 질문에 ‘예’와 ‘아니오’로 답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주는 간단한 시스템이다. 질문마다 반기문 총장의 사진은 계속 나온다. 답을 하고 나니 ‘오디세이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오늘 나의 처지와 현실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내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 있는 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반기문 총장의 글을 읽어 보고 용기를 가지라는 조언이 더해져 있다.
기념관 옆에는 반 총장의 ‘취임 축하 시비(詩碑)’가 있다. 가로 2.9미터, 세로 2.0미터, 높이 3.0미터인 적잖은 크기의 시비에는 광주 반씨 19세손이 쓴 ‘세계를 품은 큰 태산이시여’ 라는 글이 새겨 있다. ‘어렸을 적 품은 뜻 외교관에 심어 놓고/ 곧은 신념 꾸준한 노력/ 한길로 가시더니/ 일백아흔두 나라/ 사랑으로 품으시는 태산이 되셨어라’, ‘ 장하고 장하여라/ 중원의 말갈기 세차던 백의민족/ 광주 반씨 분헌공 20세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겨레의 이름으로 비노니/ 웅비의 나래 펴고/ 유구한 새 역사에 길이길이 빛나소서’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더 큰일을 하셔야죠”
현재 반 총장의 생가와 기념관 주변에는 20여 명의 광주 반씨 일족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 집 담벼락에는 반기문 총장의 얼굴이 그려져 있거나 그의 자서전 제목인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생가와 기념관 반대편에는 반기문 평화랜드가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언덕을 둘러싼 평화랜드는 공연장으로 보이는 무대와 분수대가 설치돼 있다. 평화랜드 위편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반기문 총장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뒤로는 세계 각국의 국기가 나부낀다. 한쪽 벽에는 그의 생년월일과 출생지, 학력과 1975년 받은 녹조근정훈장부터 2010년 UCLA 메달에 대한 안내까지, 10개가 넘는 상훈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반 총장의 동상 앞 분수대 물줄기를 살피던 관리자는 “ 이곳은 반 총장 소개의 시작일 뿐이다. 음성군이 뒤편 산을 샀고, 관리한다. 예산을 투입해 협소한 기념관도 확장하고 평화랜드 주변도 정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고 ‘큰 사람’ 의 생가인 만큼 그 위상에 맞게 공간도 확장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에게 반 총장이 대선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아 그거야 당연히 더 큰일을 하셔야죠” 라면서도 “외부인에게 오해를 살 수 있어 더는 말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충청북도 음성은 반기문을 위한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동상을 세우고 생가를 정돈하며 기념관을 재정비하는 등 반기문 홍보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반 총장 지지 모임인 ‘반딧불이’가 음성에서 창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반 총장 생가 인근 보덕산과 평화랜드를 방문했다. 반딧불이 SNS에는 충북 지역 일부 국회의원과 광역의원 등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둔하고 사상 최악의 총장’이란 혹평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인권 중심의 행보를 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둘러싸고 공과 과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음성은 묵묵히 그의 다음 행보에 대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워커스 18호 2016.07.11)